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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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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조용한 분노>

조용한 분노

책을 내면서 글쓰기를 해보려고 마음먹었을 때의 생각이 새롭다. 빈 둥지 증후군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산에 가도 멍해지고, 아는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도 간간이 허탈한 기분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마음이 묵직하고 무엇에 쫓기는 하루하루가 계속되었다. 그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자문했다. 얻은 답은 지금까지 해온 그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너무 욕심을 내지 말고 가능한 좋아하는 장르의 책을 읽기로 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중요한 행위'라고 마음에 한 번 더 새겼다. 백화점의 Y 문고를 택했다. 그러다 보니 책방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움직이는 계단을 타고 5층에 발을 디디면 고향의 고샅길을 들어서는 기분이다. 마음의 풍파가 조용하고 잔잔해진다. 흔들거리든 나를 붙들어 맬 수가 있는 말목이 바로 책방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했다. 시간은 내가 빠지고 책장 넘어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백화점이 노는 날엔 구 백제병원 건물 안에 있는 '창비 부산'에서 조용하게 책장을 넘긴다. 가끔은 옆방에 있는 브라운 핸즈 커피를 사 들고 가기도 한다. 읽는데 탄력이 붙다 보니 말 타니 경마 잡히고 싶다는 심상일까, 글을 쓰고 싶은 생각이 일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십여 권 독파하고 나니 자신감이 조금 생겼고, 모 대학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과정을 3학기 정도 마치고 나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아무튼 한 권의 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은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늦게 입문하다 보니 참으로 아쉽고 후회스럽다. 좀 더 일찍 관심을 가졌더라면 하는 마음이다. 하긴 어느 시점에서 시작했더라도 더 일찍 바라는 마음일 테니까. 일찍이라는 한계는 없으니까. 이렇게 엮은 작은 글들의 한편 한편이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에 작은 만족감과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쯤 되면 '금생에서 내가 한 것이라고는 어떤 것이 있나?' 자문을 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일까.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한 시간 하루를 온몸으로 황홀해하며 춤을 출 수 있을까. 흔히들 고되고 힘들었던 과거의 처절했던 삶을 생각하기조차 싫다고 말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억척이 있었기에 삶의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지금에 와서 환희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아! 내가 이 세상에 와서 그래도 용을 쓰고 심호흡을 했구나' 하는 가슴을 어루만질 수 있는데 충분히 의미를 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껏 살아온 세월은 별것 아닌 평범한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다들 가슴에 숨겨둔 피멍 든 이야기는 남에게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 누구에게 쉽게 이야기할 수 있으랴. 차라리 공항 라운지에서는 아무나 잡고 이야기할 수는 있다. 가족과 친척에게는 더 말 못 할 수도 있다. 빛나지 않은 삶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글을 통해 반쯤이라도 말하고 싶은 심정이 아닐까. 글쓰기가 있기에 처음으로 자기 자신과 진실의 대면을 하는 것 같다. 흔히들 인생은 소설과 같다고 말한다. 79억 권의 소설 속에서 내가 주인공인 한 권의 소설이 책꽂이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각자는 자신의 책을 다 한 권씩 가지고 있다. 다만 활자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책을 낸다는 것은 늘 다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기분이 든다.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저 계곡에 접어들면 어떤 새가 어떤 목소리로 나와 인사를 나눌까. 이제 할 일은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을 남겨두고 있다. 비우는 일과 견디는 일과 돌아다니는 숙제만 남아있다. 이 숙제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노경에 주어진 마무리의 펄럭임이라 생각한다. 몇 년 동안 모은 글이다. 이 중 여러 편은 문학 매체에 실렸던 글들도 있고 미발표 글들도 있다. 읽기 좋아하시는 분들께 드립니다. 2022년 유월에 서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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