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햇볕이 좋은 날, 일상에서 길어올린 스물 여섯 개의 보석같은 이야기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펴낸 신경숙 작가를 만났습니다. 달처럼 반가운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2011년 <모르는 여인들> 이후 오랜만에 뵙습니다. 지난 해에도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 <엄마를 부탁해> 200만부 돌파 등 좋은 소식이 많았는데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올해가 2013년이죠. 2011년에 <모르는 여인들>을 내고, 2012년엔 내내 해외 일정이 많았어요. 에든버러 작가 축제 같은 데도 갔었고, 해외일정이 거의 한 달에 하나는 있었네요. 겨울이 되면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아서 작품 쓰겠다고 그랬었는데 못 지키고 그렇게 됐어요. 작품을 안 쓰고 왔다 갔다 하니 겨울부터 행복하지가 않더라고요. 이번 겨울에는 문학동네 계간지 <봉인된 시간>이라는 중편소설 쓰면서 지냈고요, 그걸 쓰면서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책 만드는 작업을 같이 했어요. 이제 그러고 봄이 왔어요. 지금부터는 장편 작업에 들어가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손바닥 소설> 같은 책도 있고요, 체호프의 신문 연재 소설도 있고, 성석제 작가의 소설집도 있습니다. ‘짧은 소설’이라는 장르는 실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전
뉴욕에서 지낼 때 그림 그리는 선생님이 같이 있었어요. 그분에게 내가 감동받은 게 나를 만나러 나올 때도 스케치북을 항상 가지고 나오시는 거예요. 언제나 뭔가를 스케치하고 있어요. 제가 뉴욕에서 독자 만남 행사를 할 때도 잠깐 오셨는데, 내 모습도 그때 다 스케치를 하셨더라고요. 굉장히 큰 작업을 하는 분인데, 사진을 찍지 않고 항상 본인이 본 것을 스케치해서 다니는 분이었어요. 그땐 그런가 보다 했죠.
서울 와서 그분 댁을 가보게 됐는데, 작업실에 스케치북이 연도별로 엄청나게 쌓여있는 거예요. 자기가 그린 그림에 정열을 다 바치는 분이라는 건 알았고, 그것으로 오롯이 인생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도, 젊은 날부터 십 몇 년씩 스케치했던 노트들을 봤을 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정말 가슴이, 웅장한 건물의 기조물을 본 느낌이랄까. 그랬어요.
<달에게…>에 실린 글을 쓸 때는 기존에 내가 소설 속에서 가지 못한, 양껏 펴내놓지 못한 다른 식의 이야기를 스케치하듯, 사진 찍듯 짧게 묘사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그게 더 힘들어요. 왜냐면 장편은 복선도 깔고 할 여유가 있지만 이 소설은 아주 짧은 분량 안에서 앞뒤 전후를 전부 다 얘기해야 되잖아요. 그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했죠. 그 동안 내가 부족하다고 나 스스로도 느끼고, 가끔 다른 사람들한테도 들었던 얘기들. “소설 읽고 있으면 며칠은 아무 일도 못하겠어.” 딱히 지탄만은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그래도 다른 각도로 표현해놓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때가 있어요. 그분이 스케치를 계속 하는 것처럼, 오래 쓰려는 생각을 했었죠.
한 이년 이 소설을 쓰고 나니까, 이런 기분이더라고요. 시인이면서 소설가면서 강의도 하는 분들에게 듣는 이야기인데요, 자기가 마음 속에 소설을 써야겠다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 게 자기도 모르게 강의를 하다 이야기로 나온대요. 그러다보면 시로도 소설로도 안 되고 사라진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조금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달에게 들려주는 짧은 형식의 글을 이년쯤 쓰는 동안, 내가 이 응축된 순간들을 쓰는 동안 장편 작업을 하려고 생각해두었던 장면들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고이는 시간을 둬야겠다 싶어서 중단을 했었어요. 중단하고 보니 그건 별개의 문제였던 것 같지만요.
