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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에세이
국내저자 >

이름:오은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82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정읍

직업:시인

최근작
2024년 9월 <몬테크리스토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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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쓰는 사람보다 읽는 사람의 마음이 더 컸던 시간이었다. 동료 작가들의 멋진 글 덕분에 요일별로 기뻤다.

너랑 나랑 노랑

여기에 실린 서른 점의 작품들은 하나의 색채가 작품 전체를 압도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 물론 대상이 된 화가들 중 대다수는 우리가 흔히 ‘색채 화가’라고 부르는 이들이 아니다. 색채 화가로 그 대상을 한정했다면, 나는 아마 야수파와 표현주의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개중 어떤 화가들은 형태나 상징, 기법 등 다른 잣대를 들이댔을 경우에 더욱 빛이 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조금 고집을 부려 오직 색에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림들을 오해하고 오독하기로 결정하고 나니, 마음껏 느끼고 상상하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색으로 떠나는 모험이 비로소 흥미진진해진 것이다. 책을 쓰면서 나는 직접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되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화가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관찰자로 둔갑하기도 했다. 그림을 보고 느꼈던 여러 가지 소회를 시로 옮겨 적기도 하고 편지의 형태로 화가에게 되돌려보내기도 했다. 레시피를 만들고 화가와 가상의 인터뷰를 하고 그림 속 인물이 되어 모놀로그를 써보기도 했다. 이것은 분명 행복한 경험이었다. 내가 맨 처음 다룬 작품은 뭉크의 <키스>였고, 내가 마지막 마침표를 찍은 작품은 클림트의 <키스>였다. 키스에서 시작해서 키스로 끝난 셈이다. 서른 점의 작품을 마주할 때 나는 그야말로 키스하는 심정이었다. 정확히 말해 키스하기 직전의 심정이라고 표현해야 맞을 것 같다. 어떤 키스는 절박했고 어떤 키스는 짭조름했으며 또 어떤 키스는 황홀하면서도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어렵사리 서른 번의 키스를 하고 나니, 입술은 다 헐고 궁색만이 남게 되었다. 가만히 더듬어보면 지금도 그 직전들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키스의 숨결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가닿기를 바란다.

다독임

다독이러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돌아보는 일 지난 10여 년간, 나는 돌아보는 사람이었다. 막힘없이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보이지 않는 벽이 앞을 가로막는 일이 많았다. 그때마다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을 때도,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할 때도, 혹여 놓친 것은 없는지 살필 때도 나는 늘 뒤를 향해 있었다. 돌아보는 일은 크게 네 가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첫번째로 고개를 돌려 무언가를 보는 일이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빠뜨린 것들이 어김없이 있었다. 미처 챙기지 못한 것들이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몰랐을 것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거기에 있었다. 거기를 향해 심신이 기울어졌다. 두번째로 지난날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다. 흔히 미래 지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과거를 더듬지 않으면, 현재를 응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매일매일 고개를 돌려 예전을 헤아리는 시간을 가졌다. 나를 크게 웃게도, 많이 울게도 만들었던 것들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것들 때문에, 아니 덕분에 나는 이런 사람이 된 것이다. 세번째로 돌아다니면서 두루 살피는 일이다. 산책이 중요한 일과가 되면서, 나는 단순히 걷는 일을 넘어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걸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는 것은 이미 딴생각이었다. 밥을 먹고, 밥을 먹게 해주고, 보이는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어내는 일과는 전혀 동떨어진 무엇이었다. 딴생각을 하며 걷다가 우연히 바라본 곳에는 늘 무언가가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그 무언가가 딴생각의 꼬리를 또다시 잡아당겼다. 마지막으로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일이다. 몸이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은 반대로 허기졌다. 하루하루가 빽빽했지만, 그 안에 내가 숨쉴 틈은 없었다. 일에 파묻혀 사는 내내, 나는 많은 존재를 떠나보내야만 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다육식물도, 사들이기 바빴던 책도 나를 견디지 못했다. 아주 오래는 기다려주지 못했다. 잘살기 위해 애쓰다가 어느새 잘 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인데, 내가 아닌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돌아봄이 돌봄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가족을 돌보고 가까운 이들을 챙기고 반려식물에 물을 주고 단어를 돌보며 책을 껴안는 일, 그것은 나의 숨통을 틔우는 일이기도 했다. 한밤의 다독임에는 늘 책이 있었다. 다독(多讀)하는 일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나와는 어느 것 하나 겹치는 게 없는 사람에게조차 눈길이 갔다. 나도 모르게 다독다독 감싸고 달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지금 여기에 살지만, 늘 그때 거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2년 사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아팠다. 황현산 선생님, 허수경 누나, 그리고 우리 아빠…… 울지 않기 위해 시를 쓰는 날이 이어졌다. 울고 남은 힘으로는 산문을 썼다. 안 써본 이야기를 끄집어내준 『대산문화』, 무엇보다 지속적으로 귀한 지면을 내어준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에 감사드린다. 마감이 있다는 사실은 허우적거리는 와중에도 어찌어찌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거친 숨을 쉬게 만들어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에 없지만, 그때 거기가 있기에 나는 여전히 숨을 들이마시고 내쉰다. 보듬다, 감싸다, 쓰다듬다, 다독이다, 어루만지다 같은 동사에 마음을 내준 것도 그즈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직접 할 때 역설적으로 찾아오는 것이기도 했다. 다독이러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돌아보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더 큰 위로를 받은 쪽은 나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온기에 큰 신세를 졌다. 이 책의 제목을 짓고 글들을 솎고 엮어 한 편 한 편 다독여준 민정 누나, 꼼꼼하고 다정하게 한 문장 한 문장 살펴준 필균 누나와 성원이, 세심한 배려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빛날 수 있게 애써준 디자이너 한혜진님에게도 저 단어들을 빚지고 있다. 만약 들어가지 않았다면 돌아볼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 용기 없는 내가 발 들인 그곳에는 힘없는 것들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있었다. 막힘없음이 힘없음이 되고 힘없음이 다시 힘입음이 되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를 잊지 않기 위해 메모한 단상이 이 책에 실린 글이 되었다.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나는 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지면 위에서 고꾸라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아빠가 한 말이 산문 쓰기의 지침이 되어주었다. “은아, 신문에 실린 글은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이잖아. 이번 글은 좀 어렵더라.” 한 달에 한 번 아들의 글이 신문에 실리던 날을 누구보다 기다리던 아빠였다. 그때부터 나는 내 안의 모든 부기를 빼려고 애썼다. 아빠가 말한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에는 ‘누구나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다독다독은 의태어지만 다독이거나 다독임을 당할 때, 우리는 남들이 듣지 못하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괜찮아, 괜찮아”라는 뭉근하고 다정한 위로가 들릴 때도 있고 “괜찮아? 괜찮은 거지?”라는 다급한 물음이 들릴 때도 있다. 어느 것이든 괜찮은 사람이 괜찮지 않은 존재에게 건네는 말이다. 하는 사람도, 그것을 듣는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괜찮아지게 만드는 말이다. 마침내 나를 살게 만드는 다독임이다. 2020년 3월

