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는 미투 운동, 주요 공직자들의 성폭력, 디지털 성범죄 사건 등으로 떠들썩했다. 그런데 인간 행동의 의미란 몰역사적 상수라기보다는 특정한 역사적, 정치적 맥락에서 전개된다. 범죄자 개인을 악마화하는 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그 개인들이 나오게 된 사회적 배경, 구조적 원인을 질문하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적으로 특권을 가진 남성들이 지배의 자리에 있어 온 것이 문제가 아니다. 게이튼스에 따르면, 근대 정치체의 짜임 자체가 남성 신체 이미지에 기초를 두고 성립되었다. 여성이 정치체로부터 배제된 것은 역사의 우발적 특성이 아니라 정치 사회에 대한 지배적 관념의 귀결인 것이다(2장 참조). 따라서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정치체 그 자체,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상상계이다. 우리 사회가 역사적으로 여성들을 어떤 존재로 대우해왔는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해왔는지를 묻고, 현재에도 배제의 흉터를 계속해서 지니고 있는 체현된 관습, 제도, 사법 체계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의 성적 상상계에는 여성을 민주적 정치체의 자유롭고 이성적인 구성원인 동시에 남성의 자연적 권위 아래의 존재로 간주하는 역설이 존재한다. 따라서 게이튼스는 이 책 전반에 걸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여성을 비롯한 공동체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권력에서의 합치를 이루는 사회관계를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신체들을 성별화하고 역량을 한계 짓는 상상계를 넘어서 우리 신체와 그 관계들의 어마어마한 다양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세계를 어떻게 생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