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죽음이 필연으로 뒤따름은 낮이 지나면 밤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이다. 죽으면 다시 살아날 수 없는 것도 시간이 흘러가면 되돌리지 못함과 매한가지이고.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 누구도 원하는 만큼 오랫동안 살 수는 없다. 죽음이 서럽지 않은 사람은 없으련만, 그렇다 해서 시간을 붙들어매 흘러가지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나. 기왕에 오랜 세월 살 수가 없다면 삶에 욕심부릴 필요가 없어진다. 또 흐르는 시간을 잡아둘 수 없다면 스러진다 해서 슬퍼할 일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만 죽음이 꼭 슬픈 일만은 아니라고 말하련다. 오직 삶만이 서러울 따름이니까. 스러지는 것을 애도하지 말고 바라건대 삶을 슬퍼하라! --이탁오 [스러짐에 대한 애상傷逝] (2004년 8월 18일 알라딘에 보내주신 작가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
이 책의 역자입니다. 모자란 점이 많은 책을 넘치게 사랑해주셔서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책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도 없지 않으시더군요. 대체로 여우나 귀신이 너무 많이 나온다는 것과 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황당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남성지상주의적 서술 등이 주요한 원인인 듯합니다.
물론 맞는 지적이십니다만, 그러나 이는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문제라고 여겨지네요. 우리는 흔히 지금 나의 잣대를 가지고 남을 재단하려 드는 습성이 있지요. 이 책의 저자는 17세기에 살았던 중국의 남성 사대부입니다.
그 역시 봉건의 모순과 질곡의 희생자였고 이에 대한 문제의식 역시 치열했지만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면 차마 현실속의 인간으로 묘사할 수 없어서 그렇게 많은 여우와 귀신이 필요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또 남자만이 사람이고 여자는 예뻐야만 겨우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는 영광을 차지하는 듯한 서술도 우리 여성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꿈이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그 역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드라마나 영화의 남녀주인공들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누구라도 상상의 영역에서까지 초라하고 싶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우,귀신이나 미인은 저자가 자신의 꿈과 이상을 말하기 위해 빌려온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신경쓰다 보면 우리가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다른 것들을 간과하게 될 우려가 있지요.
저자는 작품에서 보다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신랄하면서도 예리한 비판과 계시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대목이 아닐런지요? 이 책을 고전이라 말하게 되는 것도 바로 세월과는 무관한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그런 통찰력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2년 9월 23일 알라딘에 보내신 작가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