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낯선 동네로 이사를 갔습니다. 새집에서 대여섯 마리의 고양이들과 자주 마주쳤습니다. 전에 살던 할머니가 고양이 사료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이 집의 주인은 자신이라는 듯 고고한 모습이었고 저는 주눅이 들어 고양이들 눈치를 살피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중, 노랑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일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를 알아보고, 노랑 고양이를 생각하고, 노랑 고양이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노랑 고양이는 집에 들이면 힘들어했기 때문에 야외에 사료를 두고 집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다행히 비가 오면 그곳에서 지내 주어서 저는 매일 비가 오기만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노랑 고양이가 하루라도 눈에 띄지 않으면 동네를 돌아다니며 찾았습니다. 남의 집 담벼락이나 차 밑에 노랑 고양이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안심하고 돌아설 수 있었습니다. 새벽에 밖에서 들리는 소리에 예민해졌고 보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랑 고양이를 알기 전의 제가 보았더라면 정신이 나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
노랑 고양이는 이제 없고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함께 놀다 보면 노랑 고양이 생각이 자주 납니다. 더 사랑하거나 덜 사랑해서가 아닙니다. 노랑 고양이와는 다른 형태로 지금의 고양이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노랑 고양이에게 너무 커다란 마음을 주어 버려서 다른 존재로는 채울 수 없는 구멍이 생겼습니다. 지금의 고양이들과 보내는 일상은, 그 구멍을 바라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저를 스쳐 간 수많은 이별과 만남에 대해 아주 약간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살아가기도 한다는 것을, 저는 고양이들을 통해 배웠습니다.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다니던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로 한 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습니다. 주변이 깜깜할 때 집을 나와 등교를 했습니다. 어느 겨울, 집을 나오는데 골목 끝에 하얀 덩어리가 놓여 있었습니다. 정류장으로 가려면 그 덩어리를 지나쳐야 했으므로 몇 걸음 다가가서 멈춰 섰습니다.
모르는 개가 저를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책가방보다는 작고 도시락 통보다는 큰 덩치였습니다. 조금 난처했던 것 같습니다.
(……)
저는 다시 걸었습니다. 약간의 거리를 두고 개도 졸졸 뒤따랐습니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10분 남짓한 거리였는데 그 시간대에는 정류장에도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우리는 정류장에 함께 멈췄습니다.
(……)
그렇게 몇 주 동안 모르는 개는 처음과 같은 방식으로 저의 등굣길을 함께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습니다. 동네 여기저기를 뒤져 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습니다.
20년이 지나, 지금입니다. 저는 지금도 또렷하게 그 개의 눈빛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왜, 무엇 때문에 그랬던 건지. 생각하다 보면 모르는 개의 눈빛에다가 자꾸만 뭔가를 덧붙이고 싶어집니다.
완성한 소설은 출간된다면 세 번째 책이 될 터였으나, 그 가능성은 희박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재능과 자격에 대한 끝도 없는 질문이, 다시금 솟아났습니다. 내몰린 심정으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교보문고 측으로부터 수상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 받았던 상 이름이 ‘교보상’이었다는 게 그제야 기억났습니다.
어떤 우연은 까닭을 생각하게 합니다. 2008년에 받았던 상과 2023년에 받게 된 상을 나란히 놓고 바라봅니다. 그사이를 흐르는 시간에서 무엇을 건져 올려야 할지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그때처럼 작업을 이어나갈 힘을 얻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