마음과 엄마는 초록이었다

엄마 하고 부를 때 2022년 10월 7일과 8일,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가 열립니다. 시경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시 경찰청을 뜻하는 시경(市警)이 가장 먼저 나옵니다. 중국 최고(最古)의 시집인 시경(詩經)이 두번째로 등장하고 시의 경지를 뜻하는 시경(詩境)이 그뒤를 잇습니다. 시가 있는 경기를 줄여 ‘시경’으로 부르기 시작했지만, 생각해보니 정기적으로 개최되는 시 축제가 없는 한국에서 연례행사로 시 축제를 선택한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경기도가 ‘시의 수도’라고 불릴 만하다고, 시의 경지를 목도하는 데 이보다 더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경기 시 축제에 걸맞게 경기도에 살고 있는 마흔 명의 시인들에게 ‘엄마’에 대한 시와 짧은 산문을 요청했습니다. ‘경기도에 이렇게 많은 시인이 살다니!’ 경탄하면서도 전국에 흩어져 있을 엄마들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한결같이 거기에 있어줄 것만 같은 엄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깝다는 이유로 날 선 말을 던지게 되는 엄마,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그것이 오해였음을 뒤늦게 깨닫게 해주는 엄마⋯⋯ 시들을 읽으며 엄마의 세계는 넓고도 깊음을, 높고도 짙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를 헤아리는 사이, 엄마가 된 시인도 있었습니다. 제1회 경기 시 축제의 키워드로 ‘엄마’를 정한 것은 우리의 시작에 엄마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너무도 당연해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는 무명씨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그의 사연을 톺아보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는 나사못이나 피리를 보고 엄마를 떠올립니다. 또다른 누군가는 책과 책 사이에서 문장으로, 불꽃놀이와 심벌즈에서 불꽃으로, 소리로 나타난 엄마를 마주합니다.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보면서 엄마의 삶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엄마와의 관계를 곱씹는 시간 속에서 엄마는 입을 갖게 됩니다. 도처에 있는 엄마들이 시편에서 이야기합니다. 힘듦을, 나이듦을, 모여듦을, 젖어듦을, 그리하여 물듦을. 신산하기만 한 ‘드는 일들’이 깃드는 일로 한데 모이게 됩니다. 제1회 경기 시 축제 <시경(詩京): 시가 있는 경기>의 슬로건은 “시는 만난다”입니다. 흔히 사람이 시를 만난다고 생각하지만, 살면서 뜻하지 않게 시를 마주치고 그 시가 삶을 어떤 식으로든 뒤흔들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쩌면 시가 만나는 순간이 아닐까, 거기가 어쩌면 시가 당도하는 자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1년에 하루이틀쯤 시가 직접 만나러 가는 자리가 있어도 좋지 않겠어요? 우리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아닌, 엄마가 직접 말하고 만나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시는 만난다”는 말은 “엄마가 움직인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책에 참여해주신 마흔 명의 시인들께 고개 숙여 고마움을 전합니다. 상상과 기획을 실행으로 옮겨주신 경기문화재단과 경기상상캠퍼스 담당자 여러분께도 각별한 마음을 건넵니다. 원고 청탁부터 편집, 디자인, 발간까지 발 벗고 나서준 출판사 난다가 아니었다면 이 시집은 빛을 보지 못했을 겁니다. 빛 뒤에는 빚이 늘 그림자처럼 남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살겠습니다. 엄마, 하고 부를 때 입안에 고이는 시금한 느낌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2년 가을

