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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나무꾼? 동화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눈에 익을 이름, 또는 좋아하는 이름. 지은이나 옮긴이란에서 그 이름을 발견한다면, 주저 없이 그 책을 선택하는 독자들이 있을 정도로 신뢰를 받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어린이 책 기획실. 자기만의 분명한 색깔을 담은 어린이 책 번역과 논픽션 집필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멋진 독서 체험을 선사해온 햇살과나무꾼이, 2012년 봄 또 한 권의 새로운 책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를 가지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험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진, 신기한 재주를 가진 동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지난 20여 년 간 어린이 책과 함께 걸어온 햇살과나무꾼의 치열하고도 즐거운 발자취를 따라가보았다.
(인터뷰이 : 햇살과나무꾼 박정선 실장님 / 진행 및 정리 : 알라딘 이승혜 / 2012-03-27)
알라딘 : 알라딘에서 햇살과나무꾼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집필과 번역을 합쳐 400종 가까이 됩니다. 올해로 기획실이 설립된 지 얼마나 됐는지요?
햇살과나무꾼 : 실제로는 92년부터 내부에서 준비를 시작해 사업자등록증을 낸 건 94년이구요, 첫 책이 나온 게 93년이던가요?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지금까지 작업한 책이 전집이 1천종 정도 단행본이 3~4백권 정도되는 것 같아요. 구성원은 총 7명입니다.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란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햇살과나무꾼 : 대표이신 강무홍 주간님이 지은 이름이에요. 사람들은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데 햇살이 비치면 덥지 않냐 물으시기도 하는데, 나무하는 계절은 겨울이니까요. 처음에 강무홍 주간님이랑 저랑 같이 시작을 했거든요. 회사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까 고민하던 그 때 그런 모습이 떠올랐대요. 가난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는 모습이 이미지로 떠올라서 햇살과나무꾼이 되었죠. 나무꾼이 나무를 떼서 따뜻한 겨울을 나듯이, 저희가 기획.집필한 책들이 어린이의 마음에도 따뜻하게 전파됐으면 좋겠다는 해석을 이후에 저희가 붙이긴 했어요.
알라딘 : 20여 년이면 활동 초기와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책 시장이 많이 달라졌고, 그만큼 작업 방식의 변화도 클 것 같습니다.
햇살과나무꾼 : 엄청나게 변했죠. 1990년대 초반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것이 독립적인 영역으로서 자리매김하지 못했었고요. 서점에서도 어린이 코너를 찾아보기 힘들었거든요. 어린이 책의 위상도 그랬지만 어린이라는 존재에 대한 특별한 고민이 많이 없었던 것 같아요. 어린이에게 자신의 삶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을 안 하고. 어린이를 위한 무언가를 따로 한다는 것에 대한 관심을 적을 때였어요. 지금은 교육 열풍에다가 어린이의 인권, 어린이도 보호받아야 한다, 애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어른이 윽박지르면 안 된다 이런 생각들이 많이 있지만요. 그게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죠. 예전에는 어린이란 개념 자체가 척박했고, 지금은 과잉이죠. 너무 과잉이 되어서 부모가 자기 일, 자기 존재까지 잊은 채 어린이들만 위하는 게 지나치다 싶죠.
