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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허수경

성별:여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64년, 대한민국 경상남도 진주

사망:2018년

직업:시인

데뷔작
1987년 실천문학 등단

최근작
2023년 10월 <빛 속에서 이룰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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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외로운 한 아이에게 이 책을 드린다. 그리고 꼭 말하고 싶다. 사랑한다고. 멀리, 멀리서 누군가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 사람도 외로웠다고. - 개정판 작가의 말 전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 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 불안하고, 초조하고, 황홀하고, 외로운, 이 나비 같은 시간들. 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 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2018년 7월 1일

그림 형제 동화집

"이 책이 잠 못 이루는 밤에, 아픈 날의 침대 맡에 동반해 줄 친구가 되기를" "어릴 때 많이 읽었던 그림 형제 동화였지만 원서로 읽는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물론 독일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줄줄 읽어 나가지는 못했다. 한 줄 한 줄, 그저 띄엄띄엄 읽었다. 그런데도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있었다. 마녀, 난쟁이에서부터 마법에 걸린 왕자와 공주에, 여우가 말을 하고 나무에서 황금 사과가 열리고 등불의 푸른 불빛은 꺼지는 법이 없고, 뱀 고기를 먹었더니 갑자기 동물들의 말이 들리고……. 마르부르크 역사를 '9와 4분의 3 승강장'으로 둔갑시키는,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였다. 이런 판타지를 읽을 나이는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하긴, 따지고 보면 환상의 세계를 즐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

* 겨우내 귤 한 알, 베란다 창틀 위에 놓여 있었다. 다시 암이 찾아오면서 병원에 입원을 할 때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귤 한 알, 창틀 위에 놓아두고 병원엘 갔지. 지난가을에는 암 종양으로 가득한 위를 절개했다. 그리고 겨울, 나는 귤 한 알이 먹고 싶었나보다. 귤 한 알. 인공적으로 연명하는 나에게 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나는 그 작은 귤의 껍질을 깠다. 코로 가져갔다. 사계절이 코끝을 스치며 지나갔다. 향기만이. 향기만이. 그게 삶이라는 듯 병원 창틀에 작은 햇살이 머문다. 이런 날이면 어제의 오후엔 웬 눈이 왔는지 싶다. 청명한 오늘만을 살라고! 오늘만이 삶이라고! * 작년에 화분에 심어둔 수국이 얼어가고 있었다. 내가 얼어가는 동안 수국도 얼 거라는 걸 우리가 같은 계절을 산다는 걸 왜 모른 척했던가. 수국은 나보다 먼저 갈 것이다. 소리 없이 불평 없이 그리고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언젠간 너를. * 개나리 노란 한숨, 저 바람이 스치며 간다. 노란 한숨이 아직은 작게 내려오는 봄빛 아래에서 바람이 스친, 아린 자리를 쓰다듬으며 허공에 머물러 있다. 사랑한다, 라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고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 오래 죽어 있던 책. 온전히 나였던 책. 아프게 썼고, 처절하게 썼고, 무덤을 열고 들어가 나 스스로 죽음이 되어 모래 먼지의 이름으로 썼던 책. 다시 숨을 쉬게 된다니 기적만 같다. 이 기적이 내게도 올까. 온다면, 크리스마스에 벽난로 앞에 앉아 만질 수 있을 텐데. 만지고 싶은데. 될까. 그게. * 사랑하는 민정아. 네가 있어서 참 좋았던 시간을 무엇으로 갚을까. 너에게는 오래전 나에게서 떠나간 표정이 있어.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그리고 져버려버리는. 그런 네 손에서 나오는 책이니 나는 미안한 마음만 가득. 이런 말도 더이상 하지 않기. 그러기. 네게 마음 빚만 많은 이 생을 지나 다음에는 내가 네게 많은 걸 할 수 있기를. 널 위해 나 역시 고개를 자주 숙이며 기도를 한단다. 하루종일 이 책을 떠올리며 보냈다.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는 생각. 아프면 참지 말고 아프다고 하고. 2018년 9월 독일에서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가만히 내가 움직인 길을 살펴본다. 고향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독일로 발굴을 하느라 시리아로 터키로. 몸의 눈을 닫고 마음의 눈으로 나는 다양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낯선 종교와 정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나라는 한사람이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인이라는 나와 나라는 나, 그 사이에 섬처럼 떠돌아다니던 시간들. 그러나 시를 쓰는 나는 한국어라는 바다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 내가 나를,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8년 만에 시집을 묶으면서 8년 전에 썼던 시들을 다시 읽어본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만이 간절한 세월이었다. 가만히 내가 움직인 길을 살펴본다. 고향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독일로 발굴을 하느라 시리아로 터키로. 몸의 눈을 닫고 마음의 눈으로 나는 다양한 세계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낯선 종교와 정치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면서 나라는 한 사람이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한국인이라는 나와 나라는 나, 그 사이에 섬처럼 떠돌아다니던 시간들. 그러나 시를 쓰는 나는 한국어라는 바다에서만 머물고 있었다. 어머니, 다른 식구, 그리고 벗들. 그들의 인내를 파먹고 살았던 독일 체류 기간 동안 나는 이제 더이상 돌아가리라는 약속을 하지 않는 지혜를 배우고 있다. 내가 나를,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곳, 그곳에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2001년 1월

