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가만히 안아주겠어요
감정 쓰레기 형태로 첫 페이지를 끄적이던 날이 눈에 선하다.
그 새벽, 나는 자살이라는 글자를 검색창에 적어보았다. 진짜로 죽을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냥 한 번 그래 보았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뻔한 문구와 함께 상담 전화번호가 나왔다. 핸드폰에 그 번호를 찍어 보았다. 고민했다. 상담원이 죽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당장 죽지는 않을 거라고, 무엇이 힘드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그냥 다 피곤할 뿐이라고, 그러면 대체 이 사람 왜 전화 한 거냐고 황당해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그냥 힘들다고 한마디만 해보면 안 될까? 시간을 오래 뺏지는 않을 건데……, 한참을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가 됐든 나의 가장 연하고 약한 것들을, 빛나는 무엇이 아닌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를 누구에게든 꺼내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 연결은 되지 않았다. 통화량이 많다는 안내 음성이 뒤따랐다. 새벽을 헤매고 있는 게 나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오늘, 나는 다행스럽게 몸도 마음도 적당히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나쁘지도 않다. 12개월 결제한 헬스장은 겨우 2주 나간 후 귀찮아서 미루고만 있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엔 유기농 양배추즙을 마시고 가벼운 스트레칭도 했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유 없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루 중 웃은 기억이 더 많았다.
그동안의 모든 여행은 공항으로 돌아오는 순간 끝이 났다. 입국 심사를 하고 공항 철도를 탄 후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집 문을 열면 익숙한 침대가 보인다. 대충 씻고 침대 위에 폴짝 뛰어 눕는다. 그렇게 희멀건 천장과 오랜만에 마주한다. 그 위에 새로이 만났던 얼굴들을 그리다가 여독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는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만난 수많은 이야기는 과거가 된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결국 이번에도 행복하게 돌아왔습니다 라며 제법 깔끔한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좀 다르다. 나는 아직 나를 온전히 보았다고, 진정한 평화를 만났다고 선뜻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나의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그 안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어느 날 문득문득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론 도무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날도 생길 거다. 그렇게 나를 향한 여행을 오늘도, 내일도, 아니, 아마 일생에 거쳐 평생토록 하게 될 것이다.
그사이 또다시 무수한 계절을 만나게 되겠지만, 다행히 이제는 겨울이 그리 무섭지 않다. 예상치 못한 매서운 추위를 만나는 날이면, 옷장 깊숙이 넣어둔 두꺼운 털옷을 꺼내어 입곤 쑥차를 한 잔 달여 마시며, 아주 따뜻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보다는 덜 춥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겨울을 나거나, 겨울로 남거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겨울을 나기로 결심한 이가 반드시 봄을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겨울에 머물기를 선택한 이에게 봄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혹여 당신이 겨울의 눈밭을 헤매고 있다면, 그러다 우연히 내 자취를 발견한 거라면, 부디 당신이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와도 좋고, 다른 방향으로 가보아도 좋다. 그게 어느 쪽이든 뚜벅뚜벅 걸음 끝에 기어이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꽃 내음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간 내게 온 모든 겨울이 내 뿌리를 다져갈 기회였노라고, 그렇게 회상할 날이 기필코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차가웠던 시간을 꺼내어 놓는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축축한 진심을 털어놓는다. 홀로 뭍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휘젓던 내 발버둥이 당신에겐 오리발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이 여행기가 당신의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우리 따로 또 같이 자신을 여행하다가, 하릴없이 무너지는 날을 만나면, 고민하고 고민하다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끝끝내 연결이 되지 않는, 그래서 침몰하는 천장을 홀로 느껴내야 하는 그런 밤이 있다면…….
당신, 내게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의 품이 간절한 당신을 가만히 안아주겠다. 자그마한 나의 품이 당신의 오랜 침대처럼 포근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며,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의 삐걱이는 침대처럼, 그래도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것을, 어느 새벽 내게 그리도 간절했던 그 말을, 당신의 귓가에 속삭여주겠다.
당신을 가만히 안아주겠어요
감정 쓰레기 형태로 첫 페이지를 끄적이던 날이 눈에 선하다.
