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살아생전에, 춤꾼으로 살아온 나의 이야기를 기록물로 남겨주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뜻하지 않게 병으로 돌아가신 뒤에는 그 생각을 아예 잊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토록 마음에 두었던 소망을 다른 경로의 과정을 거쳐 결실을 보게 되었으니, 나는 아직도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고, 정말로 살을 꼬집어 이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가슴이 벅찬 나머지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돌아보면 다섯 살 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무대에 처음 오른 뒤 60년 세월을 춤과 더불어 살아왔습니다. 학생 시절에는 제주춤의 개척자인 송근우 선생님의 제자로서 춤을 배웠고, 30대 중반에 제주도립예술단 창단에 참여하여 상임 안무장으로 활동한 이후에는, 처음에는 내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중에는 내가 소임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하는 회의와 염려로 속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개척한 제주춤의 맥을 잇는다는 자부심 내지는 사명감과 아버지한테 받은 내 이름을 부끄럽게 하지 말자는 다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예술가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습니다. 가다 보면 평탄한 지름길만 있는 게 아니라 자갈길도 있고 가시밭길도 있는 게 인생이긴 하지만, 그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적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필귀정의 진리를 믿었고, 그런 고난을 통해 자신을 더욱 단련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춤을 추면 행복했습니다. 춤꾼으로 타고났기 때문일까요? 그런 나를 깨달을 때마다 자신을 더욱 다그치고, 그러면서 위안을 얻고, 더욱더 삶의 의지와 희망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모함의 수렁을 벗어난 것도, 암투병을 이겨낸 것도 그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 책은 그런 희망과 의지가 일궈낸 또 하나의 결실인 셈입니다.
이 책은 나의 춤꾼 인생 60년을 기념하여 펴내는 것이긴 하지만, 이 책에는 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제주춤 60년의 스토리도 함께 담았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나의 책이 아니라, 많은 분들의 노고와 열정이 모이고 쌓여서 이루어진 작은 동산입니다.
귀한 원고를 써주신 여러 선생님은 물론이고, 여기서 이름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내가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 머뭇거릴 때마다 성원과 격려로 힘을 보태주신 많은 분들께도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2019년 만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