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운 스님은 폐사와 진배없던 불영사를 대가람으로 바꿔 놓았다. 외형뿐 아니라 경북 울진에 있는 불영사를 만여 명에 이르는 신도를 거느린 전국 규모의 대찰로 변모시켜 놓았다. 다른 분 같으면 녹초가 됐을 대형 불사를 하고도, 스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분 같이 평온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수행에 전념하고 있다. 복(福)과 혜(慧)를 양손에 쥐고 자유로이 쓰는 분이다.
이번에 쓴 평전이 많은 사람들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인연을 맺는 연결 고리가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이 세상을 불국정토를 만드는 일에 단단한 초석이 되어준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한 여성이 얼마나 이름다울 수 있는가? 한 여성이 얼마나 지혜로울 수 있는가? 한 여성이 얼마나 숭고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물음에 대한 답을 육영수라는 한 여인을 통해 들을 수 있다니, 49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그녀의 삶이 참으로 경이롭다.
요즘 같은 혼탁한 세상에 육영수가 뿜어내는 향기가 독자 한 사람 한 사람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 생의 이정표가 되어 줄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쁘겠다.
그렇습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청화 큰스님의 모습에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던 道의 실체를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화 큰스님은 우리 곁에 머물다 가신 도인(진리를 증득한 성인) 이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도인의 생애를 저 같이 도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사람이 그렸으니 미숙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스스로 부족한 줄 알면서도 큰스님의 생애를 그리려 한 것은 큰스님을 스승으로 여법하게 모시지 못한 제 부족함에 대한 일종의 참회 같은 것이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청화 큰스님의 모습에서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던 道의 실체를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청화 큰스님은 우리 곁에 머물다 가신 도인(진리를 증득한 성인) 이심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도인의 생애를 저 같이 도의 그림자도 보지 못한 사람이 그렸으니 미숙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스스로 부족한 줄 알면서도 큰스님의 생애를 그리려 한 것은 큰스님을 스승으로 여법하게 모시지 못한 제 부족함에 대한 일종의 참회 같은 것이었다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내 얘기를 쓴다면 그 얘기는 나와 일치할까?
그 얘기를, 나를 아는 사람들이 본다면 나와 일치하다고 말할까?
그런데 하물며 방한암 선사의 이야기일진대…….
한 분의 생애를 그리는 일이, 더욱이 성스럽게 살다 가신 선사(禪師)의 생애를 그린다는 일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를 나는 한암 스님 생애를 쓰면서 뼈저리게 느꼈다. 무릎을 꿇고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하고 싶은 심정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선사의 모습을 형상화시키는 일은 너무도 지난했다. 오대산 문중스님들한테서 받은 책들을 통해서 한암 스님의 생애를 더듬어 보았고, 김순석 박사의 저 《백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를 인용 참고하면서 스님이 사셨던 시대적 배경, 특히 불교계의 동향을 추적해 보았다.
한암 스님과 관련된 저서를 남기신 김광식 교수님 외 몇 분의 교수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고, 특히 《백년 동안 한국불교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의 본문 중 많은 부분을 인용하도록 허락해 주신 김순석 박사님께 진심에서 감사의 마음 전한다.
방한암 스님의 생애를 그리도록 기회를 주신 정념 스님과 오대산 문중스님들 그리고 흔쾌히 출판을 맡아주신 민족사 윤창화 대표님께도 감사의 합장 올린다.
가장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때 이 땅에 오셔서 온몸으로 우리 불교를 지켜주셨던 방한암 스님을 많은 독자들이 조우(遭遇)하기를 빈다.
2016년 봄
남 지 심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