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주말이면 언제나 어느 도시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앞으로 과연 내가 어떤 일에 또다시 이렇게 빠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7년간 찾아다녔던 역사도시 중에서 이 책에는 아홉 도시에 대한 이야기만을 실었다. 수많은 우리 도시 중에서 이 아홉 곳을 선정한 이유가 궁금할 터인데, 여기에는 내 나름의 세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 역사가 긴 도시다. (중략) 둘째는 걸어서 다닐 수 있는 비교적 작은 도심부를 가진 도시다. (중략) 셋째는 현대도시로서 매력과 잠재력이 큰 역사도시다. 내가 역사도시 답사를 진행해온 것은 해당 도시의 과거만을 논하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시의 앞날을 새롭게 모색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의 삶을 잘 담아내는 건강하고 흥미로운 도시들을 찾고자 노력했다. 이 세 번째 기준 때문에 나는 역사도시 하면 떠오르는 삼국시대의 고도들을 이 책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중략) 이 세 기준을 두루 만족시키는 이 아홉 도시야말로 한국의 오래된 도시 중에서도 반짝이는 별과 같다. 공동체 생활이 사라지고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하는 현대의 대도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적이고 아름다운 공간과 장소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중략) 아직 이들 도시에 가본 적이 없거나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런 분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쓰면서 염두에 둔 독자이다.
나는 건축을 배우고 가르치면서 건축과 도시가 오히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음을 깨달았다. 크고 화려한 현대의 건축물들은 땅에서 우리를 떼어놓고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고 있었다. 그에 비해 전통마을에 들어서면 집과 나무들이 나를 반기고 존중하는 듯하다. 마을을 다니면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땅과 건축,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비로소 발견할 수 있었다. 21세기에 더욱 주요하게 부각되는 삶의 가치들이 먼 서유럽의 건축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사는 이 땅의 수백 년 된 마을공간에 녹아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케 했다. 자연과 건축, 사람이 하나된 모습에 놀라움과 감동을 느끼며 나의 전통마을 순례는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