마음의 일

이 책은 재수 작가와 긴 다리를 건너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다리 위에 섰을 때에는 막막했습니다. 지칠 때마다 ‘함께’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다리를 건너니 아득했던 저쪽 풍경이 생생한 이쪽 풍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가 그림을 만나 이야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께 손 내밀고 싶습니다. 청소년기를 떠올릴 때 뭉클해지는 분들께 말 걸고 싶습니다. 함께하자고, 친구가 되자고 기꺼이 온기를 전합니다. 저희와 함께 다리를 건너 보시지 않을래요?

마음의 일

어릴 적엔 장래 희망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똑같은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할 수 있었다. 탐정이었다가 발명가였다가 우주 비행사였던 어른이 선생님과 탁구 선수를 거쳐 다시 어린이가 되었다. 은퇴는 없었다. 변신만 있었다. 돌이켜 보니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던것 같다. 어른이 되는 일이 한없이 멀게 느껴졌기 때문에 가능한 상상이었다.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아이가 한 반에 예닐곱 명씩은 있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간혹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이는 있었지만 시인이 되겠다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혹여 청소년 시기를 거치며 꿈을 잃어버리지는 않았을까. 무수한 장래 희망 중 자신에게 걸맞은 직업을 찾았을까. 당시에는 왜 장래 희망이 직업을 가리킨다고만 생각했을까. 80일간의 세계 일주를 하는 것도,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는 것도, 하루에 30분씩 산책하는 것도 희망일 텐데. 그래서 나는 아직껏 장래 희망을 생각한다.

없음의 대명사

‘잃었다’의 자리에는 ‘있었다’가 있었다. 2023년 봄

왼손은 마음이 아파

리듬은 펜을 쥘 때 다시 살아난다. 生의 리듬에 균열이 생기던 순간들을 한데 그러모은다. 그것들은 원래의 리듬을 되찾아주는 것은 물론, 또 다른 리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어깨를 으쓱하기도 하고 다리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도 한다. 손가락 사이에 펜을 넣고 돌리기도 한다. 아무리 연습해도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실소가 터져 나온다. 백지 위를 움직이는 나의 의식도 리듬을 타고 순항한다. 이따금 끼어드는 무의식이 이 율동에 생기를 더해준다. 나를 되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손바닥 위로 보이지 않는 힘들이 모인다. 주먹을 꼭 쥔다. 순순히 풀어지지 않으려고, 손가락이 서로를 의지한다. 나는 울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 - 에세이 「생의 리듬」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어떤 날에는 손바닥에 그려진 실금들 중 하나를 골라 무작정 따라가고 싶었다. 동요하고 싶었다. 가장 가벼운 낱말들만으로 가장 무거운 시를 쓰고 싶었다. 그 반대도 상관없었다. 낱말의 무게를 잴 수 있는 저울을 갖고 싶었다. 어떤 날에는 알록달록한 낱말들로 무채색의 시를 쓰는 꿈을 꿨다. 그림자처럼 평면 위에서 입체적으로 움직이고 싶었다. 한동안 내가 몰두한 건 이런 것들이었다. 입 벌리는 일을 조금 줄이고, 귀 기울이는 일을 조금 늘렸다. 귀를 벌리면 나비떼, 입을 기울이면 나이테. 터지고 있었다. 아무것이, 아무것도, 아무것이나.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진, 동요하는 어떤 낱말이. 그러고도 한번 더 동요하는 어떤 마음이. 돌아오는 길에는, 으레 영혼을 삶는 장면을 상상한다. 어쩔 수 없이 아름답다. 2013년 봄의 어떤 날

유에서 유

꿀맛이 왜 달콤한 줄 아니? 꾼 맛도 아니고 꾸는 맛도 아니어서 그래. 미래니까,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몰라서 달콤한 말들이 주머니 속에 많았다. 2016년 여름 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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