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는 역사의 현장을 모두 지켜봤고 나는 그의 눈으로 풀어썼을 뿐이다.
순례의 마음으로 다닌 4.3의 현장에서 나는 ‘4.3의 봄’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4.3의 봄’은 기다리는 자에게 오지 않고 먼저 다가서는 자에게 온다.
물론 아주 더디게 올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봄의 길목에 해방이 있고 또한 통일이 있기에 더욱 발품을 팔 일이다.
그 뜨거운 8.15 해방의 여름, 그 순수절정의 해방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먼 여정에 이 시집이 작은 디딤돌일 수 있으면 나로서는 영광이다.
27년이 지났다.
여전히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고통을 근절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떠나
갔다.
혹은 다른 길로 혹은 전향하기도 하고
혹은 먼저 세상을 뜨기도 하였다.
한번 간 사람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로 남는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남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 아닐까.
지극히 부족한 운동으로도 나는,
후배들의 각별한 수고에
어쭙잖게 기록을 또 하나 남긴다. - 2020년 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