너 없이 걸었다

그냥 한번 들르세요. 일부러 오기까지는 못하겠지만 이 근방을 지나가신다면 마치 기약 없는 나그네처럼, 훌훌 털어버린 가벼운 어깨를 하고, 그냥 한번. 이렇게 바쁜 세상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렇군요. 하지만 만일, 정말 만의 만의 하나라도 시간이 난다면,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약 열 시간 거리를 날아오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합니다. 공항의 역인 프랑크푸르트 페른반호프Fernbahnhof에서 기차로 약 세 시간 반 혹은 네 시간을 달리면 뮌스터에 도착하지요. 오전에 인천공항에서 출발해서 시차 여덟 시간(겨울), 혹은 일곱 시간(여름)을 통과하고 난 뒤 당신의 프랑크푸르트 공항 도착 시간은 저녁 무렵이에요. 여름이라면 아직 독일의 저녁은 밝습니다. 이곳의 여름 저녁은 놀라울 정도로 천천히 옵니다. 뭐 자동차를 빌릴 수도 있고 당신이 원한다면 아주아주 오래 걸리더라도 자전거를 타고 며칠씩 쉬엄쉬엄해서 올 수도 있겠지만 나는 기차를 타고 오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직접 탈 것을 몰지 않으니 편한데다가 무엇보다도 기찻길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온 여행의 피곤함 속에서 당신은 앉아 있기만 하면 됩니다. 프랑크푸르트 역을 지나 마인츠와 코블렌츠, 그리고 쾰른을 지나는 이 길은 라인 강의 길이에요. (……) 해가 지고 있는 라인 강을 기차 너머로 바라보며 겁을 잔뜩 먹으면서도 가야 하는 길들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겁니다. 여행은 그런 것입니다. 낯선 곳을 찾아가는 인간을 동반하는 것은 설렘과 고독이지요. 모르는 모든 것들 앞에서 설레지만 그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은 무시무시한 고독에 속합니다. 처음 도착하는 비행장이나 역에서 짐을 지켜줄 사람을 찾지 못해 꾸역꾸역 그 짐을 끌며 급히 화장실을 찾아야 하는 순간, 고독은 아주 구체적인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지요. 그리고 도착하면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나요? 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아주 평범하고도 당신이 여행으로 선택한 곳이라 아주 특별한 한 장소. 뮌스터 역에 도착하면 어쩌면 이렇게 못생긴 역이 어디 있나, 당신은 어둠 속에서 혼자 묻겠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이차대전으로 거의 폐허가 된 뮌스터에는 이렇게 못생긴 건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어느 입구입니다. 낯선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아, 사람들이 사는 곳은 똑같네, 식으로 말한다면 아주 익숙한 별의 입구입니다. 이 도시는 나그네들에게 친절하여 벌써 역 앞에 여관들이 보입니다. 이 여관들도 어쩌면 역 건물처럼 볼품없이 보일 겁니다. 하지만 하루 잘 만한 곳은 되지요. 하지만 조심할 것 하나. 쏜살처럼 달리는 이 도시의 자전거들! 자동차보다 더 많은 권력을 가진 것은 바로 이 도시의 자전거입니다. 그러니 조심. 자전거가 불쑥 나타났다 사라지면 그냥 눈웃음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기차를 기다리다가 역에서 쓴 시들이 이 시집을 이루고 있다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기차는 왔고 나는 역을 떠났다 다음 역을 향하여 2016년 가을

모래도시

또 허술한 집을 지었다. 나는 단단하고 따뜻한 집을 짓고 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언제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단한 집이 필요한가 하면 허술한 집도 누군가에게는 필요할 것이다. 필요한 사람들이 잠시 깃들어 초라한 마음을 이 허술한 집에서 쉬어갔으면 한다. 허술하므로 단단한 집보다 더 위로가 되는 집이었으면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일 것이다.

