1940년 전북 장수에서 출생. 서라벌 예대를 졸업했고, 경희대 정외과를 중퇴했다. 1963년 성경의 유다 모티프를 도전적으로 재해석한 '아겔다마'가「사상계」신인상에 입상하면서 그의 독특한 소설 창작 세계가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69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난 그는 1973년 <죽음의 한 연구>를 발표한 이후 20여 년간 <칠조어론> 집필에 전념하면서 인간 존재의 문제를 죽음과 재생의 측면에서 탐사해왔다.
그의 문학은 동서고금의 종교 신화 철학을 아우르는 심오하고도 방대한 사유체계와 우주적 상상력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스케일, 그리고 그 독보적인 문체로 한국문학의 지평을 광대한 차원으로 확장시켜왔다. 그 동안 장편소설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이외에도 소설집 <열명길>, <아겔다마>, <평심>, 산문집 <산해기>등을 펴냈다. 1998년 영구 귀국하여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30년이 훨씬 넘는 그의 문학세계는 크게 네 시기로 나뉘어진다.
1. 초기의 단편소설을 쓰던 시절(1963∼1973) - 등단 이후부터 <죽음의 한 연구> 출간 전까지의 시기로 첫 소설집 <열명기>를 발표한 때이다. 이 시기의 그의 단편들은 인간의 구원 문제를 기독교적 발상에서 다루고 있다. 메시아적 콤플렉스가 관통하고 있다.
2. <죽음의 한 연구>를 쓰던 시절(1971∼1973) - '유리'라는 가공의 무대를 배경으로 설화와 신화, 주역과 연금술의 세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죽음으로 불멸성과 재생을 완성시킨 한 인신(人神)의 40일에 걸친 도정을 그리고 있는 <죽음의 한 연구>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관해 기독교적 사유체계를 뿌리로 하고 밀교적 세계를 수용, 기독교적 '대속양' 신화(희생양) 자체가 원시종교에 근원을 둔 밀교이며, 그것은 '무속'의 얼굴과 대승불교의 얼굴을 공히 가지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 그의 초기 문학세계는 장엄하게 일단락을 맺는다.
3. <칠조어론>을 쓴 시기(1974∼1994) - 한국문학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장대한 스케일의 형이상학적 비전과 한국어의 문학적 표현 가능성의 한 절정을 보여주었던 대작 <칠조어론>은 '삶과 죽음', '종교와 신비주의'라는 박상륭 문학 주제의 완결이다. 이 책에서 그는 선불교적 사유를 기조로 하고 기독교와 라마교적 요소를 가미(탄트라와 禪), 그것을 '잡설(雜說)'로 규정한다.
박상륭에게 소설은 여러 이질적인 담론들이 공존하는 '잡설'이다. 여기서 잡설이란 이야기 내용의 잡스러움과 또한 이야기를 하는 방법의 잡스러움을 모두 뜻한다. 하나의 이야기에 여러 다른 이야기들이 마구 끼어든다. 때로 끼어든 이야기들이 주이야기를 훨씬 능가한다. 그 여담들은 소설에 관한 메타적인 담론, 종교적 담론, 혹은 의학적 담론 등으로 그 종류도 다양하다. 여담이 끼어드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은 괄호의 사용인데 한 문장 속에 중괄호 대괄호를 겹쳐놓기도 하는 이러한 장치는 작가의 말을 자연스럽게 한 분야에서 그것을 보충한다는 구실하에 다른 담론으로 이동하게 만든다. 그러나 문제는 한 소설 속에 여러 담론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질적인 담론들이 아무 거침 없이 서로 뒤엉켜 있다는 점이다. 그의 말의 배설물들은 독자들을 당황하게 할 만큼 낯설고 기이하다. 그것은 소설적 서사가 갖는 일상적인 상상력의 경계를 파괴한다.
4. 최근의 단편소설을 쓴 시기(1994∼현재) - 서양(캐나다) 체험이 기조를 이룬 연작 소설들로 이루어진 세번째 소설집 <평심>과 그의 첫 산문집 <산해기>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1998년 귀국 후에 펴낸 <잠의 열매를 매단 나무는 뿌리로 꿈을 꾼다>는 그동안의 작업 뒤켠에 남은 부수러기들을 모아담은 책이다. '소설하기의 앓음다움!'과 '소설하기의 잡스러움'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다. 이야기들이 서로 거침없이 뒤엉켜 있다는 점은 여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