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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에세이

이름:황석영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43년, 만주 장춘 (염소자리)

직업:소설가

기타:1972년 동국대학교 철학과, 2000년 동 대학원 졸업.

최근작
2024년 11월 <황석영의 어린이 민담집 22 : 서낭 도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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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사람은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 한국 소설 <바리데기>의 저자 황석영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습니다.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 탈북소녀 바리의 여정을 통해 지금 우리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소설 <바리데기>와 작가의 평소 생각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 알라딘 편집팀 박하영, 김현주) 
 
 
소설을 넘어, 자기 양식의 발견을 향해  


알라딘 : <삼국지>, <심청, 연꽃의 길> 이후 4년만에 새 소설을 펴내셨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황석영 : 런던대학에서 객원연구원으로 지내면서 각종 세미나.컨퍼런스 등에 참여했어요. 아시아.아프리카인들이 많은 캠퍼스에서 주로 지냈는데 세계의 젊은 학자들과 많은 교류를 할 수 있어 매우 유익한 나날이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서점에 들려 신간과 잡지 등을 체크하기도 했지요.

알라딘 : <손님>에서 굿 형식이 차용된 바 있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무속과 초현실의 세계, 북한의 언어-함경도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그외 탈북자들의 모습에 대한 취재도 상세한데요. 이 부분에 대해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황석영 : 부모님이 황해도 분이셨어요. 어린 시절에는 영등포에 살았는데, 주변 피난민 중에 함경도 분이 많았지요. 그때 함경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익혔습니다. 음, 그리고 저는 여러 지역의 사투리를 익히는데 타고난 재간이 있어요. 작가로서는 축복받은 부분이지요. 굿이나 서사무가 양식의 경우, <장길산>을 쓸 때 우리 전통 양식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오즈 야스지로의 다다미 쇼트처럼,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선 고유의 양식이 필요하다 생각했었거든요. 근대에 소설양식이 도입되면서 우리 원래의 서술 양식을 상실했는데, 모름지기 작가라면 산문이나 서사양식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해야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왜 세계적 대문호가 없는가 생각해보았는데, 바로 이런 부분이 걸리더라구요. 소설이란 결국 서구적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에 이를 뛰어넘기 위해서라도 고유의 양식 탐구가 필요합니다. 자기 양식의 발견이 필요한 거지요.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을 멈춤없이 계속할 예정입니다.

탈북자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실제로는 소설보다 훨씬 끔찍한 이야기들이 많았어요. 북한에 사는 이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측면에서 이를 좀 순화시킨 거죠. 북한에서의 갑작스런 산불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장길산> 집필시 취재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어요. 대흉년이나 굶주림이 계속되면 짐슴이나 사람이나 땅을 파기 시작한대요.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움직임이죠. 북한에서의 산불 역시 그런 움직임의 일환으로(화전이라도 일구어보려는), 정말 커다란 슬픔을 느낀 이야기였습니다.

알라딘 : 고향을 떠나 이국을 떠돌며 역사의 파고를 온몸으로 겪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버림받은 자이자 효녀라는 점에서, <바리데기>는 <심청>의 연장선상에 놓인 것으로 보입니다. '심청'이나 '바리데기' 등 설화의 인물 중에서 특히 '여성'캐릭터를 빌어오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황석영 : 사람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시대의 변화가 격심한 시기에 그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계층은 그 시대의 가장 약한 고리-곧 여성입니다. 격변의 시기를 그려낼 때 그 약한 고리를 깊숙히 탐구하면, 시대의 문제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로 연이어 여성 인물을 선택한 것이지요.

<심청, 연꽃의 길>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다루었다면, <바리데기> 동서 냉전의 종언 이후 미국 주도의 세계화체제=곧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21세기의 이야기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제국주의의 변형에 다름아니며, 그런 측면에서 19세기와 21세기는 결국 연결되어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심청>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웃음을 짓는 장면으로 끝나지요. 이때의 웃음은 실컷 울다 결국 웃음에 이르는 불교식 미소입니다. 일종의 달관.해탈의 경지라 할 수 있죠. '심청'의 모델로 삼은 것은 '관음'인데, 쓰디쓴 고해를 겪어낸 이후의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 시절 동아시아인의 모습이라는 이야기죠. 이에 반해 <바리데기>의 마지막 장면은 바리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일종의 열린 결말인데, 지금 이시대의 고통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며, 또 여전히 계속될 거라 예상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 절대 낙관하지 않는 거지요.  


