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우리가 너무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긍정적 가치들이
실은 우리를 그저 세상의 부속품으로 잘 기능하게 하기 위한 ‘누군가’의 전략적 덫은 아닌지 돌아보는 일. 글쓰기는 나에게 그런 일이다.
그것은 때로 위태롭고, 불편하고, 외로운 일이지만, 통쾌하고, 위안되고, 가슴 뛰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함께 나눌 벗을 찾아 두리번거려본다. 눈에 보이지 않게 얽히고설킨 프로파간다의 실체를 추적해가는 긴장감 넘치는 추리극을 일상의 이야기로 전환해 풀어놓은 나의 어설픈 시도는, 고개 끄덕여 줄 상대를 찾는 가장된 독백이다.
예술을 공부하면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외로움 한편의 채워짐이었다. 서로 길은 다르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었거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느껴지는 안도감이란!
새들이 날아와 집을 짓고,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아껴두는 곳,
바람이 이따금 가쁜 숨을 내쉬며 쉬어가는 곳,
햇살이 안부를 전하는 곳,
주린 이의 허기를 채워주는 열매가 열리고 또 열리는 곳.
나그네의 땀과 눈물이 땅으로 흘러 뿌리로 자라는 곳.
우리의 오랜 고독이 그런 울창한 나무로 자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