개인적인 이야기입니다. 최근 치과에 다니게 되었는데, 병원에 다니기 전 <사랑스러운 할머니들> 꼭지를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어요. ‘방을 구하러 다니거나 이력서를 고쳐 쓸 때’, 체념하는
순간 이 이야기를 떠올렸음 좋겠다는 작가의 말 속 이야기가 아마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친밀한 이야기가 독자에게 보내는 인사 같은 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달에게…>는 4,5년 전에 북새통이라는 잡지에 한 달에 한번씩 연재를 하면서 시작하게 됐어요. 자유롭게, 손바닥만한 이야기를 완성하기로 했고 ‘자유롭게’라는 말이 끌려서 시작을 했죠. 일년 하는 동안 작업이 즐거웠어요. 글을 쓰기 위해 한달 동안 나한테 일어났던 일 중 가장 내 마음을 흔든 이야기를 생각하는 시간이 그랬고요, 쓰는 시간도 다른 글들을 쓰는 시간보다 더 즐거웠어요. 그래서 계획했던 것보다 길게 작업을 하게 됐었죠. 그 동안 <리진>이며 <엄마를 부탁해>며 <어디선가…>며 <모르는 여인들>을 내고 하면서 이 책을 낼 틈이 없어서 책으로는 늦어졌네요.
독자들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죠. 당연히. 이 책을 쓴 사람은 나지만 읽어주는 사람은 독자이고요. 요즘 너무 다 시무룩하잖아요. 모든 일들이 잘 안 되고, 안 되는 일이 훨씬 많고, 흥도 안 나고, 착 가라앉은 기분이고요. 일부러 시기를 맞추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요즘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됐네요. 작가의 말 쓰면서 그 생각들이 났어요.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이야기, 잘 안 되는 이야기, 뉴스 같은 걸 봐도 너무 울적한 소식들, 울적함을 넘어서 ‘어떻게 이런 일을 인간이 할 수 있을까.’ 상상하기도 힘든 일을 가장 많이 겪는 때가 요즘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일을 자꾸 듣고 보고 하면 정말 인간이, 인간인 게 싫다는 생각이 들 때 있잖아요.
이 작품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은 작품을 쓰던 기간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이 준 작지만 반짝하면서 어떤 한 순간을 빛나게 해줬던 것들을 담았어요. 웃음의 코드일 수도 있고, 짠한 코드도 있겠죠. 뉴스에서도 제외되고 아무렇지도 않은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던져주는 삶의 의미를 발견할 때, 의미에 가닿는 순간순간이 있겠죠.
나한테는 소설 속 ‘우체부 아저씨’ 같은 사람들, 자기 자리에서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 보게 됐을 때 이상한 감동이 있어요. 오늘 아침에도 마켓에 가서 장을 잠깐 보는데, 마트 아줌마가 저한테 그래요. “신작 나온 거 축하해요.” 너무 깜짝 놀랐죠. “내 딸이 그러는데 재미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읽어볼라 그래요.” 그러세요. 콩나물을 열심히 담으면서 저를 바라보면서요.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 그분들이 주는 메시지 같은 게 나한테 어떻게 다가오냐면 ‘그래… 그래도… 인간인 게 좋지. 인간인 것이 좋다…’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하게 하는 거 같아요. 이 작품은 나를 통한, 내 렌즈에 비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 또 그들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고 그러죠.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건강한
대사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아 사랑해야?” “호모야?” “뱀도 먹은 년이다.” 같은 말들이요. 이전에 신경숙 작가님 소설을 읽었을 땐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 인물들이 없어서 신선하기도 했고요.
이 작품 안에 나오는 매 순간, 창작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적어도 ‘어떤 순간’에는 내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어요. 내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내가 겪은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누가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듣게 되거나, 봤거나 하는 상황들을 그렸기에 대사들이 더 사실적으로 박혔을 거예요. 정말로 “뱀도 먹은 년이다.” 그랬었고요. 묘한 코드이긴 하지만, “뱀도 먹은 년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아, 그럴 수도 있겠군.’ 생각하며 그 순간을 치러낼 힘이 생기죠. 이미 먹었으니까요. ‘풋’하고 한번 웃게 되는, 또 웃음에도 그치지 않고 잠깐 생각하게 되는 순간. 웃음이 여운처럼 깔리기를 바라면서 쓰긴 썼죠. 쓰는 시간이 나한테도 그랬어요. 쓰고, 웃고, 생각도 해보고 그랬죠.
