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 직전의 정점을 향해"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으로 생명력을 지니고 싶다. 한 작품이 다른 작품을 부르고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어로 원고지의 칸칸을 메꾸었음에도 비어 있는 상상적 공간의 크기가 거대했으면 좋겠다. 색채가 일제히 아우성치며 하모니를 이루기 시작할 때라는 피카소의 말을 읽은 적이 있는데, 각 언어들이 일제히 소리내기 시작하여 폭발 직전의 정점을 향해 치솟아오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껏 습작을 해온 것 같다. 그간 써온 것들을 다시 펼치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어떻게 이렇게 작은 의식의 가닥들로 쓰여졌는가, 수치스러움이 인다. 이번 창작집이 묶이고 나면 지금까지 써온 것들이 바람 속으로 흩어져버리고 다른 곳에 서 있을 것 같다.
20대 때 집을 떠나보았을 때 아마도 지고지순을 마음에 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인생을 한바퀴 돈 이 지점에서 어릴 때 느끼던 저 태산준령이 아직 문 밖에 버티고 있음을 본다. 문 밖으로 나서지도 않은 걸까. 문 밖에 나서서 조금 올라가 보았을까. 아득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