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하다. 모든 것에 무관심하지 말라고.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고. 무언가를 거창하게 바꾸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은 그렇게 무언가를 거창하게 바꾸려고 나선 사람들 때문에 더 혼탁해졌다. (……) 그러나 모든 사람이 세상일에 무관심하지 않으면서 자기 자리에서 조금씩만 더 노력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아질 수 있다. 그것이 출발점이다.
이 책은 ‘명성의 전당’과 관련한 모든 측면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위인과 천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에 색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기존의 위인들을 흠집 내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세간의 평가를 무작정 따르는 태도에 비판의 칼을 들이대는 동시에 때와 기회를 얻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무수한 나폴레옹과 모차르트들에게 애정 어린 헌사를 보낸다.
살아남음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만, 그 고된 과정을 이겨 내는 가운데 우리는 살아갈 참된 힘과 용기를 얻는다. 사실 이 책의 미덕은 죽음과 같은 상황에서도 삶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사실을 보여 준 데 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숨바꼭질을 하고, 그런 놀이 속에서 현재의 상황을 잊은 채 순간의 즐거움을 맛보고, 옆방에서 부상당한 채 죽어 가는 아저씨에게 물을 나누어 주는 것을 아까워하면서도 그런 이기심에 죄책감을 느끼고, 동생들 몰래 남은 물을 마시면서 속으로 미안해하고, 식욕이 없으면서도 한 조각 음식이 입에서 녹아내릴 때 작은 행복감에 젖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가 안정될수록 신분 상승의 기회는 줄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태생적 조건은 더욱 폭넓게 대물림된다. 개인의 노력보다 태생이 신분을 좌우하는 이런 사회에서 삶의 의욕은 급격히 떨어지고 정의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감옥을 전전하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고는 빚과 유품 상자 하나밖에 없는 작가는 25년 동안 열지 않던 상자를 마침내 열어보며 상속의 역사와 부조리함을 파헤치고, 우리가 후대에게 물려줄 또 다른 유산을 걱정한다.
예술을 통한 판타지 여행은 한순간에 백일몽처럼 끝나고, 그로써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는 감옥의 높은 담장만큼이나 다시 확고하게 그어진다. 현실로부터 일탈의 결과도 만만찮다. 1인칭 화자의 감방 동료 하네스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또 다른 죄수는 자살까지 감행한다. 그런 가운데 탈출 계획이 다시 수립된다. 이번에는 예전보다 훨씬 기회가 좋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하네스는 탈옥을 포기하고 화자와 함께 감옥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사이 감옥에서 새로 상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처럼 삶은 결국 끊임없는 기다림이라는 인식과 함께 사람은 서로에게 기대며 현실을 버텨 나갈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다. 하네스가 말한다. 어차피 견뎌 내야 하는 것이라면 슬픔을 같이 나눈 사람과 함께 견뎌 내는 것이 한결 수월할 거라고. 인간은 실존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현실을 버텨 내야 한다는 것이다. 슬프면서도 따스한 위안을 담은 메시지이다. - 옮긴이의 말
미래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환경과 인간의 조화롭고 평화로운 공존에 있다는 사실을 도외시한 채 누구나 앞다투어 경제의 중요성과 일자리 창출만을 언급한다. 또한 자원과 석유를 둘러싼 분쟁이 심각한 현실로 등장하고 있는데도 화석연료 없이 사는 미래에 대한 대책은 대중의 관심사에서 아직 멀기만 하다. 이런 상황에서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사회, 정치, 환경에 대한 의식과 연대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데 중점을 둔 이 책의 등장은 퍽 반갑다.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