달은 응시하게 하고, 바라보게 하잖아요. 태양에 견주는 것들, 너무 눈부시고 불타고 하는 것들은 응시하게 하진 못해요. 조금 멀리 있는 것들, 먼산, 면 풍경, 하늘의 달, 이런 걸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들죠. 그 자체가 은은하고, 무늬처럼 번져가는 것들. 결국은 그런 힘이 그래도 한 달을 생각하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은은한 어떤 순간들을 담아서 나온 책이죠.
브레히트의 시가 등장하는 짧은
소설은 <엄마를 부탁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엄마를 부탁해>속 피에타상을 바라보던 장면과 그녀가
그렇게 가벼워지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을까요 읊조리는 장면, 감동의 깊이가 다르진 않았습니다. 당산역을 지나치는 두 할머니의 모습도 자꾸 떠오르고요. ‘여운’이 느껴졌어요.
<모르는 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작품은 <엄마를 부탁해>를 계간지에 연재할 무렵에 썼던 것 같아요. <엄마를 부탁해>에 브레히트의 ‘나의 어머니’라는 시가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 시를 읽으면서 갖게 된 여운이 깔려 있겠죠. 짧은 글로 <모르는 이에게..>로 그려져 여기 실렸고요. ‘그때 엄마는 그 역에서 걸어서 밤중에 혼자 집에 가셨지’ 그런 생각을, 내가 처음 했다는 게, 그게 참 신기하고 내가 밉더라고요. 열일곱에서 스물일곱, 그 사이에 이어진 일이었을 거예요.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굉장히 길이 험한데 밤길이고… 그걸 생각하게 해준 시였던 것 같아요.
당산역을 지나치는 두 할머니의 모습은 제가 직접 본 거예요. 소설가는 사람, 군상들이 많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되는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너무 일찍 조용한 곳에 살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하고요. 지하철을 자주 안 타서, 지하철을 타면 가만히 보게 돼요. 내릴 때까지 보게 된 풍경이 그 두 할머니였어요. 구체적인 프레임은 창작한 거지만, 가끔 그렇게 제가 본 사람들이 주는 게 있죠.
시기가 겹쳐 있었던 건지, 모아두고 보니 엄마에 관련된 글이 몇 편 있더라고요. 오늘 아침에도. 시골에 있는 나의 어머니하고 통화를 했어요. 생각은 해요, 항상. 브레히트를 시를 읽거나, ‘엄마가 그래서 나한테 전화했구나’ 나중에 깨닫긴 하죠. 하지만 현실의 나는 <달에게..>속 번역하는 여자처럼 다음날 전화하고 이러질 못해요. 여전히 나는 그런 걸 마음 속에 가지고 있지만, 잘 안 되죠. 다 그런 것 같아요. 그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 선택을 해야 될 때 영향은 끼치지 않을까요? 공감하고, 깨닫고 느끼고… 했던 것들이, 축적된 그것들이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치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일상을 너무 시시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늘 오늘 같은 내일 어제 같은 오늘을 시시하게 여기는데, 사실 그 일상이 시간들을 미래로 연결시켜주는 소중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그걸 잘 모를 때가 많죠. 이 책에는 짧고 적나라하게, 나를 만난 사람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요. “내가 해준 이야기네” 이러고 놀라는 사람도 있어요.
까치와 고양이가 싸우는 얘기도 일상 속에서 발견된 것들이잖아요. 귀농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듣게 되었을 때. 그들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들어왔죠. <노루는 무슨 노루> 같은 얘기도 그래요. 겁도 많은 사람이 아이 때문에 시골에 귀농을 했어요. 아이를 땅이랑 자유롭게 길러보고 싶어 내린 결정이라고 그래요. 가끔 거기서 감자도 보내오고 그러죠.