그 새벽, 나는 자살이라는 글자를 검색창에 적어보았다. 진짜로 죽을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냥 한 번 그래 보았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라는 뻔한 문구와 함께 상담 전화번호가 나왔다. 핸드폰에 그 번호를 찍어 보았다. 고민했다. 상담원이 죽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당장 죽지는 않을 거라고, 무엇이 힘드냐고 물으면 모르겠다고, 그냥 다 피곤할 뿐이라고, 그러면 대체 이 사람 왜 전화 한 거냐고 황당해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래도, 그냥 힘들다고 한마디만 해보면 안 될까? 시간을 오래 뺏지는 않을 건데……, 한참을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뭐가 됐든 나의 가장 연하고 약한 것들을, 빛나는 무엇이 아닌 시커멓게 타버린 잿더미를 누구에게든 꺼내어 놓고 싶었다. 하지만 고민의 시간이 무색하게 연결은 되지 않았다. 통화량이 많다는 안내 음성이 뒤따랐다. 새벽을 헤매고 있는 게 나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오늘, 나는 다행스럽게 몸도 마음도 적당히 건강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런대로 나쁘지도 않다. 12개월 결제한 헬스장은 겨우 2주 나간 후 귀찮아서 미루고만 있지만, 그래도 오늘 아침엔 유기농 양배추즙을 마시고 가벼운 스트레칭도 했다.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유 없이 쓸쓸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하루 중 웃은 기억이 더 많았다.
그동안의 모든 여행은 공항으로 돌아오는 순간 끝이 났다. 입국 심사를 하고 공항 철도를 탄 후 오르막길을 한참 올라 집 문을 열면 익숙한 침대가 보인다. 대충 씻고 침대 위에 폴짝 뛰어 눕는다. 그렇게 희멀건 천장과 오랜만에 마주한다. 그 위에 새로이 만났던 얼굴들을 그리다가 여독을 이기지 못해 눈을 감는다. 그러면 비로소 내가 만난 수많은 이야기는 과거가 된다. 세상의 많은 것을 보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결국 이번에도 행복하게 돌아왔습니다 라며 제법 깔끔한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좀 다르다. 나는 아직 나를 온전히 보았다고, 진정한 평화를 만났다고 선뜻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나의 우주를 떠돌아다니는 중이다. 그 안에서 수년 혹은 수십 년이 지나도 어느 날 문득문득 새로운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때론 도무지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날도 생길 거다. 그렇게 나를 향한 여행을 오늘도, 내일도, 아니, 아마 일생에 거쳐 평생토록 하게 될 것이다.
그사이 또다시 무수한 계절을 만나게 되겠지만, 다행히 이제는 겨울이 그리 무섭지 않다. 예상치 못한 매서운 추위를 만나는 날이면, 옷장 깊숙이 넣어둔 두꺼운 털옷을 꺼내어 입곤 쑥차를 한 잔 달여 마시며, 아주 따뜻하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이전보다는 덜 춥게 겨울을 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으니까.
겨울을 나거나, 겨울로 남거나.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겨울을 나기로 결심한 이가 반드시 봄을 만나게 될 거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겨울에 머물기를 선택한 이에게 봄은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혹여 당신이 겨울의 눈밭을 헤매고 있다면, 그러다 우연히 내 자취를 발견한 거라면, 부디 당신이 나아갔으면 좋겠다. 나의 발자국을 따라와도 좋고, 다른 방향으로 가보아도 좋다. 그게 어느 쪽이든 뚜벅뚜벅 걸음 끝에 기어이 피어있는 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 꽃 내음을 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간 내게 온 모든 겨울이 내 뿌리를 다져갈 기회였노라고, 그렇게 회상할 날이 기필코 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의 차가웠던 시간을 꺼내어 놓는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축축한 진심을 털어놓는다. 홀로 뭍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 휘젓던 내 발버둥이 당신에겐 오리발이 되어주기를 바라며. 이 여행기가 당신의 여정에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바라며. 그렇게 우리 따로 또 같이 자신을 여행하다가, 하릴없이 무너지는 날을 만나면, 고민하고 고민하다 상담 전화번호를 눌렀지만 끝끝내 연결이 되지 않는, 그래서 침몰하는 천장을 홀로 느껴내야 하는 그런 밤이 있다면…….
당신, 내게 왔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의 품이 간절한 당신을 가만히 안아주겠다. 자그마한 나의 품이 당신의 오랜 침대처럼 포근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당신의 마음을 조금은 안다며, 오래된 게스트하우스의 삐걱이는 침대처럼, 그래도 몸을 누일 곳이 있다는 것을, 어느 새벽 내게 그리도 간절했던 그 말을, 당신의 귓가에 속삭여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