당시만 해도 번역자라고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과는 많이 달랐고요. 원서 사기도 힘들고, 해외여행 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지금이야 아마존에서 클릭 한번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이지만. '혹시 미국에 아는 사람 있어? 일본에 아는 사람 있어?' 수소문해서 국제전화로 어렵게 책을 구해야 하는 시절이었어요. 어린이를 위한 책을 골라서 번역자가, 기획자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찾아가 이 책 내보면 어떨까요, 제안하는 것이 지금처럼 자연스러운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죠. 그리고 영어 책이든 불어책이든 무조건 일어 번역서를 가지고 우리말로 옮겼어요. 저희도 일어를 했듯이, 일어를 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일어본을 번역하는 것이 훨씬 저렴했고요. 원본을 소중히 해야한다 그런 개념보다는 비용 절감을 중요하는 게 과거의 풍토였죠. 지금이야 저희가 조금 이름이 알려졌지만, 옛날에는 '기획? 어린이책을? 어린이책을 뭐하러 그렇게 공들여서? 그것도 외국의 저작권료까지 물어가면서?' 하는 반응들. 너희는 곧 망할거다, 쓸데 없는 데 그렇게 공을 들이다가는. 그런 식의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은 미국에서 현지, 동시 출간되는 책도 많고, 출간되기 전에도 원고가 검토되고 하잖아요. 그런데 그때는 아이들이 읽는 책이 제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 그러니까 소공자 소공녀 그런 것들 있잖아요? 흔히 말하는 세계명작, 아직도 그걸 읽고 있었던 때였어요. 당시 해외 현대어린이문학이라고 하는 건 이미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고 사회가 민주화된 이후 각각의 계층들, 특히나 약자들이 보호를 받고 그런 사람들이 주체가 된 문학의 모습이었는데요. 사회제도 이런 것들도 많이 발전되고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들이 일천한 상태였던 거죠. 어린이를 위한 책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러다보니 굳이 현재 영국에서 나오고 있는, 이제 막 출판되고 있는 좋은 어린이 문학 작품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죠. 또 그런 책들은 로열티를 꼭 냈어야 하거든요. 뭐하러 그렇게 큰 돈을 들이느냐라는 거였죠. 다른 나라 아이들과 같이 발맞춰서 커나가야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옛날에 내가 읽었던 책을 읽고 있으니 이게 뭐가 되겠나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알라딘 : 오늘의 햇살과나무꾼을 만든 중요한 순간, 어떤 도약의 시기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햇살과나무꾼의 첫 발걸음이 가장 중요하지 않았을까 짐작이 되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가장 큰 터닝 포인트는 이거예요. 그러니까 햇살과나무꾼이 좀 알려지기 시작하고 사회 분위기도 바뀌고 단행본 시장에서 좋은 책을 고르려고 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 엄마들이 등장한 것, 어린이도서연구회 같은 단체의 등장, 좋은 책을 찾는 하나의 바로미터로서 옮긴이도 보게 되고 작가도 보게 되고, 그렇게 되면서부터죠. 초기에는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했어요. 사람 이름을 써야지, 햇살과나무꾼 옮김이 뭐냐. 지금은 곰돌이co. 같은 이름도 있고, 이런 이름들을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데. 웬 햇살과 나무꾼 옮김? 항의 들어온다는 거예요. 신뢰성, 공신력 다 문제가 되어서 안된다는 거죠. 당시에 작가 이름 대신 '편집부 옮김'이 들어가는 어린이 책이 많았다는 건 참 아이러니 하죠. 그래서 '햇살과나무꾼 옮김'을 써도 될 만큼 저희가 알려지고 옮긴이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던 것, 그 이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첫 번째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다음으로는 번역 인세를 받기 시작한 시점. 그전까지는 번역료가 다 매절이었는데 인세를 받는다는 건 본격적으로 '번역 기획'을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죠. 사실 인세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내부적으로는 좀 힘들었어요. 왜냐하면 만부는 넘어가줘야 손익분기가 나오는 게 되니까. 초반에는 그렇게 힘들었지만 어찌되었든 이 시스템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너무 소모적으로 되어버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매절한 원고에 대해서는 출판사가 돈을 주고 산 거니까 관여하기가 힘들고. 내 자식을 팔아버린 것 같은 느낌? 그런데 인세가 1%라도 걸려 있으면, 출판사에서 그 책을 바꿀 때 꼭 얘기를 해주시고. 책이 팔리든 안 팔리든 못 팔리면 못 팔린대로 우리가 인세를 적게 받는 것으로 책임을 질 수 있으니까요. 또 많이 팔리면 많이 팔리는대로 계속 인세를 받을 수 있으니까. 그것이 굉장히 큰 터닝 포인트가 된 기점이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마지막으로 저희가 집필을 하기 시작한 것. 그게 가장 큰 변화였다고 할 수 있어요.