노력하는 것들의 아름다움, 인간 아닌 것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왔어요. 아프지 않을 때까지
먹는 곰. 홀로 노력하는 물옥잠의 모습이 그랬고요. 심지어
선하지 않아도 성실한, 담을 넘는 일조차 열심히 하는 도둑의 모습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목사도 열심히 스님한테 전도하고 그러죠. (웃음) 나도 교정 보고 하면서 읽는 동안에, 만약에 써놓지 않았으면 사라지고 말았을 사람들의 모습, 순간들의 모습이 생각나더라고요. 그때 만났던, 나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 타인이지만, 글 쓰는 나에게 끼친 영향이라는 게 이렇게 막대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장편 작업을 십 년 단위로 계획해서 해요. 90년대에서 2천년대까지 어떤 작품, 그 이후 어떤 작품… 이렇게 혼자 정해놓고 작업을 해왔어요. 어쨌든 그 약속대로 하나하나씩 썼죠. 그 사이에 <모르는 여인들>도 있고 이 <달에게…>도 있어요. 이런 단편들의 응축된 순간순간들이 없었다면 장편의 그 긴장에 더 셌을 것 같죠. 글을 쓰는 저에게도 타인의 모습이 영향을 끼쳤어요.
조카 ‘선’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소설을
읽는 동안 일관된 인간상이 잡히는 것 같았어요. “선하게, 쓸모
있게.” 쓰이는 사람이요.
“선하고 쓸모 있다”는 말이 교육을 통해 누군가에게 주입된 상태에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된다면 그건 아무 효과가 없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해요. 오히려 억압을 받죠. 근데 자기가 그렇게 느낀다면 다르겠죠. <하나님의 구두>라는 책을 읽었을 때는 나의 느낌이 그랬어요.
<달에게..>를 내고 사인회도 하고 그랬는데요, 그 대목을 가지고 사인을 써달라고 하는 젊은 친구들이 꽤 많았어요. 글을 쓴다는 것의 두려움을 또 한번 느꼈죠. 일부러 열심히 더 얘기를 해주고 그랬어요. ‘선하게 살아야 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그렇게 노력을 해야 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얘는 재수를 앞두고 잇는 상황이잖아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은 정해졌죠. 그러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니까, 이 일을 하면서 살면은 실패해도 행복할 거야, 이런 생각은 하게 되겠죠. 실패해도 행복할 일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한 거라고 봐요. 그런 일을 찾게 되면, 자기가 그 일을 하는 게 행복하니까 열심히 할 거 아니겠어요. 그럼 저절로 열심히 하는 자체가 타인에게 쓸모 있는 것이 되겠죠.
선의는 저절로 발현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최선을 다해서 몰입할 수 있는 어떤 일을 발견해서. 그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기 정성과 열정이 다 들어가겠죠. 선하에겐 그림이니까요, 주인공인 선하가 정성을 들여 자기가 완성시킨 그 그림을 내놓았을 때 그림을 보는 사람, 자기하고 함께 살고 있는 동시대의 사람의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겠죠. 선하고 쓸모 있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소설 속 우체부 아저씨가 아닌, 현실의 그 우체부 아저씨한테 감동받은 게요. 그 아저씨는 제가 누군지 몰랐을 거예요. 그때 책을 너무 많이 부쳐야 되니 자주 뵙게 되어 얘기를 많이 했어요. 이렇게 나는 살았고 딸은 뭐하고 있고 너무 자랑스럽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일을 더 하고 싶지만 정년이라는 게 있어서 일을 곧 그만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본인은 귀농을 하고 싶은데 그 부인이 귀농을 원하지 않는대요. 그래서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얘기를 하는 게 참 감동스러웠어요. 나는 그래도 어떻게든 아내를 끌고 가겠다, 강력하게 얘기하지 않고, 자기 꿈대로 시골에 작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데. 아내가 탐탁지 않아 해서 할 수 있게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런 얘기가 참 나를 생각하게 하더라고요. 자기와 함께 해온 사람을 배려하는 게 끝까지 거기에 숨겨져 있는 거죠. 그런 와중에 ‘물옥잠’에 눈이 갔어요.
