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오랜만에 내놓게 되었다. 10년 전에 단편집을 냈는데 너무 부실했다. 그때의 아쉬움 때문일까. 남들이 책을 몇 권씩 내는데도 부럽지가 않았다. 책을 꼭 내야 하나 싶었다. 독자도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하지만 결국은 내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 쓴 소설도 함께 수록했다. 인터넷에서 장난스럽게 쓴 소설이 있다. 「블로홀」이다. 꽤 야하다. 그래도 동서문학상까지 탔으니 야설은 아니라고 우기고 싶다. 한 편은 추리소설이라 할 수 있는 중편소설이다. 이 소설집의 표제인 「욕망의 혀」는 효도한 작품이다. 여러 곳에서 청탁을 받았고 돈도 되었다. 「가면무도회」는 근로자 문학상 은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렇게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것 하나 애착이 안 가는 것은 없다. 누가 묻는다. 소설을 왜 쓰냐고. 나도 내게 묻는다. 왜 쓰느냐고? 독자를 위해 쓴다고 할 수 있을까? 솔직히 나를 위해 쓴다고 말하고 싶다.
어릴 때 꿈이 뭐였냐고 물으면 순간 흠칫한다. 분명한 건 작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연예인이라고 대답하기는 부끄럽다. 어릴 때는 누구나 한 번씩 꾸어보는 흔한 꿈 아닌가.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 사주를 봐주고 그 끝에 나를 봐주면서 너는 외롭고 고독하게 살 팔자구나, 하시던 말씀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나는 처음부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작품에 들어가 남의 인생을 연기한다. 살인자가 되었다가 선한 소녀가 되었다가 탐욕스러운 여자가 되었다가 부자가 되었다가 가난뱅이가 되었다가. 그래서 나는 연예인의 꿈을 어느 정도 이뤘다고 자평한다.
다른 작가를 인터뷰하는 중에 내가 물었다. 소설, 시, 그림 다 하신다기에 묻는데 어느 것이 더 쉬우냐고. 다 같지는 않겠지만 그림이라고 했다. 소설 쓰기가 가장 힘이 든다고 했다. 공감한다. 소설 쓰기가 점점 힘이 든다. 모두 소설 쓰기는 중노동이라고 표현한다. 지구력과 싸워야 한다. 그것이 힘이 든다. 그러다가 막상 작품 속에 빠져 있는 동안은 아무것도 부럽지 않다. 곁에서 수억 로또를 맞았다고 환호성을 쳐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내게 소설은 종교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