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쓰게 된 동기
글쓴이는 어린 시절을 불행하게 보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잘못에도 매를 내린 아버지는, 때려도 회초리가 아니라 각목이나 허리띠 같은 것으로 가혹하게 후려치셨습니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여덟 살 아래이고 나와 어머니는 스무 살, 나와 큰동생과는 네 살 차이가 났습니다. 그리고 내 밑의 동생 네 명은 모두 두 살 터울입니다.
대체로 장남을 귀히 여기던 시대였는데도 어머니는, 다른 집 어머니들과는 달리 나에게만 항상 찬밥 취급이었습니다. 동생들에게도 허투루 대하지 못했으며, 그랬다가는 호되게 꾸지람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런 처지를 비관한 나는 열한 살의 나이에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매를 맞은 나는 서러움에 울면서 3시간을 걸어 한탄강으로 갔습니다. 강물에 빠져 죽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강에 도착해서, 아득한 절벽 아래 소용돌이치는 시퍼런 물살을 보니 겁이 났습니다. 해서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무서워하며 자란 나는 스무 살 때, 평소 날 우습게 보는 둘째 여동생이 바락바락 대들기에 홧김에 따귀를 한 대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아버지에게서 연탄집게가 날아오고 칼이 날아오고 난리가 났습니다. 난 그대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을 지내다 길에서 우연히 아버지와 마주쳐 집에 들어갔으나, 어머니의 냉대에 견디다 못해 또다시 가출을 했습니다.
그렇게 혼자 살던 나는 스물아홉 살 때, 라디오에서 서울역 뒤에 있는 약현성당이 문화 사적지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호기심에 가 보았는데, 얼굴이 까무잡잡한 40대쯤 되어 보이는 수녀님이 나와 대화를 나누면서 종교를 가져 보라고 권했습니다.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는 자기도 알 수 없으나, 마음이 평화로워진다고 나를 설득했습니다.
그리하여 몇 달 동안 교리 강의를 듣고 영세를 받게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성유를 손가락으로 찍어 내 이마에 성호를 그어 주자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리에 돌아가 앉아도 눈물은 계속 흘렀습니다. 새삼스럽게 그때까지의 불안하고 고단했던 삶이 기억에서 쏟아지며 서러움이 복받쳐 올랐던 것입니다.
그때부터의 내 삶은 신앙이 전부였습니다. 어디서나 하느님만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성당 건립 100주년 기념으로 펴내는 문학지에 내 글이 실리게 되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펴고>라는 제목의 산문이었는데 뜻밖에도 여러분에게서 좋은 평을 들었습니다.
그 평에 고무된 나는 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글은 어릴 때부터 제법 잘 써서 상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작가에 뜻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책 속에 나오는 작가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궁상맞게 보여 귀감으로 삼을 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별로 이룬 것 없이 서른 살의 나이에 서 있던 터라, 작가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초 공부도 없이 무작정 쓴 글을 들고 성당 아래 있는 출판사로 찾아갔습니다. 그 출판사 사장이 아주 재미있다며 책으로 펴내 준 덕분에, 내 첫 작품 <<꼬마 주리고>>가 서점에 깔리게 되었습니다(당시에잘팔리던<<꼬마니콜라>>라는책이름을본떠사장이지은제목인데나중에<<백일동안의여행>>으로다시펴냄).
그렇게 등단한 나는 장편 동화 <<사과 도둑 일라>> <<이상한 악마 야코>> <<꺽다리 아빠 길보>> <<하수도로 간 다람쥐>> <<아빠 게임>> <<공룡 시대의 아이들>> <<UFO를 훔친 소년>> <<지나의 엄마 놀이>>, 판타지 소설 <<사람이 된 저승사자>> <<몽달귀 먹구리>> 등을 펴내며 이력을 쌓아 갔습니다.
그러다 문인 모임에서 가톨릭출판사의 편집장을 만나, 그 출판사에서 발간하는 ≪소년≫지에 내 작품을 싣는 등 친분이 쌓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을 쉽게 전하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셨으나 그래도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싶은데, 하신 말씀마다 구체적으로 설명을 단 글을 쓰면 어떨까?’
그래서 본보기 글을 써서 가톨릭출판사 편집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편집장이 전화로, 좋은 아이디어라며 그대로 진행하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나는 뛸 듯이 기뻐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칙대로라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시작해야 하지만, 가톨릭출판사 편집장은 수녀님이고 사장은 신부님이라 믿고 집필에만 몰두했습니다.
2007년 9월 20일에 집필을 시작한 나는, 항상 예수님 말씀을 머리에 담고 다니며 수없이 생각을 거듭해 마침내 2년 후인 2009년 10월 13일에 탈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를 보낸 지 석 달이 넘었는데도 가톨릭출판사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이전 사장 신부님은 다른 곳으로 가고 새로 부임한 사장 신부님이 내 원고를 퇴짜 놓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진 나는 그런 경우가 어디 있느냐고 따졌으나 미안하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계약서를 쓴 것이 아니어서 법적으로 대응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덕분에 <<성경>> 공부 확실하게 했다 셈 치고 잊어야 했습니다.