햇살과나무꾼 : 동물 이야기, 식물 이야기 이런 책들이 사실 넘쳐나죠. 다큐멘터리들도 많고요. 생태계에서 왜 아주 신기한 것들이 많잖아요. 어! 와! 얘네들이 어떻게 저렇게 사나, 저 해달 좀 봐봐 진짜 귀엽다! 이런 감상이 하나 있고, 또 학교에서 '포유류는 어떻습니다' 하고 배우는 것이 하나. 이 두 가지가 이렇게 따로인 것은 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동물의 생태를 보는 건 이런 것들이 단순히 신기하고 재미있어서만은 아니잖아요. 어린이들은 지적 호기심이 굉장히 왕성한 존재들이거든요. 그렇다면은 동물들의 신기한 모습들로 호기심을 자극했다면, 거기에서 무언가를 끌어내주어야 하잖아요. 근데 그 열매가 엉뚱한 데서 맺힌다거나, 그냥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고 갑자기 '그래서 말이죠' 하고 결론을 딱 꺼내놓는 것은 별로다. 그래서 앞에서 말씀 드린 두 가지를 합쳐 놓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기한 동물에게 배우는 생태계> 다음에 나올 책은 거꾸로 살아가는 동물들한테 배우는 생태계인데요. 우리가 흔히 낙타들한테는 다 혹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혹이 없는 낙타 얘기를 하는 거죠. 또 포유류는 전부 새끼를 낳는다고 알고 있는데, 알을 낳는 포유류를 보여주는 거예요. 그냥 포유동물이란?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리고 세 번째 권은 식물. 특이하게 살아가는 식물들을 통해 배우는 생태계 이야기입니다. 신기한 생태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고, 그 생태계가 왜 이렇게 됐는지 설명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자연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 그런 것들이 재미있게 지식을 습득하는 하나의 안내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그런 취지에서 기획을 한 거죠.
알라딘 : 신기한 생활 방식을 갖고 있는 책 속 동물을 하나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스스로 떼죽음을 당하는 노르웨이레밍 얘기를 보면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너무 불쌍하기도 했는데요.
햇살과나무꾼 : 어린이 책에서 이런 잔인한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지적을 하신 분도 있죠. 한 동물만 콕 집어 말하기는 쉽진 않은데요. 불가사리가 자기 위장을 꺼내서 먹는 것도 재미있고... 해달이 물 위에 벌렁 드러누워서 돌에 딱딱 부딪쳐 전복 같은 것들 껍질을 까먹잖아요. 해달이 어떻게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는지도 책에 나오지만, 그 해달의 생태를 아는 것도 중요한데 이 생물들이 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저마다 생태계라고 하는 것에 엮여 있고, 먹이그물 먹이사슬에 얽혀 있고. 해달의 가죽을 얻으려고 사람들이 자꾸 잡아가니까 해달이 많이 사라지고, 해달이 먹는 해초숲까지 사라지게 된 거예요. 해달이 없으니까 해달이 까먹었던 성게들이 갑자기 증식을 해버린 거죠. 그래서 성게가 해초들을 막 끊어버려서 숲이 사라지게 되는 것. 그렇게 해서 한마디로 인간이 생태계를 깨뜨리는 거죠. 그런 것들까지도 이 책에 같이 포괄하고 싶었어요.
요즘 어린이 논픽션에 아쉬운 게 있다면 이건 뭐 개인적인 이야기지만요. 다큐멘터리 같은 데서 인간의 시각으로 '아... 동물이 잡아가요, 엄마는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요' 같은 식의 의인화를 하는 것들요. 인간의 감정을 넣어서 하는. 그런데 자연의 세계는 냉혹한 것이고, 그렇게 잡아먹는 것도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인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너무 인간의 감정으로만 보면서 마음 아파하는 것. 사실 가죽을 벗기는 나쁜 놈들은 따로 있는데. 좋은 다큐멘터리라도 너무 감정이 실려 있거나, 그런 나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건 싫거든요. 요즘은 워낙 퓨전의 시대이긴 하지만.
문학을 읽는 내 감정의 상태와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흥미로울 때의 내 뇌의 상태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다큐는 다큐의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논픽션에는 논픽션의 문법이 있으니까요. 아이들이 탐구하고, 사고하는 훈련을 해서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야기의 방식은 적당하지 않다고 보거든요. 그저 어린이 책이라는 이유로, 이야기의 허울을 씌워서 주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햇살과나무꾼에서 쓰는 책들은 되게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친절하지 않다고 해야 할까, 이야기처럼 꾸며져 있지 않아요. 다만 독자가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이야기처럼 쉽게 씌여져 있어서 흥미로운 것이 아니라 거기 숨어 있는 사실과 본질 때문인 것. 그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된 거야? 하면서 야 이거 진짜 재미있네! 하는 것 있잖아요. 정보가 정말로 잘 배열되어 있고, 체계적으로 짜여져 있어서 독자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저 자신도 그런 논픽션이 좋아요. 인문적 방식으로 자연과학을 알려주려고 하는 책보다는요.
알라딘 : 다시 번역 이야기로 돌아가서, 번역할 작품을 선택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는 것이 있으시다면. 사실 판매량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지는 않으실 것 같거든요.
