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이 책의 초고를 잡기 시작했을 때 에스토니아 탈린의 제 스튜디오에 방문객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엘레오노라 패르트의 동생이자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도리안 수핀(1948∼2023)이었습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패르트의 삶을 따라다니며 카메라 렌즈를 통해 패르트에 관한 특별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영화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었는데, 돌이켜보면 아르보 패르트와 처음으로 개인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도 2010년대 초반 도리안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그는 아르보 패르트를 주제로 한 그래픽 노블을 작업하는 저의 모습을 촬영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스케치와 아이디어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작업은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아주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잘 보살펴야 합니다. 하지만 곧 거의 어른이 될 것이고 넓은 세상으로 보내야 될 테죠. 자기 삶을 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시만 해도 저는 꿈만 꾸고 있었지 현실이 될 것이라고는 믿지 못했습니다.
에스토니아어에서 처음 출판된 후로 지금은 여러 나라에서 번역판이 나왔습니다. 그중에서도 한국은 에스토니아 책이 도달한 가장 이국적인 나라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이 가는 모든 곳에는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에 대한 사랑이 깃들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빠르게 우정을 쌓을 수 있습니다. 뜻깊은 문화의 한국인들 사이에서 새로운 친구를 찾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친애하는 도리안 수핀을 추모하며
2024년 여름 - 한국어판 서문
이 책을 위해 자료를 모으고 인물들의 회고를 들은 후 조각조각 내용을 맞추며 역사의 주관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사람마다 삶의 궤적이 다르고 기억하는 삶의 이정표가 다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우 개인적인 선물인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아무 이견 없이 사랑만으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도 있습니다. 각자의 삶에서 주의를 기울여 노력만 한다면, 타인을 더욱 객관적으로 보려는 의지와 능력이 커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사랑에 가까워집니다.
이 이야기엔 여러 사람의 인생 여정이 해석되어 담겼습니다. 있을 수 있는 다양한 해석 가운데 하나의 주관적인 시선, 즉 한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유일한 해석은 결코 아닙니다. 이 책을 계기로 더 깊은 탐구의 문이 열리길 바랍니다.
2018년 탈린에서 -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