Ι自序Ι
6년근 마음 한 뿌리를 세상에 내놓으며
요즘 들어
저작著作이 저작咀嚼으로 읽힌다
홍자성洪自誠의 채근담菜根譚을 떠올리면
어눌한 생각을 서책으로 엮어내는 작업이
가공되지 않은 풀뿌리를
곱씹어 보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대중을 교화하는 고승의 오묘한 법문이나
명망 있는 철학자의 잠언을 흉내내지 못한다
단지 사람살이의 단편조각들을
가슴속에 흘러가는 한 문장으로
여과하여 기록할 뿐이니
독자들도
아둔한 내 마음을 질겅질겅 씹어보고
단것은 단맛대로 쓴 것은 쓴맛대로
그 고유의 풍경을 음미해 주기 바란다
2019년 동지冬至 즈음에
『나무늘보의 독보』는 지난 5년간 내가 체험한 것 중에서 유의미한 것들을 추려내어 가슴에 다시 한번 여과하여 엮어놓은 삶의 기록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최소한의 인문학적 대답을 시라고 한다면, 이번에 형상화하고자 한 개인적 삶의 방식들이 ‘우리’ 것으로 확장·공유해도 손색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자들은 내 마음을 읽고, 문명의 크기와 방향·속력 사이에서 상실해가는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으면 한다.
시집 출간에 도움을 주신 최동호 교수님, 문영 선생님, 권성훈 문학평론가님 등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2024년 10월
방어진 우거寓居에서
지난 4월 6일 출판 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저의 필력을 대나무로 치면 첫마디를 매듭짓는 조촐한 행사였습니다.
많은 문학들이 사이버 공간 속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시점에서도 윤전기를 통해 뿜어지는 싱싱한 잉크 냄새를 맡을 수 있음에 안도합니다. 시는 시대 정신의 마지막 요약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고 저의 죽순들을 피워 올리겠습니다.
오다가다 작은 죽순을 꺾어 여러분들의 식탁을 차리시는 데 조촐한 역할이라도 해낼 수 있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죽순은 자라서 작은 대숲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은 흔적 남겨 주시고 격려, 편달 바랍니다.
울산 현대청운고에서 저자 올림
(2001년 4월 14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