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과 원인을 천착하기보다는 당면의 사회현실에 대해 나름대로 발언하고 또 직접 행동해야 할 일이 더욱 많고, 이러한 실천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책상에 앉아서 '근본을 천착하는 작업'이 시작될 수 없거나 무의미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필자는 오늘도 연구와 운동 어느 한곳에 완전히 머물지 못하고 방황하면서 어느 쪽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탓하고 있다. 한국땅에서 사회과학을 하는 불행을 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행복일 수도 있다고 자위하고 있다.
87년 민주화 이후 30년, 외환위기 이후 20년은 87년 이전에 열망했던 만큼의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다. 아니 차라리 투쟁해야 할 이유가 있었고, 희망을 논할 수 있었으며, 주변 모든 사람이 함께 힘들었던 시절이 그리울 정도로 우리 사회는 완전히 양극화되었고 주변을 돌아봐도 고통 속에 보내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 나는 청소년들이 입시의 중압감에서 해방되는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청년 비정규 노동자들이 극히 위험한 작업장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불안한 고용 조건, 장시간 저임 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그런 세상에 살기를 원한다. 그런 세상이 쉬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들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현실은 학교나 기업 자체에 있지 않고, 한국 자본주의 사회경제 시스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남북한의 전쟁/분단체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