용서와 눈물, 누군가는 걸어가야 할 길


알라딘 : 바리는 그 자체로 끔찍하고 험난한 삶을 사는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소설을 읽을 때에는 마치 관찰자처럼 심각한 침잠없이 상황을 그려내보이는데요. 큰 비극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는 환상세계의 묘사는 현실세계를 비껴 그리되 그 비극성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킵니다. 현실과 환상세계를 오가는 장치는 바리를 굉장히 현실적인 인물이면서도 현실적이지 않은 캐릭터처럼, 인상깊게 만드는데요.

황석영 : 바리는 일종의 '무당'인데, 무당은 결국 소설가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무당이나 소설가나 '고통의 대가'여야 하지요. 고통의 '대가'가 되면 자기의 객관화가 가능해집니다. 육체는 영혼의 집이며, 죽음 직전의 고통에 이른 이들은 말 그대로 생각의 지평이 커지고 넓어집니다.

알라딘 : 설화 속 바리는 생명수를 얻어 부모를 살리고 많은 영혼들을 구합니다. 현실의 바리는 그저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며, 폭력과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그 '눈물'이 생명수라면, 인간 모두가 바리이며 구원의 가능성을 내면에 품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황석영 : 저는 그저 '화두'를 던진 셈입니다. 생명수에 대한 각자의 해석은 모두 맞아요. 바리는 생명수를 가지고 오지는 못했지만 그 생명수를 마셨지요. 그 과정들을 통해 성숙한 겁니다. 이 소설은 결국 모두에게 내재한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알라딘에 올라온 마이리뷰도 모두 읽어보았는데, 독자 개개인이 내린 해석 모두가 정답입니다. 

알라딘 : 여러 인터뷰에서 요즘 세계의 화두이자 이 소설의 주제를 '이동과 조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이에 대해 좀더 부연 설명을 해주신다면?

황석영 : 현재의 삶에 부정적인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동'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확대.심화될수록 제3세계는 생존과 존립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지요. 현재 제3세계의 나라들은 가난을 견디지 못해 문자 그대로 점점 비어가고 있어요. 그렇게 자기 땅을 떠나는 사람들로 인해 제3세계의 황폐화는 점점 더 가속화됩니다. 21세기의 특징으로 혹자는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이는 서구식의 개념으로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예요. 우리 나라에도 60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있고, 서양의 경우에는 그 퍼센트가 더 굉장합니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의 일자리는 더 줄어들고 중산층의 복지가 저하되면서 Eu가 점차 보수화되고 있지요. 저는 이것을 유럽 자본주의 사회의 업보라고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 다 같이 살아가려면, 다른 생각, 다른 음식, 다른 외모, 다른 문화를 용납하는 방법을 배워야만합니다. 그것이 바로 '조화'이지요. 이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택입니다.


인식의 확장, 세계 시민의 길


알라딘 : 21세기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범세계적인 현실을 다루었고, 또한 탈북민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소설인인데요.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이러한 세계적/민족적 상황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황석영 : 지금보다 훨씬 개인을 존중해야 하고, 또한 과거와는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공동체를 확대해야만 해요. EU가 그 한 예인데 문제는 많지만 국경에 매이지 않고 보다 넓은 범위의 통합을 이루려는 방향성만은 본받을만 합니다. 근래 동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서 극렬 민족주의가 대두되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저는 개인이 숨쉴수 있고 축제같은 나날을 보낼 수 있는 동아시아가 될 수 있다 낙관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운동을 보다 활발하게 펼쳐야 해요. 인터넷의 적극적 활용도 좋은 방법이죠. 인터넷은 근본적으로 아나키즘적인 공간이며, 네티즌은 근본적으로 반체제적이며 독립적이고 개인을 존중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해요. 21세기의 새로운 흐름인 셈이죠.

개인적으로는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라디오 방송을 꾸려볼 계획입니다. 동아시아 3국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문화구라방송'이지요. 진지함이 기본이 되대, 시니컬이 3/10 정도 섞인 모습이 될듯 싶어요. 텔레비전에 비해 즉각적 파급력은 적어보이지만 라디오는 보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운동을 펼쳐나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목소리'=언어의 힘 때문이지요. 2달여 체류하는 기간 동안, 다수의 시간은 이 라디오 방송 관련 작업에 매진할 예정입니다.