제가 아주 어려서 치과를 진짜 많이 다녔어요. 치과 가는 길로 소설도 쓰려고 했어요. 어려서는 우리 아버지가 자전거에 태워서 정읍으로 갔었고, 스무 살엔 제 이가 너무 약해서 맨 큰 형제가 또 치과에 데리고 다녔고, 서른이 됐을 때 스스로 치과를 찾아가는 거였어요. 서른쯤부터 내가 스스로 다녔죠. 그렇게 이가 나빠도 그래도 어릴 때부터 치료를 해줬기 때문에 원 뿌리는 남아 있어요.
<사랑스러운 할머니들> 이야기도 두 개를 모은 거죠. 어린 시절 치과 갈 때마다 아버지가 다른 생각을 하라고 했었거든요. 막 웃었던 일을 생각해라, 이런 얘기와 할머니들 얘기를 더한 거죠. 이 소설에 등장하지는 않는 이야기지만, 어렸을 때 치과 갈 때 아버지 자전거 뒤에서 울고 그러면 “다른 생각해라, 아픈 것만 생각하면 더 아프다” 했었거든요. 평범한 말이지만 맞는 말씀이죠. 우리 지금도 어떤 큰 문제하고 부닥쳤을 때, 문제를 당장 해결하려고 너무 깊이 생각하면. 오히려 더 꼬이죠. 다른 생각을 하고, 바람이 통할 수 있는 틈, 그런 여유를 가지고 보면 어떻게 해야 되겠다, 이런 지혜 같은 것도 생기겠죠. 그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적인 일은 해결이 될 수도 있고요. 지나고 보면 감사한 일이죠. 그때 그 시골딱지에서, 딸을 자전거에 태워서 그 먼 길을 치과를 다녔잖아요. 덕분에 아직도 나는 내 이를 고스란히 갖고 있긴 해요. 처음 초등학교 삼사학년, 그 이가 아직도 있으니까요. 얼마나 이 아프다고 울고불고 그랬으면 그 바쁜 시골에서 그렇게 태우고 다녔을까 싶기도 하고요.
‘순간의 반짝임’이라고 이 이야기들을 표현하셨는데요, 짧은 소설이다 보니 이야기의
호흡이 짧습니다. 장편의 경우 이동하며, 연속성을 갖고 완성하게
될 텐데 이 이야기는 완성 과정이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쓰기 전에는 한달 동안 있었던 일들을 파노라마처럼 다 떠올려본 다음에, 그 이야기를 써야겠다 생각을 해요. 그 후엔 어떻게 쓸까, 이렇게 생각하고 책상에 앉죠. 나도 이 작업이 재미있으니까 앉은 자리에서 쓰고, 수정까지 하고 원고를 보내기까지 하고 일어나곤 했어요. 그런 경우 난 거의 없거든요. 초고를 쓰는 기간도 길고, 쓰다가 접어두고 다시 쓰고 이런 일들을 반복하다가 본 작업으로 들어가는 때가 많아요. 1/3을 이미 작업을 했어도 버리기도 하고, 이렇게는 안되겠다 싶어서 포기하기도 하고, 그런 것도 많죠.
<달에게…>에 나오는 글은 좀 다르게 썼어요. 집에 있는 내 책상에서만 쓴 건 아니에요. 여행지에서도 많이 썼고 해외에서도 많이 썼고 그랬어요. 마감이 기다리니까 그렇기도 했는데 (웃음) 즐거웠던 것 같아요. 뭘 관찰할 수 있는 힘도 있었고요. 글을 쓸 때의 계절, 짧은 이야기를 쓸 때 발생했던 분위기 같은 게 스며져 있죠.
위대한 사람이든, 아니면 아주 촌부든 정말 자기가 자기 자신도 잊어버린 이름을 갖고 사는 익명의 존재든 간에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는 건 다 또 같은 길이죠. 젊은 날, 혹은 어느 시절에 희망을 많이 가졌던 사람이 이 세상을 떴다. 그런 소식은 지금도 상실감이 커요. 그런 소식을 들을 때 연금 상태에서 그를 지켜봤던 사람의 인터뷰를 읽게 됐을 때 그 감정. 내가 쓰지 않았으면 사라졌을 감정이 소설로 쓰면 언어로 남아있게 되죠. 시간이 우리 마음 속에서는 둥근 원이지만 과거로 흘러가는 법은 없잖아요. 물리적으로는 계속 앞을 향해서 가는 시간인데요, 채집이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로 재구성하면, 남아있는 것들은 불멸한다고 생각해요.
