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그곳에 머문 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문에 난 흠집 하나, 거실 바닥의 찍힌 자국 하나, 화장실의 금 간 타일 하나 등 유심히 보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흔적들 모두 누군가가 남긴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눈에 보이는 흔적만 남을까요? 문손잡이의 손때나 근원을 알 수 없는 냄새 같은 것들은 어떨까요? 더 나아가 그곳에서 살았던 이의 감정이나 혹은 그곳에서 죽었던 이의 원념 같은 것들은 어떨까요? 그런 것들 역시 그대로 남아서 집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조금 섬뜩하지 않습니까?
아빠가 백수가 아니라 전업 작가, 그 중에서도 소설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여섯 살 난 아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아빠는 어떤 이야기를 쓰는 거야?”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이런 대답을 한다.
“이 세상은 아름답고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누가 다른 사람을 엄청 사랑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
자의 반 타의 반, 호러 미스터리 스릴러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은 내게는 어울리지 않는 답변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정말로 그런 마음으로 소설을 쓴다. 호러건, 미스터리건, 스릴러나 추리이건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 그리고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다. 그것들을 글로 옮기지 못하면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익숙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끝까지 읽게 되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집중해왔다. 『불귀도 살인사건』을 자신 있게 내어놓는 이유는 재미 하나만큼은 확실하다는 자부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부심이야말로 소설가가 계속 작품을 쓸 수 있게 만들어준다. 당연히 내 소설이 모두의 입맛에 맞을 수 없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더 내 작품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이 원할 만한 작품을 쓰는 데 매진한다. 이 작품 역시 그런 독자들의 구미를 당기고, 또한 만족시킬 수 있었으면 한다.
소설가가 된 후 평범한 이들이 비범한 사건과 만나 아등바등하는 이야기를 자주 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공감하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이야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 역시 그런 이유로 쓰게 되었다. 집안일에 치이고 무시당하기 쉽고 때로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마저 접어야 하는 주부들. 그런 이들이 함께 힘을 합쳐 무언가를 해내는 순간을 ‘아주 재미있게’ 보여 주고 싶었다.
나는 좀비가 으르렁거리며 내장을 꺼내고 목덜미를 물어뜯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를 끝장나게 좋아하기는 하지만 비슷한 소설이 세상에 넘쳐나는 이 시점에 숟가락을 얹을 필요는 없었다. 나는 결국 때로는 느리게, 또 때로는 빠르게 움직이며 보조를 맞춰가야 하는 두 엇갈린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제목은 자연스레 정해졌다.
『슬로우 슬로우 퀵 퀵』.
마치 처음부터 이 제목이었던 것처럼 내 이야기와 딱 들어맞았다.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는 두 선남선녀같이.
『어두운 물』은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용감하고 무모하던 20대 시절의 나는 계곡에 빠진 친구를 구한 적이 있었다. 친구가 계곡물에 휩쓸려 가는 걸 보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었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고 둘 다 뭍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말하지만 당시 상황은 꽤 급박했다. 물살은 거칠었고, 물은 차가웠으며, 나는 겨우 개헤엄 정도 칠 줄 아는 수영 초보였다.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 몇 명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지 모른다. (중략)
그때 내가 느낀 건 악의였다. 세차게 흐르는 계곡 물이 어떤 악의를 품고 우리를 끝내 죽이려 하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얼마간은 물에 빠지는 악몽을 자주 꿨다. 그 꿈속의 물은 시커먼 색이었다.
언젠가 한 번은 물이 선사하는 공포를 소설로 써 보고 싶었다. 예전에 『소용돌이』라는 작품을 쓰긴 했지만 그건 저수지가 배경이었다. 고인 물도 음습하고 무섭지만 모든 걸 휩쓸 듯이 흐르는 강물이 더 섬뜩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런 공포와 섬뜩함을 담은 작품이 바로 『어두운 물』이다.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흔한 말이 되어 가는 것에 반해 진짜 그런 성향을 지닌 이들은 양의 탈을 쓴 채 우리 주위에 숨어 있습니다. 숨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죠.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순진한 초식 동물은 위장에 능한 포식자를 잘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위를 잘 살피며 조심해야 합니다. 설마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하죠.
누군가는 촉법소년의 근거가 되는 형법 제9조를 비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럼에도 촉법소년은 벌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몇 년 사이 촉법소년이라는 사실을 악용해 범죄를 저지르는 미성년의 수가 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의 악행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촉법소년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나 드라마도 많이 나왔다. 대부분 훌륭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촉법소년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펴내고 독자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이 작품, 『촉법소년 살인 사건』에서 작가가 옳고 그름을 판단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작가는 화두를 던질 뿐이다. 그렇기에 읽는 독자에 따라 각기 다른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소설을 써 내려갔다.
촉법소년은 아주 민감한 소재이다. 그랬기에 쓰기 전 조사한 자료와 공부한 사례가 무척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들에 매몰되어 재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각오로 작품을 썼다. 작가는 화두를 던지되, 그것을 아주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넣어서 던져야 한다는 걸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저는 단맛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지만 편의점에 갔다가 간혹 츄파춥스를 집어 올 때가 있습니다. 주로 소설을 쓰다가 막혀서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 그러는 편인데요, 계산대 앞에 놓인 커다란 양철통에서 그 귀여운 막대사탕 하나를 스윽 집어 듭니다. 특정한 맛을 고르지는 않습니다. 오늘은 어떤 맛을 먹게 될까, 하고 기대하는 심리야말로 츄파춥스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이니까요. 츄파춥스에는 팝콘맛도 있고, 바나나맛도 있다는데 저는 아직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100개가 넘는 각기 다른 맛의 츄파춥스를 모두 먹어 보는 게 작은 소망이기도 합니다. 모양은 같으나 맛은 다 다른 츄파춥스처럼, 호러라는 장르 역시 여러 ‘맛’을 지니고 있습니다. 딸기맛처럼 붉은빛 가득한 호러가 있는가 하면, 콜라맛처럼 톡 쏘는 호러도 있죠. 의외로 바닐라맛처럼 달콤한 호러도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절친한 신진오 작가와 함께 다양한 맛의 호러를 선보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맵거나 짜거나, 혹은 달콤하거나 시큼한 서로 다른 맛의 이야기 여덟 개가 독자 여러분의 구미를 당길 수 있길 바랍니다. 또 다른 맛이 궁금하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제가 준비한 이야기의 양철통 안에는 무궁무진한 맛의 ‘공포’가 들어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