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친한 친구 하나가 라이프치히(Leipzig) 동물원에 타이완에서 온 천산갑이 있는 걸 아느냐고 물었다. 녀석들은 타이완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고, 인간과는 다르게 평생 시차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라이프치히 동물원에서 영원히 타이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기차를 타고 산책을 하면서 라이프치히 동물원으로 녀석들을 만나러 갔다.
헬로, 시차를 느끼지 못하는 천산갑들아, 잘 지냈니. 나도 타이완에서 왔어.
인사를 마치고 나니 한 쌍의 남녀에게 눈길이 갔다. 연인이나 부부 같진 않았다. 몸의 상호작용에 보이지 않는 장력이 존재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그들이 천산갑이 되어 발톱으로 동굴을 파는 모습을 상상하는 이야기였다. 두 남녀의 처지를 알게 되었다. 남자는 게이였고 여자는 유쾌하지 못한 이성 혼인생활에 갇혀 있었다. 어려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를 남달리 의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엔 비밀이 있지만, 입밖에 내지 않았다. 나는 꼭 소설과 상상으로 이 비밀들을 구성해 내야 했다.
이 작품 속의 그녀와 그는 어려서부터 낭트에 가기로 약속했지만, 어른이 되고 늙어서 함께 길을 가면서도 끝내 그곳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인생의 ‘도달하지 못함’ 아닐까.
2018년 7월, 베를린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해 2019년 4월에 완성했다. 나는 끊임없이 용징의 기억을 파고 들어갔다. 줄곧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으나, 오히려 계속 그곳을 글로 쓰고 있었다. 다 쓰고 나면 울음이 터질 줄 알았는데 마지막 한 문장을 쓴 뒤, 울기 좋아하는 울보 귀신인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모든 것이 불안정하고 종잡을 수 없었다. 고개를 숙여 몸을 살폈다. 피부와 뼈와 살이 시야에서 천천히 흐려지더니 점차 투명해졌다.
내가 정말로 귀신으로 변할까 두려워서 얼른 원고를 편집자에게 보낸 다음, 침대에 올라가서 잤다.
아주 편안하게 잘 잤다.
이런 시각이면 귀신이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용징이 슬그머니 베를린의 내 방으로 들어와 내 옆에 함께 누웠다. _천쓰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