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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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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7월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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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주마등 임종 연구소

(…) 소설 전면부에 나오는 인물들만큼 다른 인물들도 중요했다. 생각보다 잘 휘고 느슨한 존재들을, 그들 안의 운동성을 되도록 지우고 싶지 않았다. 여기 등장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이들, 이름 대신 이모님이라고 불렀던 여성들에게 얻은 인상에 가깝다. 반드시 따스할 건 없었다. 대담하면서도 폐쇄적이고, 무심하면서 사려 깊은 이들이 각 장 안에서 본인만의 희비극을 쌓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모님들과 나눈 대화는 짜증 나는 손님이나 일일드라마 전개에 대한 이야기 정도였지만 나는 우리들이 그때 지은 표정과 손짓 같은 기억 위에 일화를 만들어 붙일 수 있었다. TV를 고쳐줬다고 피자를 시켜준 아귀찜 식당의 이모, 카드단말기 계산은 너무 어렵다며 요구르트 한꾸러미를 건넨 스포츠센터의 이모, 내가 갈 테니 밥은 앉아서 먹으라고 말해준 이모들. 소설에 섞지 않은 얼굴들이 더 맑고 애틋하다. 차고 메마른 단락은 순전히 내 성미 때문이다. (…) 겁과 시간이 많은 나는 더 묵묵해져도 될 것 같다. 말 없는 사람들이 더 그리운 2020년.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이해와 우리라는 단어가 최대한 더디게 오염되면 좋겠다.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

