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서는 우리의 사회와 국가에서 이념이 가진 각종의 의미를 영적 관점을 동원하여 해설한다. 본래 순수한 중립의 입장에서 서술하고자 했으나 지내온 前歷은 벗어나지 못하여 일부 보수의 입장에 기운 면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대립적인 양측 어느 쪽의 승리가 아닌 어찌해야 우리 민족의 존재 목적을 살려 우주의 영적 확장에 기여할 것인가이다. - 머리말
譯者序言
文藝創作을 追求하던 譯者는 헤겔이 세상을 떠난 나이 즈음부터 그 前부터 希望해왔던 哲學의 학습을 再改했다. 오래전에 마련해 두었던 1970年代版 철학관련 全集들은 길잡이가 되었다. 그런데 헤겔의 主著이자 全 哲學書 중에도 屈指의 著作인 〈精神現象學〉이 전집목록에 없거나 〈序說〉 만이 있던 것이었다. 結局에 譯者가 가장 力點을 두게 될 운명이었던 〈精神現象學〉이 오래전의 전집에 不在했던 것이 일찍이 희망을 두었던 철학에의 학습이 중단되게 한 原因이 아니었을까 思料되었다. 당시엔 아직 與件이 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이후 비로소 〈精神現象學〉의 번역본이 나온 1980年代 무렵은 이십세기 내내 끈질기게 우리 민족을 흔들었던 民族言語改造論이 교육을 넘어 현실문화사회에서 實施되기 시작한 때였다. 世宗大王이 나날의 使用에 便宜를 주고자 창제했던 표기규범이 강제사항이 됨에 따라 우리 언어정보의 세밀하고 穩全한 표현이 制約된 다음에야 〈精神現象學〉의 번역은 시도된 것이었다.
그 전에 소설을 창작하면서도 온전한 표현을 가로막는 언어제약 이데올로기를 辟易했던 譯者로서는 駭然할 일이었다. 대중소설은 平易한 문장에서 이야기흐름의 앞뒤 情況을 보아 단어의 意味를 類推할 手도 있지만 문장자체가 독자의 常識 그 以上인 철학서에서 語彙意味가 始終 불확실함은 우리말에만 의지하여 학습하려는 국내학습자에게 致命的인 것이었다. 결국 外國語本을 찾아 學習을 補助할 手밖에 없었다.
巷間에선 이미 우리사회에 관행으로 쓰이는 보편적 단어는 굳이 ‘번거롭게’ 한자표기를 하지 않아도 간략한 한글표기로 ‘문제없이’ 읽혀진다고는 하나 이는 오래 전에 漢字로 용어를 분명히 표기한 자료가 있기에 지금 한글만으로 意味推定이 가능한 것이다. 성경이나 다른 주요 철학서들은 용어의 의미를 책임지는 先行 板本이 이미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大韓民國 초기의 학자들은 當身들은 苦生해서 遊學을 갔다 왔으니 後學들은 더 이상 고생해서 유학을 나갈 필요가 없도록 心血을 기울여 난해한 철학서를 번역했다. 그러나 이후 국민소득의 증대로 더 이상 해외유학이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시대가 되면서 학술번역서의 한글전용화는 原語로 학문을 접하는 專門學者層과 국내 非專門 學習者層과의 隔差를 증폭하여 전문학자의 일반학습자에 對한 獨步的 位相을 保障해주는 것이라 無批判的으로 이어져 왔다.
이 번역서의 목적은 전문학자나 專攻者가 아니라도 원어본이나 영어본을 참조하지 않고도 우리의 글을 읽으며 〈精神現象學〉의 論旨 파악이 가능하도록 함이다. 曾經에 譯者의 試圖에 關해서 우리 언어의 문제에 同志的인 人士도 전문용어를 제외한 나머지 단어들은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좋지 않느냐는 견해를 주기도 하였다. 같은 단어라 해도 경우에 따라 한자 혹은 한글로 다르게 표기함으로써 얻는 표현상의 효과도 문학인으로서 알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글의 기교의 관점이다. 學問을 위한 敍述은 모든 의미를 표현하는데 한 치의 曖昧함도 있지 말아야 할 것이라 非專門用語도 예외로 두지 아니하였다. 학문적 서적의 筆者는 사용어휘 全般의 意味에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漢字에 거부감을 가진 讀者는 여기서 이 책을 書架에 도로 놓고 ‘어리석은 백성에게 정신현상학을 가르치기 위하여 한글로 쉽게 씌어진’ 다른 책을 고르기 바란다.
원어를 多少 接하면서 우리말 표현을 고민해본 學人이라면 때로 原語에 比한 우리말의 무력함을 느꼈을 것이다. 非但 語彙量와 文章構造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말 표현의 중요한 특징적 기능인 助詞도 그 다양성이 부족하여 원어를 담아내기 벅참을 느낀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려면 歐美言語에 比한 우리말의 근본적 差異를 直視해야 한다. 구미언어는 문장구조가 발달하여 같은 단어도 문장속의 配置狀態에 따라 語義轉成이 論理的으로 일어나 같은 어휘량으로도 표현이 풍부해진다. 하지만 한국어는 문장의 구조가 그들만큼 합리적으로 발달하지 않아서 어의전성이 그들만큼 효과적으로 되지 않는다. Geist/Spirit을 精神이라는 한 단어로 줄곧 번역하기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다. 그들 언어보다 비교적 硬直한 單語意味를 가진 우리말은 같은 原語에 對해서도 狀況에 따른 多樣한 語彙로 對處해야 할 것이다. 精神은 精이라는 단어와 神이라는 단어를 合한 포괄적 의미일 뿐이다. 경우에 따라 Geist/Spirit은 精神 時代精神 集團精神 大精神 神 靈 魂 靈魂 公神 等의 譯語로 適切히 代置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數도 있으나 우리는 漢字의 組合으로 豊富한 新造語를 別途의 학습과정 없이 應用 가능하다. 앞으로 이러한 노력이 자리를 잡는다면 우리는 영어권 독일어권 독자보다 더욱 容易하게 난해한 철학서를 읽는 특권을 얻게 될 것이다.
‘文藝作家’의 所任은 그 나라 그 민족의 언어를 살리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물론 제한 없는 想像描寫의 기회가 있는 문학이 語彙와 文章 開發의 주된 素材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나라 國語의 全般的 格上을 위해서는 觀念的 哲學도 중요한 素材가 된다. 이 책에서의 用語는 辭典的 慣用的 意味 보다는 漢字 각각의 의미를 살려 해석해야 할 것이다.
헤겔은 〈歷史哲學〉에서 ‘정신의 최고개념을 가진 민족이 世界史的’이라고 했다. 이는 그 자신이 쓴 〈精神現象學〉의 내용을 無理 없이 담는 國語를 가진 民族이라야 세계사에서 主體로 나서고 持續的인 국가경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로 보아도 過言이 아닐 것이다. 〈精神現象學〉이 더 일찍 한국사회에 보편화되었더라면 헤겔이 言語가 民族精神의 核心임을 그토록 강조했음에도 不拘하고 現代史에서 우리의 언어가 그렇게 쉽사리 인위적 퇴보를 自招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한다.
應當 如下의 稿로 數年의 自己學習을 經過한 다음에야 發表의 資格이 있을 것임을 알면서도 江湖諸賢의 鞭撻을 서둘러 借用하고자 未熟狀態로 내놓는 拙手에 諒解를 求한다.
2024. 11. 朴京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