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인물들은 현실에서 신비의 영역으로 탈출 혹은 도피를 시도하다 도로 현실로 처박히기를 반복한다. 폴짝폴짝 뛰듯이. 나는 신의 말과 인간의 말 사이의 간극에 포착했다. 이 우스꽝스러운 반복을 그들이 고장 난 말로 제 말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그리고자 했다. 개인적으로는 마늘 냄새처럼 어느새 내게 배어 있는 한국 문화를 해석해보는 과정이었다. 어느 한곳이라도 접점이 있어, 독자들이 함께해줬으면 좋겠다.
5년 전 이 소설이 처음 책으로 나왔을 때, 나는 후기에 이렇게 썼다. '(소설을 쓰던 당시인) 2년 전에는 지금보다 젊거나 미숙한 내가 있었다. ... 그 열렬한 호소는 다른 시공간 속의 내 분신이 외치는 소리처럼 내게 애틋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내가 분신 같다. 이 소설의 배경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그럼 인도냐 어디냐는 내게 중요하지 않고, 한국을 떠나 바깥에서 한국을 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후로 나는 돌아오지 못한 것 같다. 안도 바깥도 사라져버렸다.
오래전부터 나는 의문이었다. 왜 사람은 사는 곳에 따라 운명이 이리 다를까? 2003년에 미국에 침공당한 이라크와 이스라엘에 점령된 팔레스타인에 가서 보니, 지구가 둥글지가 않았다.
막강한 장력이 송용돌이치며 한쪽으로는 모든 것을 삼켜버리고 다른 한쪽으로는 토해냈다. 2004년 초 논란 끝에 국익을 위해 한국군이 미군의 연합군으로 이라크에 갔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라크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의 원리는 실은 간단했다. 여기 잇는 우리에게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이 저기 있는 저 사람들에게는 있을 수 있다는 것. 여기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저기 저 사람들에게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것.
... 나는 지구를 우그러뜨리는 장력과는 반대의 힘, 각기 무수한 꽃잎을 가진 무수한 꽃송이로 피어나려는 땅의 의지를 느꼈다. 그것은 모래폭풍, 먼지바람,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 같은 형태로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동하고 있다.
땅의 무수한 잎 중 하나에 나는 이미 깃들어 있다. 나는 나를 구하고자 했다. 모든 사람들, 모든 생명들, 자기 발밑의 땅 위에 편안히 깃드시기를. 이 소설은 기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