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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이름:박희선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 대한민국 경상북도 상주

최근작
2021년 10월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녹슨 남포등

내 직장은 산중 비알밭이다. 농사철이면 비 오는 날만 빼놓고는 거의 매일 출근을 한다. 며칠 전에는 쇠스랑으로 하지감자 심을 밭을 장만했다. 한참 동안 땀을 흘리는데 곤줄박이 한 마리가 찾아왔다. 가까운 감나무 가지에 앉아 내게 열심히 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귀는 어둡고 때가 너무 많이 묻어서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작은 새가 내게 꼭 할 말이 있어 여기 먼 곳까지 찾아와 지저귀는데 나는 듣기만 할뿐 한마디 대꾸도 못했다. 시 공부를 반백 년 하면 무엇하나. 어린 곤줄박이 말 한마디 알아듣지 못하고, 아침이슬 길에 반갑게 웃어주는 손톱만한 들꽃의 이름을 모르고 살았으니 미안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공부하고 절망해야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 날이 올 것인가. 2015년 봄

할미새한테서 전화가 왔다

며칠 전에 입추가 지나갔다. 거만한 겨울이 지축을 울리면서 뒤따르고 있다. 내가 다스리는 작은 나라에 사는 푸른 목숨들은 서둘러 열매를 익히는 중이다. 지난여름은 얼마나 목마르고 그립고 뼈아팠던가. 땡볕 아래서 쇠스랑으로 밭을 갈고, 씨 뿌리고 거름을 주는 일, 무서운 병충해와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잎이 떨어지고 눈보라가 칠 것이다. 삭막한 땅을 햇솜 같은 흰 눈이 덮어줄 것이다. 멍든 희망을 끌어안고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다시 잠들 것이다. 겉보리 씨 한 바가지 부드러운 땅에 묻는다. 여기 거룩한 곳에 엉금엉금 기어 다니면서 아직도 살아 있음을 하느님께 알릴 것이다. 흰 눈밭에 파란 보리싹, 그 질긴 뿌리를 언 땅에 내리고 한 백 년만 더 살고 싶다. 2021년 가을 박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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