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던 시기가 있었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을 얼마나 더 반복해야 할까? 내 마음조차 영원하지 않을 텐데, 세상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할까? 깊은 환멸로부터 나를 꺼내 준 것은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이모가 마지막으로 남긴 “세상은 아름답다. 예쁘게 잘 살아.”라는 말이었다.
몇 차례 더 이별을 겪으면서 세상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 말을 조용히 꺼내 보곤 했다.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멋진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또한 빛처럼 환한 이별도 존재할 수 있다고, 쏟아지는 빛에 당신이 눈을 감는 순간 새롭게 떠오르는 꿈들이 있으리라고 얘기할 수 있다.
세 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유독 슬픔의 여러 모습에 대해 생각했다. 찬장 속 위스키와 말랑말랑한 혹,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와 보조개, 추위로 얼룩진 이파리들, 사마귀 무덤, 깃털 모자, 배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던 다리 위 사람들. 저마다 나름의 초록을 품고 있는 장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