알라딘 : 4년간 런던과 파리 등에서 체류하셨는데, 바깥에서 보는 세계와 우리 나라의 위치에 대한 인식은? 그런 체험이 문학에 미친 영향이 있다면?

황석영 : 여러 모로 아직 폐쇄적이고 인식이 좁은 면이 있습니다. 일종의 '항아리', '호리병' 속에 갇혀있는 거 같아요. 인식 자체를 넓히고 보다 넓은 관점에서 커뮤니케이션하고 발상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국경을 벗어난 세계시민. 그것을 지향해야 해요. 고구려만 해도 여러 유목민족들의 연합체였지요. 조금 과격하게 말해본다면, 통일을 이룬 뒤에 여러 동아시아 국가와 함께 범아시아공동체를 만들어나갈 수도 있겠습니다. 이런 식으로 국경을 넘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만이 남한과 북한이 현재의 굴레에서 함께 놓여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전에 김일성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었지요. "지구상에 발을 붙이고 사는데 지구가 변했다. 구름 위에 살지 않는 한, 우리가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러 국제사정상 당시 일이 잘 풀리지는 않았지만, 남과 북의 변화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고 봅니다.

알라딘: 바리가 세계 여러 나라 중 '영국'으로 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황석영 : 안 그래도 왜 뉴욕이 아니고 영국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아까도 말했지만 신자유주의가 결국 19세기 제국주의의 변형이라고 볼 때, 제국주의의 효시인 영국을 배경으로 택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중심인 미국의 본가가 영국이기도 하구요. 흔히 미국에는 문화는 없고 문명만 있다고 하기도 하고... 대영제국을 해부한다면, 현재 사회를 축소 탐구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알라딘 : 얼마 전 문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요. 예술가들의 정치 참여와 발언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신다면.

황석영 : '다리를 만드는 자에게도 윤리가 있'는데 글을 쓰는 작가라면 당연한 일이지요. 휴머니티를 다루는 것이 작가인데, 작가라면 당연히 삶에 도움이 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밥벌이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지금 제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연초와는 달리 '상황이 형성'되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제가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만, 나중에라도 이야기를 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망설이지 않고 의견을 밝힐 생각입니다.

알라딘 : 요즘 우리 문학이 위기다 라는 말이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시다면?

황석영 : 첫째, 문제는 언제나 작가 자신들에게 있어요. 둘째, 우리 문학이 위기가 아닌 적이 있었나요. 하하. 그러나 올해를 보세요. 연초부터 굵직한 작품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어요. 모두가 살기 힘든 세상인 것이 분명하고, 작가들 역시 마찬가지이니 그렇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작가란 항상 새로움에 주목하되, 자기 나름의 세계관/작가관이 있어야 해요. 이 세계관이라는 것은 나이가 든다고 자연스레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잡혀 있어야 해요. 젊은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문학 책 외에 인문/사회학 분야 책들을 많이 읽으라는 겁니다. 그를 통해 '관점'을 갖게 되니까요. 인문사회적 양식을 외면하면서부터 한국소설의 서사가 약해졌어요. 또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야 해요. 새로움이란 것도 결국엔 보편성을 이야기하기 위한 일종의 촉매로, 인간의 본질과 조건은 크게 변화하지 않기 때문이죠.

대하소설은 19세기의 유산이라 생각해요. 현대 독자들의 접근도 측면에서 볼 때 500~1000매 정도의 경장편 양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경장편을 쓸 때의 유의점은 큰 서사를 담고 있되 문장은 시적으로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저 젊었을 때는 그래서 시+소설=시설이라고 불렀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신화와 설화, 민담 등이 담고 있는 메타포와 현실을 결합하는 작업을 계속 할 예정입니다.

<바리데기>를 통해 이전에 구상해놓았던 작업의 1/3 정도 지점까지 왔다고 말한 작가는 10월께 완전히 귀국할 예정이라 밝혔습니다. 자기는 언제나 현역이라며, 문자 그대로 '대가'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글쓰기에 매진하겠다 말하는 작가의 모습이 매우 든든했던 인터뷰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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