<바이올렛> 같은 소설이 그래요. 그 작품을 쓸 때는 삼청동에서 정동까지 스케치하듯이 세밀하게 묘사를 했어요. 가게 이름 하나까지 전부 아주 리얼하게 했다고요. 지금 그 길에는 하나도 남아있는 게 없어요. 내 소설 안에만 남아있어요. 그렇게 우리 사는 세상이 변화가 심하죠. 언젠가 세월이 또 많이 지나서 또 지금 모습도 사라지고 없게 되겠지만, <바이올렛> 안에 묘사된 그 길의 모습을 보면 ‘아 이때는 광화문이 이런 모습이었군.’ 이라고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요.
도서 뒷면에 “명랑하고 상큼한 유머”라고 이 소설이 설명되어 있어요. <달에게…>는 이런 책이다. 이 소설집에 가장 어울리는 형용사를 꼽아주신다면.
결국은 그 말이겠네. 적절한 형용사일지. 읽고 나서 ‘아 그래도 내가 인간이어서 참 좋다.’ 그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웃으면서. 한번 환하게 웃고. 그 끝에 생각이 물리는, 그런 느낌이면 좋겠네요.
<어디선가…>가 해외 출간 계획을 앞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계와 함께
읽는 작가님의 2013년 계획이 궁금합니다.
나한테도 해외 독자를 본다든지, 책이 해외에서 출간된다든지 이런 게 그동안 내 문학의 시간 안에서는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신선했어요. 새로운 바람을 쐬는 기분이어서 상큼하기도 했고요. 2010년에서 201년까지 에든버러 작가 축제, 베이징, 상하이 등 정말 많이 다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나한테는 많이 없던 일이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신선했고요. 그러나 작품을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좋지만은 않았어요.
뭔가 더, 중요한 것을 하지 않은 채 뒤에다 놔두고 다른 장소에 온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었어요. 2년동안의 새로운 바람은 충분히 쐬었다고 생각하고요, 다시 내 책상으로 돌아와서 13년에는 작품 쓰는 일에, 장편 완성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해요. 중간중간에 이런저런 일들은 있으나 그것들을 같이 해 나가야겠죠. 나한테 가장 중요한 일을 중심에 둘 2013년이 될 거예요. <어.나.벨>은 2014년에 출간될 거에요. 그 책은 또 그 책의 운명이 있을 테니까, 원작자로서야 가능한 책이 잘 출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한국어 안에만 갇혀있다가, 작품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이 되어서 문화도 언어도 다른 사람들하고 소통이 된다는 게 신선하긴 했어요.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던 점도 좋았고요. 그런 기회가 나한테 주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나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상황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정성껏 했어요. 그렇지만 나는 작가이고, 나에게는 작품 쓰는 일이 더 중요하니까요.
작가뿐 아니라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든 모두 적용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한 인간에게 최종적으로 남는 것은 자기 모국어하고 자기가 먹은 음식이라고 해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나는 한국어로 이루어진 사람이지요. 다른 나라에 가서 러시아말로, 일본어로 듣고 그 말을 다시 한국어로 통역해 들으면서 내가 느낀 것은 나는 한국말로 이루어진 사람이구나 하는 것이었어요. 아직은 전부 다는 아니지만, 세월이 지나면 내 어머니가 밭에서 그냥 막 뜯고 해서 만든 음식들을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 그리워하며 살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나는 한국어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내 모국어인 한국어로 가능한 가장 풍요롭게 하는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에요. 행운이 있어서 계속 내 작품이 읽히게 된다면, 가능하면 내 작품을 충분히 이해한 상태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훼손되지 않는 행운을 또 바랄 뿐이죠. ?
다른 저자 인터뷰 보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