돌풍이 불던 3월 8일에는 여성 대회가 열리는 청계광장에 있었다. 소설 마감을 끝낸 뒤 가족과 며칠을 보내다 진이 빠진 채로 간 행사였다. sf×f 동행들과 조그만 부스를 지키며 모임 안내를 하는 동안 몇 번이나 움찔했다. 아마 우리 부스가 무대 바로 앞자리라 생긴 상황이었을 것이다. 한기를 피하려고 들어왔다가 나가지 않는 사람, 책상 위의 젤리 통을 가져가려는 사람, 핫팩을 받고도 새 핫팩을 요구하는 사람, 등산 가방 대여섯 개를 맡아달라는 사람, 남은 물품과 깃발을 달라는 사람. 그날은 따스한 사람들만큼이나 스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천막을 날릴 듯한 바람이 종일 불었다. 이번 겨울만큼 봄을 기다린 적이 있었을까. 계절이 바뀌면 그 속의 나도 조금 바뀔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짐작은 미신에 가까웠나 보다. 매번 마감 뒤로 미뤘던, 어쩌면 평생을 미뤘던 심리 상담 이틀 뒤 동생이 난소암 3기라는 소식을 접했다. 의료 파업으로 각종 검사가 내내 지연되다 세번째로 옮긴 병원에서 받은 판정이었다. 나는 울고 있는 동생에게 무턱대고 다 잘될 거란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은 부쳐야 할 서류를 집에 두고 우체국에 갔다. 다시 서류를 가져와 발송을 마치고 걷다가는 손에 서류가 없어 허둥지둥 댔다. 중환자실에서 본 동생의 모습은 뜻밖에도 의연했다. 복수가 찬 통을 비우러 함께 복도로 나섰을 때 동생이 간호사에게 말했다. “병실 들어갈 것 없이 여기서 혈압도 재죠. 우리 두 번 일하지 맙시다.” 동생이 부장님처럼 껄껄댔다. 내가 곁에 없던 며칠간 대체 어떤 생활을 한 건지, 실습을 마친 인턴들이 동생에게 인사를 하러 몰려왔다. 인턴 한 명이 포켓몬빵 띠부씰을 내 밀며 눈물을 훔치자 동생이 그를 달랬다. “우와, 이거 갖고 싶었던 건데. 근데 짠하게 왜 또 울어요. 얼른 가서 뒤풀이해요.” 동생의 말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다른 인턴이 비틀대며 병실을 나갔다. 폐 한쪽을 채웠던 물을 빼내고 항암 치료 준비를 마치자 판정이 바뀌었다. 암이 아니라 종괴인 것 같다고. 수치가 애매하긴 한데 암세포는 없다고. [……] 수술을 잘 견딘 동생이 호스를 입에 물고 색색의 공을 허공에 띄울 때, 소변 줄과 피 주머니를 빼고 밥을 뜰 때, 테라스로 나가 같이 해를 쬘 때, 나는 할 일이 끝나간다고 여겼다. 그런데 마무리했다고 생각했던 소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었다. 여성 장기에 대해, 여성 질환에 대해 네가 아는 게 뭐지. 털모자를 쓰고 복도를 조심조심 걷는 여자들을 봤니. 하긴, 뭐라도 알았다면 아예 쓸 수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너는 여성의 몸에 대한 SF를 지나치게 천진한 태도로 다룬 게 아닐까. 나는 대꾸 없이 동생과 같은 병실에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병실에 들어선 의사는 동생이 암이 아니라는 말을 너무 크게 외쳤고 말기 암 환자와 그의 간병인들은 동생에게 정말 축하한다고, 천만다행이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암 투병 중인 가족을 돌보는 나의 친구들도 그들과 같은 말을 해주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고개를 들고 이 시기를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까. 뉴욕에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은 단지 4백 명이라는 한 작가의 말에 오 헨리는 이렇게 반박했다. 4백 명이 아니라 4백만 명은 된다고. 그러니까 모든 뉴욕 시민이 알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그는 실제로 『더 포 밀리언The four million: collection of short stories』이라는 소설집을 출간했다. 병동에서는 오 헨리의 소설관에 더 동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완서의 문장에 더 의지하게 되었다. “내 눈가에 나이테를 하나 남기고 올해는 갈 테고, 올해의 괴로움은 잊혀질 것이다”(『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세계사, 2002). 젤리를 통째로 집어 가려는 사람 다음엔 호두과자를 준 사람이 있었다. ‘벚꽃’이라고 외치는 사람 다음엔 유리문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대구로 인간의 이타성이나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여성 장기, 여성 질환보다 노년 여성을 더 모른다. 그들 안에서 시시각각 몸을 불리고 줄이는 번잡함과 고립감에 대해서는 더욱 모른다. 무지 속에서 이해와 화해를 포기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의 이야기도 단순한 원칙을 세워, 지금의 시야로 담아냈을 뿐이다. 소설에 납득할 수 있는 사람들만을 등장시키지 않는 것. 끝내 좋아할 수 없는 사람, 영영 모를 사람들도 서사 안에 두는 것. 인물의 생애는 그 인물의 것이고, 내가 할 일은 그와 잠시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 앞뒤를 봐줄 것 없이 더 어지러운 나날이 오겠지만 『레이디스, 테이크 유어 타임』은 유독 앞가림을 할 수 없을 때 썼다. 이 소설이 그동안의 작업 중 가장 밝고 유쾌하다는 사실이 그래서 이상하다. 그러니까 질문을 던진 소설에게 이제 이런 답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이건 현실을 재생시키고 싶지 않은 심정으로 쓴 이야기라고. 보통의 SF처럼 좁고 느린 세상을 굳이 재현하고 싶지 않았다고. 그런데 쓰고 보니 이 또한 좁고 느린 이야기가 되었다고.

방 안의 호랑이

언젠가 소설가는 어떤 사람이냐는 막막한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이런 답을 했다. 이 직업군에는 아무리 전망 좋은 방에서도 얼룩을 발견하는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느냐고. 이 말을 뒤집으면 그 얼룩 너머 한뼘의 좋은 전망을 다시 발견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쓴다는 뜻이 된다. 그러니 희망과 절망이 짙어지거나 옅어지는 순간에 휘말리지 않고 싶다. (…) 늘 그럴 수는 없어도 혼잣말을 혼잣말로 두지 않는 지면이 생긴 이상, 세상에 독자가 있는 이상 나는 더 부드럽고 단단하게 지내야 한다. 자신이 방 안에 있다는 것을 알거나 모르는 호랑이들에게 2024년 2월 박문영