햇살과나무꾼 : 저희가 고르는 기준이라고 하는 건, 낼 건지 말 건지가 아니라 일단 기획서를 쓸 건지 말 건지 결정하는 것인데. 선택의 순간에 던지는 질문은 '이 책 꼭 우리가 해야 돼?' 아니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과감히 포기를 해요. 계속해서 생각하는 건 보이지 않는 햇살과나무꾼의 독자들이에요. 그 독자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 독자들이 만족할 만한 작품을 고르려고 애를 써요. 정말 안 팔릴 것 같지만 정말 좋은, 그런 책이 있다면 선택을 해요. 그리고 출판사를 찾는 거죠.
번역서는 이미 외국에서 검증된 결과와 판매 동향을 알고 난 뒤에 가져와서 할 수 있고, 새로운 출판사가 단 기간에 종수를 늘리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요, 번역 자체의 고유의 기능은 사실 정말로 세계 유수의 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한다, 그런 문화의 선구자적 느낌이라고 할까요? 진짜 문화의 벵가드로서의 그런 역할. 우리도 한국의 고유한 것, 한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런 것들로 어필을 하듯이, 외국의 그런 것들을 번역해서 들여오면 되잖아요. 퓨전이나 세계화도 좋지만. 진짜 우리나라에서 아니면 볼 수 없는 그런 작품들을 만날 때 정말 기쁘거든요. 독자들이 아 이 책은 정말 독특하다, 햇살같다, 그런 애기를 들을 때. 그래서 되도록이면 그런 좋은 작품들을 골라서 번역을 하려고 애를 쓰죠. 기왕이면 그 책들이 다 잘 팔리면 참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도 많지만. 번역을 하면서도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서 업무라는 것도 잊고, 읽는 내내 가슴이 뛰는 책들을, 이런 책들만 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알라딘 : 혼자 하는 번역과 햇살과나무꾼처럼 여럿이 하는 번역, 무엇이 다를까요.
햇살과나무꾼 : 일단 기획성, 혼자서 어떤 책을 기획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내부 시스템을 갖춘 회사 조직이나, 출판사와의 오랜 관계나 노하우 같은 것들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으니까. 똑같은 책도 어느 출판사에서 나오느냐에 따라 결과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는데요. 단지 잘 팔리고, 못 팔리고만의 문제가 아니라... 잘 팔린다는 건 그러니까 그만큼 많은 독자들이 읽는다는 것이잖아요. 사계절이면 사계절, 비룡소면 비룡소, 출판사마다 자기 독자군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 독자군을 끌어들일 수 있는 출판사를 선택하는 것이 저희 입장에서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도 실패를 많이 하죠. 이 책은 차라리 다른 출판사에서 나왔으면 훨씬 잘 될 수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책들이 있어요. 그렇게 책이 독자를 찾아가게 해주는 것, 이런 것들은 개인이 하기에 조금 힘이 들 수 있죠.
제대로 된 번역을 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이 걸려요. 그아무리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일단 한국말도 잘 해야 하고요. 저희 작업의 경우엔 어린이 책이라고 하는 특수성이 있잖아요. 어린이 소설과 논픽션, 그림책 이 세 가지가 다 번역의 문법이 달라요. 동화 번역을 잘 한다고 해서 어린이 논픽션 번역까지 자동으로 잘 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고요. 그림책 번역? 그거 진짜 쉽지 않아요. 그림책 중에서도 영유아 그림책 번역, 진짜 어렵거든요. 영어로 보면 쉬워요. 이 쉬운 문장을 어떻게 번역할까, 그게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런 여러 장르를 다 번역을 해낼 정도가 되려면,많은 연차가 쌓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번역을 주 업으로 하면서 혼자 쌓아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햇살과나무꾼은 회사니까 선배들이 가르쳐줄 수 있고. 저희는 최소 3년차는 넘어야 혼자서 해볼 수 있다고 생각되거든요. 어떤 분들은 저희를 프리랜서 모임으로 알고 계시기도 하는데 일반 회사와 같이 월급을 받고, 일을 하는 거예요. 인턴 기간은 1년이에요.