그 후, 사업을 시작하며 처갓집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처가 식구들은 모두 기독교인인데, 이웃에 사는 처삼촌은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아내를 따라 교회를 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을 접해 보니 기독교인들도 천주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을 뿐, 뜻을 깊이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원고를 가톨릭출판사에서 책으로 펴내지 않은 것은 잘된 일일지도 몰라. 출판이 되었다면, 성당에서만 팔리고 천주교인들만 읽었을 테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 원고를 천주교인은 물론 기독교인과 일반인들에게도 읽히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조금이라도 더 완벽을 기하고자 틈나는 대로 다듬고 또 다듬고 한 원고가 13년이 걸려서야 탈고가 되었습니다.
13, 나는 이 숫자를 운명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결코 평범하게 자라지 않은 나는 첫째 달인 1월 13일에 태어났습니다. 스물아홉 살까지 방황하다가 예수님께 의지함으로써 목표가 생기고, 그때까지의 고통스럽던 삶이 참을 만해졌습니다.
그 예수님이 13일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남기신 말씀을 알기 쉽게 전하고자 시작한 이 글은 13년이 걸렸습니다.
나는 지금 70이라는 나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박하게 태어나 잡초처럼 살아온 이 범부(凡夫)가, 저물어가는 인생길에서 그 위대하신 분의 말씀을 세상 사람들에게 다시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영광스럽습니까?
제게 이런 능력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 꼬리말
모든 사람에게 권하는 예수님 이야기
지금부터 2020년 전, 이스라엘의 작은 고을 베들레헴의 초라한 마구간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기는 짚을 깐 말구유 속에 누웠지만, 하늘에는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는 별이 떠 있었습니다.
얼마 후, 별을 보고 동쪽에서 찾아온 세 사람의 박사가 아기에게 선물을 바쳤습니다. 박사들은 아기가 악의 세력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해 줄 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아기가 자라서 30세가 되자, 세상에 나가 하느님?하나님의 나라가 왔다고 선포하고는 많은 병자를 고쳐 주며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에게 당신의 ‘가르침을 잘 전하라.’ 당부하고는, 세상 사람들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에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랐고, 예수님이 태어난 해를 새 세상이 시작한 해로 정했습니다. 올해가 서기 2020년이니, 예수님이 태어난 지 2020년이 된 것입니다.
오늘날 거의 모든 세계 사람들이 그 서기 달력을 쓰고 있고 성탄절을 명절로 삼고 있으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든 안 따르든 예수님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아온 기록을 보거나 글쓴이의 경험에 따르면 신자들이라도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복을 받으려는 주술쯤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낮은 사람들도 알아들으라고 비유 등을 통해 쉽게 말씀하셨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쓴이의 능력이 그 깊은 예수님의 생각을 헤아리기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13년의 세월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써 보았습니다.
이 책은 어린이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문장으로 썼습니다. 어린이는 미래의 주인공으로,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 사회를 밝힐 어른으로 우뚝 설 수 있으므로 꼭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천주교에서 주님을 칭하는 ‘하느님’과 기독교에서 일컫는 ‘하나님’을 섞어서 썼습니다. 그 이유는, 천주교와 기독교 신자들이 같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므로 이들 모두에게 읽히고 싶어서입니다. 부디 종파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마음을 열고 함께 보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예수님 오신 지 2020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 여는 말
엄마는 어떤 분일까요?
엄마는 나에게 몸을 나누어 주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 주신 분입니다. 내게 생명을 주신 분이지요.
어느 북한 여성이 살기 힘든 북한에서 도망쳐 나와 중국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결혼을 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누군가의 신고로 붙잡혀서 북한으로 보내지게 되었습니다.
수용소에 갇히게 된 그 여성은 하루가 10년을 보내는 것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굶주림에 시달리며 나무 베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냘픈 몸으로 그런 일을 하려니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힘들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중국 공안(경찰)에 끌려갈 때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견딜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 나가서, 울고 있을 딸을 달래 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5년이란 긴 수용소 생활을 마친 그 여성은 다시 북한을 도망쳐 나왔습니다. 지금은 딸을 데리고 한국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엄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힘든 일이라도 참고 해내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엄마에게 불만이 많습니다.
“안 돼.”
“하지 마.”
“그러는 거 아냐.”
“좋은 말 할 때 들어.”
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입니다.
하지만 그 말들은 듣기는 싫어도 우리들을 바른 길로 이끕니다.
지나는 엄마놀이를 하면서, 사랑하는 아이에게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 되었답니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거의 모든 것의 비밀이 밝혀지고 아직 모르는 것도 머지않아 밝혀지길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런 놀라운 능력에도 이랑곳하지 않고 아직까지 그 흔적조차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UFO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 눈에 뜨이고 사진까지 여러번 찍혔지만 도저히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별들 중에는 우리 지구와 같이 생물이 사는 별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별에 사는 사람들은 지구에 사는 사람들 보다 과학이 월등히 발달해서 지구의 사람들이 만든 비행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성능이 뛰어난 UFO를 만들어 타고 지구에 오는 것이다." (...)
상상이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방법을 정해 놓고 하듯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든지 갈수 있고 어떻게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