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해서 글로 정리하는 행복감을 아십니까?
나는 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에 순천, 여수, 순천을 거쳐서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그동안 5곳의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이 책은 60년대, 초등학교 시절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어리숙했던 한 소년이 살면서 경험했던, 지금은 사라져 버린 그 당시의 삶을 기억의 호주머니에서 끄집어내어 적어 보았다.
크게 특별하지는 않지만, 또 나름대로 독특한 여정을 가졌던... 나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소소한 재미와 행복감을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순천 대홍수, 정형수 선생님, 고교 시절의 친구들 그리고 광주사태의 이야기까지 크고, 작게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던 일들을 적으면서 이런 일들이 어느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고, 누구나 기억 속에 간직된 일들 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글을 읽으면서 독자들이 그 기억들을 새삼 돌아볼 수 있고, 잔잔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기를 바란다. - ‘나는 병신년생’을 내면서
이 단편 소설들은 저자가 의사가 되고 난 후에 경험한 여러 가지 사건들을 소설화한 것이다.
이 소설들을 통하여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는 중에, 최근의 의료사태로 의사들에 대한 세상의 인식이 많이 악화되었지만, 그래도 좁은 진찰실 안에서 온종일 환자들과 삶을 나누는 많은 좋은 의사들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외치고 싶다.
그리고 혹시라도 이 책을 읽는 후배 의사들이 있다면 환자를 대하는 기본적인 자세에 대해서 더 강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야 한다.
기억하지도 못하는 칭찬 한마디가 주었던 무게감, 자신의 약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신감, 남의 실수를 먼저 안타까워 해주는 배려심, 그리고 안타깝게 놓쳐버린 생명들에 대한 회한들을 적어보았다.
부디 독자들이 즐겁게 읽으시고, 유익한 정보도 얻고 동네 의사들에 대한 인식도 조금은 바꿔주시기를 바라본다.
용서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피해자가 그 피해로 인한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을 때일 것이고,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을 때일 것이다. 그 두 가지 중에서 가해자가 끝까지 반성을 하지 않는다면 용서가 불가능할 것인가? 그럴 경우라도 나는 용서가 가능하리라고 믿는다. 피해자가 극복하면 된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피해자가 자신감을 가지고 상처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다면 가해자의 태도와 상관없이 용서가 가능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적 용서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이 소설을 다 읽으시고 독자분들의 가슴 속에서 과거사로 인한 용서에 대해서 어떤 판단이 가능할지 나는 무척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