알라딘 : 좋은 어린이 책 번역, 나쁜 어린이 책 번역에 대해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햇살과나무꾼 : 일단 어린이 책이라고 해서 별도로 취급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먼저 기본, 보편을 지키고 거기에 플러스 알파로 어린이 책으로서 더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고 보는데요. 저희가 생각하는 번역의 기본은 '원작을 살리는 번역'이에요. 원작자가 누구든 간에, 그 번역자의 필체가 그 여러 책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경우를 가끔씩 봐요. 이건 누구 번역 같다, 생각이 드는 번역은 나쁜 번역이라고 생각을 해요. 번역자는 뒤에 숨어 있어야 하는데. 원작자의 문체, 문체라고 하는 건 그 작가 고유한 것이잖아요. 그것이 비록 한국말로 옮겨지더라도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번역자의 할 일이고 기본이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린이 책이라는 명명 하에, 이 부분은 좀 재미없는데 애들이 이해하기 쉽게 좀 고쳐보자, 한 두줄 정도는 빼자는 건 안 될 일이죠. 업무상 필요에 의해서 원본 대조를 하다 보면, 의외로 살짝 문장이나 단어를 뺀 번역들을 보게 되는데요. 이건 어려울 것 같다는 이유에서죠. 그런데 문학이라고 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렇게 살짝살짝 빼고 또는 자기 문체로 바꾸어버리면, 원작의 향기가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는데. 아무리 어린이 책이라고 하더라도 원작자가 지루하고 따분한 몇 행을 써 놓았으면 번역에도 그게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빼야할 문제는 아니다. 일반 성인물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 같고요. 요새 번역 가지고 말들이 많잖아요. 뭐 의역이니, 직역이니. 이런 말들이 많은데 도대체 의역이라고 하는 게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 도대체 누가 번역자한테 의역할 권한을 주었는가하는 문제. 그걸 번역의 개성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어쩔 수 없고요. 어떤 어린이 책은 긴 문장을 탁탁탁탁 끊어놓죠. 그렇게 되면 문체가 달라져요. 탁탁탁탁 아주 경쾌한 문체가 되어버리거든요. 원작자는 그렇게 안 썼는데 그렇게 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알라딘 : 엄격하게, 최선을 다해 원작자의 문체를 살린다는 번역을 번역다운 번역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필자의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글쓰기는, 논픽션에 요구되는 미덕일텐데요. 집필하는 책에 일관되게 담고자 하는 햇살과나무꾼만의 색깔은 어떤 것일까요.
햇살과나무꾼 : 필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뭔가라고 물으면 결국 가치관일 것 같아요.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것은 다 한 가지 분야를 다룬 책이 수십 종이잖아요. 그 수많은 책들 가운데서, 어떤 관점에서 정보를 독자한테 전달할 것이냐. 위인전, 역사에선 특히 사관이 중요하겠구요. 생짜 그대로 훈계하듯이 이건 옳지 않고,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 말고. 또 설익은 좌파의 느낌이 너무 내거나 너무 국수주의적인 시각을 드러내는 것 말고요.
일단은 좋은 가치관에서 정보를 취합해야 하겠고요. 두 번째로는 아이들한테 열려 있는 집필, 독자의 사고력을 길러주는 어린이 책 집필을 하고 싶어요. 어떤 책은 정말로 교과서 내용, 사실 자체를 그대로 나열해 쓰는 데 그치기도 하잖아요. 그 반대편에 똑같은 정보를 주더라도 단순히 그 정보를 달달 외우도록 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어린이들로 하여금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들이 있죠. 읽었던 사실들은 혹시 기억이 안 날 수 있지만, 읽으면서 내가 했던 생각들, 순서대로 따라 읽으면서 사고 훈련이 되는 그런 책들을 쓰고 싶죠.
사실은 저희가 이제 그런 얘기들을 많이 듣는데, 동화는 번역을 하면서 왜 논핀션은 집필을 하느냐. 문화나 정서나 이런 것들은 전세계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데, 정보나 이런 것들은 쉽지 않거든요. 우리가 무엇을 아이들한테 가르쳐주고 생각하게 할 것인가. 한국에 현재 살고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메시지를 부각시켜서 전해주어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필요성 때문에 논픽션은 번역이 아닌 집필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아이세움에서 나온 <세상을 바꾼 말 한마디>라는 책이 있어요.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 사과 나무를 심겠다 - 스피노자'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가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이런 말을 하게 됐는지 이런 것들을 가지고 책을 써보자해서 시작하게 됐는데요. 논픽션이라고 하는 게 완전히 새로운 창작은 아니죠. 내 머릿 속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정보를 재취합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잘못된 책들을 베끼고 베끼고 또 베끼는 경우도 생기는 거죠. 명언 취합을 하다보니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대요. 아무리 찾아도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 없는 거예요. 수소문해서 스피노자 연구자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도 왜 한국에서 스피노자가 그런 말을 했다고 회자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도 안중근 의사가 한 말로 많이 알고 계시잖아요. 그냥 안중근 의사가 어떤 책에서 보고 글귀가 좋아서 그 얘기를 쓴 거래요. 이런 비슷한 경우들이 너무나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자료 조사하다보니 전부 다 거짓말인 거예요. 정말 그래서 저희가 우리끼리 이 책은 불편한 진실이다(웃음). 이 책이 사실이면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책 속의 글들이 틀린 거잖아요.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든지, 지구가 멸망하면 이런 것들은 에피소드로 만들어내기 좋잖아요. 특히 어린이들이 이해하기도 쉽고, 또 좋은 말이고. 일본은 자료가 굉장히 많고 잘 관리되는 나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식으로 잘못된 자료를 잘못 담은 책들도 꽤 많거든요. 조사를 해봤더니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책을 번역해서 출판, 이걸 또 다른 곳에서 보고 자료로 취합하면서 틀린 것들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거죠.