세 개의 밤

끝난 이야기의 다음 장을 여는 일이 좋은 선택이었을까. 전부 새로 쓰거나 아예 쓰지 않는 편이 나았겠지. 겁을 잘 먹으면서도 왜 이따금 덮어놓고 대담해지는지 모르겠다. 머뭇거리다 내리는 나쁜 결정 하나 더. 중편을 장편으로 이어갔으니, 초판본에 남은 작가의 말도 이어가보기로 한다. 0에서 3까지가 8년 전 글이다. 0. 날씨는 맑고 죄는 쌓인다. 1. 나이가 한 자리였을 때는 달리기에서 자주 1등을 했다. 먼지와 꽃가루로 뿌연 봄의 운동장, 출발선에서 주먹을 야무지게 쥐고 눈을 빛내던 아이를 떠올린다. 하얀 깃대가 내려가면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갔다. 의지에 대해 조금도 의심이 없었다. 티브이에서 다리를 펴지 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는 발을 마구 구르며 물었다. 이걸 이렇게, 이렇게 움직이면 되는데 저 사람은 왜 못 해? 나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혈색이 좋고 낙천적인 어린이였다. 그림책 바깥에 대한 상상력이 없었다. 2. 이 소설은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봄까지 성실히 쌓은 실패의 기록이다. 유독 깜깜한 심정으로 시작했던 글이다. 18대 대통령 선거일에 개표 결과를 보면서 만든 초고가 이 중편으로 나왔다. 예상은 했지만 악습이 그대로 묻은 원고다. 쓰고 싶던 소설과 쓴 소설의 얼굴이 못 알아볼 정도로 다르다. 프랑켄슈타인이 꿰맨 괴물의 이마처럼 심란한 글 뭉치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이 형상이 지금의 나라면 방법이 없다. 하는 수 없이 지금의 나를 내보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3. 작업을 못 하는 이유는 하나다. 어제 하지 않아서. 요새는 무슨 작업해? 라고 묻는 곁의 동행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만화와 소설을 만드는 인간에게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로 행운이다. 4. 책의 전신인 1부는 2013년에 쓰고 <사마귀의 나라>라는 중편으로 발표한 적이 있다. 2부는 2021년에 썼다. 헤어진 지 오래된 소설이란, 헤어진 지 오래된 사람 같아서 다시 마주했을 때 여러 번 멈칫했다. 치기로 똘똘 뭉쳐 심각한 얼굴. 하지만 그에게서 치기와 비약을 빼면 같은 사람일까. 입을 다문 내게 그가 말한다. 뭐해? 지금 내 걱정을 할 때가 아닌 것 같은데. 5. 나침반을 열면 바늘이 영원히 돌 것 같은 나날. 많은 게 달라졌다고 믿었지만, 초고를 만든 그 날과 오늘 표정은 비슷하다. 방향 없던 아이들에게 방향이 생기는 이야기. 소설을 고쳐 쓰며 되새겼던 이 메모가 한 권을 줄인 한 문장이 될 수 있길. 2022년 여름 박문영

주마등 임종 연구소

(…) 소설 전면부에 나오는 인물들만큼 다른 인물들도 중요했다. 생각보다 잘 휘고 느슨한 존재들을, 그들 안의 운동성을 되도록 지우고 싶지 않았다. 여기 등장하는 지원자들의 모습은 그동안 함께 일했던 이들, 이름 대신 이모님이라고 불렀던 여성들에게 얻은 인상에 가깝다. 반드시 따스할 건 없었다. 대담하면서도 폐쇄적이고, 무심하면서 사려 깊은 이들이 각 장 안에서 본인만의 희비극을 쌓아가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모님들과 나눈 대화는 짜증 나는 손님이나 일일드라마 전개에 대한 이야기 정도였지만 나는 우리들이 그때 지은 표정과 손짓 같은 기억 위에 일화를 만들어 붙일 수 있었다. TV를 고쳐줬다고 피자를 시켜준 아귀찜 식당의 이모, 카드단말기 계산은 너무 어렵다며 요구르트 한꾸러미를 건넨 스포츠센터의 이모, 내가 갈 테니 밥은 앉아서 먹으라고 말해준 이모들. 소설에 섞지 않은 얼굴들이 더 맑고 애틋하다. 차고 메마른 단락은 순전히 내 성미 때문이다. (…) 겁과 시간이 많은 나는 더 묵묵해져도 될 것 같다. 말 없는 사람들이 더 그리운 2020년.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이해와 우리라는 단어가 최대한 더디게 오염되면 좋겠다. 2020년 11월

한국 SF 명예의 전당

혹한기를 닮은 이 중편은 2012년 12월의 메모로 시작했습니다. 중편을 장편으로 만든 작년엔 행간에 겨울뿐 아니라 다른 계절이 깃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10년 전, 메모를 이어나간 그 자리는 하필 보일러 파이프가 비껴가는 곳이라 발이 몹시 찼는데 별 수가 없어 거기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니 소설 속 춥고 밉고 좁은 기운은 그때의 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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