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에서 분당까지는 역시 너무 멀었다. '강남의 어느 커피숍에서 보자고 할 때 그러자고 할 걸'하는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얼리어답터의 사무실 모습을 꼭 사진에 담아야지'하며 차를 재촉해 몰았다. 약속 시간을 30분 정도 넘어 도착한 저자 최문규씨의 이바닥(www.ebadaq.com) 사무실은 편안한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다.
직원들은 거실같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만지고 있고, 최문규 사장과 조현경씨는 고시공부방(?) 같은 사장실에서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사장실에 들어가기에 앞서 사무실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사무실 테이블 위, 선반은 물론 구석구석에 여러가지 제품들이 쌓여있었다. '아~ 저것도 책에서 본 거다!'는 흡족함이 왠지 친근한 곳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사장실 바닥에도 책상 위에도 제품들이 널려있었다. 최문규씨와 조현경씨는 줄을 당겨 밝기를 조절하는 형광등을 소개하며 방안 분위기를 커피숍의 약간 어둡고 아늑한 분위기로 만들었다. 30분 정도 수다를 떨다가 '앗! 인터뷰를 하러 온 거지'라며 정신을 차려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네 사람은 만담인지 인터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 알라딘 웹기획팀 김성동, 편집팀 최근주)
 
 

당신이 '얼리어답터'를 알아?


알라딘 : 두 분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최문규 : 건축을 전공했고,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해 아주 관심이 많은 두 아이의 아빠에요. (만화로 배우는 컴퓨터 입문서 같은 책들을 보여주며 자신이 얼마나 컴퓨터 책을 획기적으로 썼는지 설명을 했다. 하지만 모두 절판이나 품절 상태다) 웹에이전시 '이바닥'을 운영하고 있고 지금은 'earlyadopter.co.kr' 운영에 바쁘죠.

조현경 : 저는 심마니 미디어팀 기자를 했었고, 지금은 테크니컬 라이터(technical writer)로 기고도 하고 책도 쓰고 있어요.

알라딘 : 얼리어답터... 들어본 적이 없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어렵게 말고, 간단하게 설명해주시자면?

최문규 : 'Early'와 'Adopter'의 합성어죠. 남들보다 먼저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제품을 먼저 구입해보면서 제품에 대한 평가를 먼저 내려 주변사람에게 전파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라딘 : 최문규님이 국내에 처음 얼리어답터라는 개념을 소개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최문규 : 네. 미국 유학 시절인 96년도에 매형이 얼리어답터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처남이 얼리어답터인 것 같아'고 하길래 '아! 그렇구나!'하고 관심을 가지게 됐고 귀국해서는 '내가 얼리어답터야'라며 퍼뜨리기 시작했죠. ^^

알라딘 : 그럼, 얼리어답터에 대한 좀더 어렵고 심오한 설명을 부탁드리죠.

최문규 : Everette Rogers의 (1995)이라는 책에서 신제품을 채택하는 순서에 따라 사람들을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누었는데, 얼리어답터는 그중 2번째 유형이에요. 가장 먼저 신제품을 구입하는 이노베이터(Innovators)가 모험심이 강하며 사회 규범을 다소 따르지 않는 성향이라면, 얼리어답터는 이노베이터보다는 조금 늦게 신제품에 관심을 보이지만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s)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간주된다고 합니다.

알라딘 : 그렇다면 벤치마커, 베타테스터, 오타쿠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조현경 : 모두 전문적인 면이 있죠. 하지만 벤치마커와 베타테스터는 객관적이고 아카데믹한 면에 강하다면, 얼리어답터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면에 강해요. 그리고 오타쿠가 한 가지에 아주 깊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얼리어답터는 깊이는 얕지만 폭넓은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구요.

알라딘 : '충동구매'나 '고급스런 제품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보는 눈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현경 :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일반인들의 눈에 얼리어답터는 충동구매자나 고급제품 선호자로 오해될 수 있겠지만 명백하게 달라요. 앞에서 얼리어답터의 숭고한(^^) 의미를 말했듯이 충동적으로, 또는 사는 것만 즐기는 사람은 얼리어답터라고 할 수 없겠죠. 얼리어답터는 제품에 대한 기능, 디자인, 출시 배경, 가격 등을 꼼꼼히 살피고 분석하여 꼭 사고 싶은 것만 사죠. 이런 식을 되풀이 하다보면 제품과 시장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도 가지게 되고 마구잡이식으로 제품을 사는 일은 없게 돼요. 이것도 일종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죠.

알라딘 : 개인적으로 초보 얼리어답터이기도 하고, 이것저것 사는 걸 좋아해서 신용카드 땜에 고생을 하는 편인데요.(웃음) 얼리어답터 중에 신용불량자가 많지 않을까요?