알라딘 : 햇살과나무꾼이라는 이름만 보고 주저 없이 책을 선택하는 분들이 있을 정도로 독자분들의 신뢰가 두터운데,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햇살과나무꾼 : 앞서 말씀드린 저희가 번역서를 선택하는 기준 같은 것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희가 한번은 어떤 독자분께 이 책은 햇살답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아, 독자분들을 실망시키면 안 되겠다'하는 생각을 했고요. 그 다음부터는 출판사에서 의뢰하셨을 때 저희 답지 않은 책이라고 판단이 되면 이 책은 번역을 못하겠습니다 하고 사양을 하기도 하고요. 의뢰 받은 책을 읽으면서, 우리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지 더 철저하게 보게 됐어요. 몇몇 출판사분들께는 죄송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알라딘 : 어린이 책 번역을 막 시작하신 분이나 앞으로 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조언을 좀 부탁 드려도 될까요.
햇살과나무꾼 : 예전에 한겨레문화센터에서 햇살과나무꾼 번역학교를 하면서 했던 얘기인데, 번역이 혼자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번역을 많이 해봐야 하겠죠. 좋은 번역서를 많이 봐야되겠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자기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번역을 잘 하는 건 기본인데, 그 번역가의 소신이라고 하는 것과 더불어서 경쟁력. 경쟁력은 어차피 자신이 키울 수 밖에 없어요. 이 책도 괜찮고, 저 책도 괜찮겠다 해서는 경쟁력이 없는 거예요. 자기가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할 때 좋은 번역이 나오거든요. 그림도 그래요. 화가분들하고 작업을 예로 들면요. 화가가 마음에 들어한 원고에는 그림도 잘 나와요. 그런데 그냥 직업상 의뢰가 들어와서 그냥 했다, 좋은 그림이 나오지 못하죠. 번역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나는 청소년 성장소설이 잘 맞는다, 하면 그 분야에서 출판된 책과 원서를 섭렵한 다음에 번역할 책을 고른다면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번역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처음에 하기 쉬운 시행착오들이 칼데콧 상을 받았다, 그런 작품들 있잖아요. 미국에 사는 내 동생이 뭐 미국에서 요새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들 한다 했다면 그 책들에는 관심을 가지면 안 돼요. 관심을 아예 꺼야 돼요. 그런 작품들은 누군가가 이미 계약을 했을 거예요(웃음).
알라딘 : 이건 참 실용적인 팁이네요!
햇살과나무꾼 : 그런 책들보다는 나만의 어떤 노하우를 가지고 책을 고르는 게 현실적이겠죠. 묻혀 있는 책들도 분명히 있거든요. 아직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않은 그런 책 중에서 좋은 책을 고른다면 번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요. 처음부터 번역을 잘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난항을 겪겠죠. 그런데 번역은 정말 처음부터 잘 할 수 없어요. 그건 확실해요. 정말 몇 년의 세월이 필요해요.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필요해요.
알라딘 : 마지막으로, 앞으로 십 년 후 햇살과나무꾼의 모습을 그려보신다면요?
햇살과나무꾼 : 이십 년 가까이 이 일을 해오면서 자부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저희가 떼부자가 될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한데요. 좋은 책을 계속 하고 싶다는 것을, 변함없이 지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여유가 된다면 번역 작가 양성이 꿈이에요. 논픽션 작가 양성도 그렇고, 같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지금 당장은 시작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워요. 이후에는 어린이도서관이라든지 좋은 책을 필요로 하는 분들께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회사가 됐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본은 잘 팔리는 책이 아니라 좋은 책을 우리가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것, 그것이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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