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번역하면서 프로그램 소스를 작성하고 키보드의 엔터 키를 누르거나 마우스로 실행 버튼을 눌렀을 때 화면에 내가 원했던 결과물이 나오는 희열로 열정에 가득 차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 입문하던 신입사원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무엇이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지요.
그런 시절을 지나 SI 프로젝트의 관리자가 되면서 촉박한 일정에 허덕이고, 고객의 요구사항을 일정과 원가라는 핑계를 대며 수용여부를 협상하고, 살인적인 일정에 허덕이는 팀원들에게 또 다시 협의된 추가 업무 범위에 대한 개발을 지시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업종에 계신 분들이 유사한 경험을 겪으셨을 겁니다.
저자인 매트 파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경험을 했지만, 그는 피보탈 랩스에 입사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왜 우리는 직장에서 열정, 기쁨, 행복 또는 혁신과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수년간 직장에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토대로 전 세계에서 직장 내 혁신을 이뤄내 직원들과 비즈니스에 엄청난 성과를 창출하는 기업들을 분석하면서 그 이유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매트 파커는 엄청난 성과를 내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명령과 통제로 특징지어지는 지배자 계층 구조를 타파한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배자 계층 구조는 직원들을 직장에서 몰입이 아닌 심리적 이탈을 시킴으로써 회사의 미션과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적이지 않게 만들고, CEO나 경영진에 대한 불신을 키우며, 자신의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원인이었습니다.
그 원인을 해결하고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하고 CEO나 경영진을 신뢰하며 자신의 일에서 의미를 갖기 위한 회복의 방법을 혁신을 일궈낸 기업들에게 찾았습니다. 그 기업들은 지배자 계층 구조에서 벗어나 급진적으로 협업을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급진적 협업은 네 가지 필수 요소인 팀 자율성, 경영권 전환, 결핍에 대한 만족, 취약함의 인정이라고 매트 파커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팀 자율성은 팀 자체가 누구의 명령이나 통제를 받지 않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통제하는 개념이며, 경영권 전환은 지배자 계층 구조의 권력을 팀으로 분산시키는 것입니다. 결핍에 대한 만족은 팀이 파트너십과 평등으로 무장하고 팀원들의 인간적 요구인 안전, 자율성, 공정성, 존중, 신뢰와 같은 욕구를 만족시키는 개념이며, 마지막 취약함의 인정은 개방성과 투명함으로 팀이 자신들의 집단적 사고를 스스로 검증하고 비판하고 경우에 따라 생각한 모든 가정 사항들을 무효화하는 것입니다.
급진적 협업의 네 가지 필수 요소는 마치 애자일 방법론이 추구하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만, 번역을 하면서 느낀 것은 매트 파커는 지금까지 조직의 상층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권한을 팀 단위 혹은 개인 단위로 내리는 명령, 통제, 권한의 민주화(democratization)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주장하는 대로 네 가지 필수 요소를 통해 명령, 통제, 권한의 민주화를 이뤄내면 급진적 협업이 이뤄지고 이는 직장 내에서 하나의 문화로 정착할 것입니다. 그 결과 기업과 팀 그리고 개인들이 안전, 자율성, 공정성, 존중, 신뢰로 가득차고 높은 성과 또한 창출할 가능성이 높아지리라 기대합니다. 다만, 네 가지 요소를 조직 내 문화로 정착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도전일 것입니다.
그 힘들고 도전적인 험난한 과정의 길잡이를 위해 매트 파커는 네 가지 필수 요소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다양한 문헌을 제시하고 있으며, 특히 급진적인 협업을 통해 기업, 팀이 일궈낸 놀라운 성과들의 다양한 사례를 이 책 곳곳에서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이 각 네 가지 필수 요소를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선택하신 독자분들도 이미 급진적 협업을 위한 첫 걸음을 매트 파커와 함께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새로운 목적지로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마지막 장까지 다 읽으신 후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시길 바랍니다.
애자일을 처음 접한 것은 2007년 어느 여름, 한 교육 과정이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에서 일하면서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와 프로젝트 리더를 거쳐 나름 유능한 프로젝트 관리자로 경력을 잘 쌓고 있을 때였다.
스크럼 교육을 받으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은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이 아닌 이런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교육 후 실제 업무에 적용하면서 다양한 난관에 부딪히기는 했지만, 그 과정을 통해 애자일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졌다.
애자일에 한창 익숙해졌을 때 "앞으로 더 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 접한 단어가 애자일 코칭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칭도 아닌 코칭이었고, 매번 개발자 및 스크럼 마스터와의 갈등을 겪었다.
생각해보면 애자일에 대해 많이 안다고 생각한 나는 그들에게 여전히 애자일스러운 코칭이 아닌 전통적인 방식의 지휘와 통제의 관리기법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 당시엔 코칭이 뭔지도 몰랐고, 내 주변에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조언을 들을 곳도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하며 코칭이 무엇인지를 깨우치는 수 년의 시간을 보냈다.
진정한 애자일은 기업 문화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애자일리스트는 여전히 애자일 프로세스를 정착시키고 애자일을 기업 문화로 변화시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그만큼 애자일은 간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어렵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애자일 코치라는 타이틀로 컨설팅하는 코치들은 팀 하나 혹은 두세 개의 팀을 코칭한 경험밖에 없으며, 애자일 컨설팅 기업 역시도 기업 문화로서의 애자일보다는 애자일 프로세스나 프레임워크에 대한 컨설팅과 함께 애자일이나 데브옵스를 원활히 수행하는 데 필요한 여러 시스템적인 도구를 많이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이유로 애자일을 코칭하는 코치들에 대한 본격적인 양성은 미진한 듯 보이지만, 이에 대한 욕구는 상당히 많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애자일을 도입함으로써 창출되는 성과를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애자일을 전반적으로 코칭하는 코치의 양성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리사 앳킨스의 책은 나와 같이 전통적인 프로젝트 관리 방법론에 익숙했던 전문가, 테크(tech) 기반의 기술 전문가, 이미 한창 스크럼 마스터로 애자일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전문가들이 자신의 욕구에 의해 또는 기업의 요구에 의해 애자일 코치로 한 단계 도약하거나, 애자일 코칭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이다.
-용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