최문규 : 그런 심각한 이야기는 못 들어봤는데... 사실 얼리어답터 중에 돈을 많이 버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얼리어답터들은 담배나 술을 끊는 등 다른 데서 많이 아끼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사고 싶었던 것을 다른 데서 돈 아껴가면서 요모조모 따져 손에 쥐었을 때 얼마나 기쁘겠어요?


얼리어답터는 '소비자'라기보다는 '소비자'와 '제조사' 중간에 존재하는 무엇


알라딘 : 음... 얼리어답터로서의 사명감이랄까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조현경 : 네... 얼리어답터는 '소비자'로서 존재한다기 보다는 '소비자'와 '제조사' 중간에 존재해요. 단순 소비자가 아닌 것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보다 좋은 제품에 대한 소개와 제품을 보는 눈을 가이드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또한 제조사들에게는 보다 멋진 제품을 기획할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도 하구요.

알라딘 : '무소유'에 대한 철학을 가지신 분들과는 극과 극일 것 같은데요.

최문규 : 하하하... 그럴수도 있겠네요. 아직 우리나라에서 '소비는 미덕이 아니다'고 생각하고 있고, 특히 고급스럽고 비싼 제품을 소비하는 행위를 좋게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이젠 그렇게만 강요해서는 문제가 생기죠.

알라딘 : 어떤 문제일까요?

최문규 : 지금 선보이고 있는 얼리어답터 제품이나 명품이라고 하는 제품들이 거의 일본이나 미국, 유럽 거에요. 국내에서는 새롭고 독특하고 고급스런 제품들이 소비가 되지 않아요. 새롭고 획기적인 뭔가를 개발했는데 찾는 분들이 없어요. 만들어진 제품이 판매가 되어야 재투자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순환이 이어질텐데 국내에서는 이걸 기대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거죠. 소비를 잘하는 것이 미덕이 될 수 있어야하고 얼리어답터가 그것을 보여드릴 겁니다.

알라딘 : 얼리어답터 사이트 earlyadopter.co.kr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오늘은 어떤 제품 리뷰가 올라왔을까' 기대를 하며 사이트를 매일 방문해요. 사용되는 사진 이미지들도 너무 이쁘더라구요. 거의 하루에 하나 이상의 제품 컨텐츠가 올라오던데, 어떻게 준비를 하는지 궁금하네요.

최문규 : 얼리어답터 사이트는 제가 운영하고 있는 '이바닥'이라는 웹에이전시에서 2001년 8월에 오픈을 했고, 현재 프리미엄 컨텐츠는 유료화하고 있어요. 컨텐츠 준비가 정말 만만치 않은데, 컨텐츠는 3주치 정도를 미리 준비해둡니다. 전직원(7명)이 총동원되죠. 하나의 리뷰를 쓰는데는 평균 8시간정도 걸리고, 많이 걸릴 때는 3~4일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역시 제품을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직원 한명이 한달에 한번정도 일본을 가고, 저도 종종 일본, 미국, 유럽을 방문하죠. 좋은 사진을 찍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는데. 보통 한 컨텐츠를 위해 150~200컷 정도의 사진을 찍어요. 지금껏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 사실 사진은 제 아버지께서 찍으신답니다. 아버지께서도 얼리어답터시거든요. ^^

알라딘 : 얼리어답터 가족이시군요. 얼리어답터 생활하시느라 시간과 돈이 많이 드실텐데, 혹시 아내나 가족에게 탄압(!)은 받지 않으시는지요?(웃음)

최문규 : 개인적으로 상당히 걱정스러우신가보군요. 하하하. 저야 이젠 이게 일이니까 그렇진 않아요. 아내는 얼리어답터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장모님께서 오히려 관심을 가져주십니다.

조현경 : 저는 다행히 독립해서 혼자 살기 때문에 별 일 없답니다. ^^

알라딘 : 제품 리뷰를 하고 난 제품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요. 모두 다 쌓아두시는지?

최문규 : 제품 리뷰 하단에 보면 구매신청 코너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사진을 찍고 리뷰를 하기 위해 개봉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구입가보다 싼 가격에 내놓고 일정기간 동안 구매신청을 받아서 추첨을 통해 한 분께 판매합니다. 공정성을 위해 요즘엔 자동추첨을 하죠. 아는 분들이 '이번 제품은 꼭 갖고 싶은데 힘 좀 써 달라'고 하시는데, 자동추첨이니 어떻게 해드리는 건 불가능하죠.


책으로 보는 얼리어답터가 바로,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


알라딘 : 최문규님은 지금까지 몇권의 컴퓨터관련 책을 낸 것으로 아는데,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은 그전의 책들에 비해 반응이 아주 좋은 것 같아요.

최문규 : 컴퓨터 관련 도서를 몇 권 내어봤는데 잘된 것도 있었는데 그렇게 반응이 좋은 편은 아니었죠.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느낌이 좋은데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이번에 느낀 게 있는데, 지금까지 '난 천재야'라고 생각했어요.(웃음) 혼자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죠. 혼자서 글도 쓰고 삽화도 그리고, 표지도 만들고... 그런데 역시 여러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모이고 토론되어 결과물이 만들어지니까 훨씬 좋은 결과를 낳는 것 같아요.

알라딘 : 벌써 베스트셀러가 되었는걸요. 인세는... 어떻게?

조현경 : 하하하... 글쎄요. 별로 실감이 나질 않는걸요. 인세는 출판사에서 일단 한번 주더라구요. ^^

알라딘 : 두 분이 어떻게 같이 책을 쓰게 되셨나요?

조현경 : 제가 심마니 기자시절에 최문규씨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알게 되었어요. 처음 만나서 인터뷰는 안하고 갖고 있는 제품 얘기하느라고 바빴어요. '아! 코드가 맞는구나!' '나같은 사람이 역시 있구나!'하고 계속 만나게 된거죠. 언론 인터뷰 때 이렇게 같이 나오기도 하고 그래서 계속 인연이 이어졌죠.

알라딘 : 혹시 두 분 사귀시는 건 아닌지?

조현경 : 아니에요. 저는 미혼이구요, 최문규씨는 두 아이의 아빠에요. ^^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종종 하는데, 오해하지 마세요~ 혹시 알라딘에서 오신 두 분은 커플?

알라딘 :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둘다 웃는 얼굴로 아니라고 했지만 정말 기분이 나빴을 것이다 ^^ )

알라딘 :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 다음 책은 생각하고 계시나요?

조현경 : 얼리어답터 사이트가 계속되고 제품들도 계속 나오기 때문에 책을 내는 건 어렵지 않은 것 같아요. <어른들을 위한 종이공작 로봇>이라는 책이 곧 나올 예정이에요. <아이디어 퍼주는 스푼>의 부록으로도 '얼리로봇'이 들어갔는데, 기대하셔도 좋으실 것 같아요.

알라딘 : 독자서평을 봐도 그렇고 주위에 계신 분들도 '책은 재미있게 잘 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는지 모르겠다'시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얼리어답터 사이트에서도 제품을 팔지는 않고 있는 것 같네요.

조현경 : 그런 문의를 정말 많이 받아요.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죠. 앞으로 얼리어답터 사이트에서 판매를 할 수 있도록 애를 쓰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어렵네요. 당장 구하려고 한다면 강남역에 'POOM'이라는 매장이 있어요. 인터넷에서는 '미니 매니아(www.minimania.co.kr)'와 '펀샵(www.funshop.co.kr)'에서 몇가지 제품을 구입하실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마세요. 저희도 해외에서 정말 어렵사리 제품을 입수하고 있으니까요.

알라딘 : 앞으로 국내 제품들을 소개할 생각은 없나요?

최문규 : 네, 그럴 계획이 있어요. 요즘 디자인이나 개발 관련 연구소 등 국내 기업들이 얼리어답터 사이트에 단체 가입을 하기도 하고, 저에게 초청강연도 부탁하시는 등 관심을 많이 보이세요. 이런 류의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중소업체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보고 자문을 해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하구요. 대덕에서 로봇을 제작했는데 한번 봐달라고 해서 며칠 뒤에 가보기로 했는데... 암튼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는 뛰어난 국내 제품이 많아요. 사이트에 제품을 올려 얼리어답터들의 평가를 받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는데 앞으로 이런 기회도 마련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지금 중국 진출을 계획하고 있어요. 엄청 큰 프로젝트가 될 것 같은데, 중국 시장에 국내의 뛰어난 제품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 같아요.

알라딘 : 정말 대단하시네요. 역시 얼리어답터는 아이디어가 남다르군요. 정말, 오랜 시간 이렇게 편하고 즐거운 인터뷰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문규, 조현경 : 멀리서 찾아오셔서 힘드셨을텐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얼리어답터 사이트 회원이시라고 했죠? 이것두 인연인데, 공짜로 연장시켜 드릴께요.

알라딘 : 아녜요~ 그냥 한 사람의 평범한 얼리어답터 회원으로 제 돈내고 써야죠. 하하하. (하지만 극구 사양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인생 최대의 말실수'라며 후회하고 있다. 역시 사람의 호의를 지나치면 안된다는 큰 교훈을...)

인터뷰를 마치고 사장실을 나오니 몇몇 직원들이 컴퓨터 앞에서 제품 컨텐츠에 사용될 이미지를 만지며, 제품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최문규님은 '미니 비행접시', '날으는 돼지' 등을 날렸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물끄러미 쳐다보며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