모래도시를 찾아서

무덤을 방문하는 자에게 무덤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다만 무덤을 방문하는 자들이 무덤을 앞에 두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를 들여다보는 자의 내면에는 미래를 점치고 싶은 내면이 있으며 미래를 점치려는 내면은 현재의 문제를 분석하려는 내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왜, 현재인가? 그 시간, 현재라는 시간만을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 현재라는 인간의 시간만이 나와 너를 이렇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박하

그랬다. 나는 항상 멀리 있었고 너 역시 그래서 우리는 이 생애에서 몇 번이나 만났던가. 그런데도 너는 잊혀질 만하다 싶으면 짧은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그게 우리의 인연이거니 생각했는데 참, 다시 생각해보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내가 그리워하는 너는 언제나 너의 소재지를 밝히지 않으니 그게 힘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인연을 붙들고 괴로운 것도 괴롭지 않은 것도 아니었던 시간에, 글을 쓰기 위해 오렌지빛 램프를 켜며 책상 앞으로 돌아온 나날들. 책을 한 권 다 쓰고 난 뒤 생각을 해보면 모든 글쓰기의 내면에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싶어하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19세기 말과 20세기, 그리고 우리가 사는 지금 21세기, 모두를 통틀어서 상처 없는 바람을 안고 간 사람은 없었겠지. 그리고 그 상처의 바람은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을 가슴에 품고 헤매는 바람이 아니었을까. (중략) 아, 내가 아무리 너를 부인해도 너는 있다. 얼마나 생은 아프도록 눈부시고 좋은가. 네가 어느 거리에서 아주 가끔이긴 하지만 나를 생각하니. 그리고 이 글이 쓰이는 동안, 고백한다, 너를 생각해보지 않은 순간은 한 번도 없었다. 다만 네가 누구인지 나는 몰라서 글 속의 길은 좁고 가팔랐다. 2011년 11월

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1980년대 말. 그때 우리들은 가난했지요. 가난하고 지난했지요. 정치는 어두웠고 청년들은 잡혀갔고 글을 쓰는 것도, 사는 것도 검열과 단속의 시절이었어요. 그 시절, 탄생된 저의 첫 시집,『슬픔만 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는 저의 뿌리, 저의 오래된 얼굴을 담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삶이 지난하다는 걸 모르고 열정만 가득하던 시절, 말의 어려움과 지난함과 지극한 가벼움과 가벼움 뒤에 서 있는 사랑과 삶을 알아보지 못하고 다만 젊어서 불렀던 노래들이 그 시집 안에는 담겨 있습니다.

아틀란티스야, 잘 가

요즘 시대에 맞는 발랄하고 생기 찬 오늘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30년 전의 이야기를 하는 저의 마음 역시 착잡합니다. 더구나 이야기는 뚱뚱하고 외로운 한 소녀의 참담한 실패담입니다. 70년대의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작은 도시, 어느 골목에서 일어난 이야기. 전쟁이 끝난 지 이십여 년. 분단과 독재, 가난과 경제 개발이 우리가 살았던 그 당시의 얼굴을 사로잡고 있던 때입니다. 그 시대, 어른들이 만든 불가해한 폭력의 세계에 갇힌 아이들이 꿈꿀 권리를 잃어버린 채 울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 그 시절의 이야기는 이렇게 가슴에 가득 차 있는데 어째서인지 좋다, 즐겁다라는 느낌보다는 힘들다, 부끄럽다는 느낌이 들 때가 더 많거든요. 그리고 낙원을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낙원을 믿는 그 순진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참 힘들었습니다. (……) 아직도 혼자 외로워서 공책이나 컴퓨터에 자신만의 낙원 이야기를 지어보는 많은 분들에게 이 이야기가 조금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잃어버릴 줄 알면서도 낙원을 꿈꾸는 분들에게는 더욱더요. 잃어버릴 각오가 되어 있지 않으면 낙원 그냥 그저 그런 디즈니랜드가 아닐까요?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나는 이 시집에 묶인 시들을 反전쟁시라고 부르고 싶다. 내가 특별히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건 아니다. 다만 이 시집에 묶인 많은 시들이 크고 작은, 가깝거나 먼 전쟁의 시기에 씌어졌기 때문이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한 인간이 쓰는 反전쟁에 대한 노래, 이 아이러니를 그냥 난, 우리 시대의 한 표정으로 고정시키고 싶었을 뿐.

혼자 가는 먼 집

악기만 남고 주법은 소실되어버린 공후를 본다. 體만 남고 用은 사멸되어버린 악기, 썩어 없어질 몸은 남고 썩지 않는다는 마음은 썩어버린 악기. 악기는 고정된 세계의 현현이다. 주법은 이 현현을 허물어뜨리려 한다. 그러나 주법은 진동의 미세한 입자를 시간 속에 끼워넣으며 악기의 경계와 세계의 경계르 건드릴 뿐인데 이 건드림, 이 건드림이 직조해내는 무늬, 진동의 미세한 입자들이 뿜어내는 숨과 그 숨의 웅숭그림이 천변만화해내는 세계. 나는 그 마음이 썩기를 원한다. 오로지 몸만 남아 채취되지 않기를, 기록되지 않기를, 문서의 바깥이기를. 이것이 마음의 역사다. 그 역사의 운명 속에 내 마음의 운명을 끼워넣으려 하는 나는 언제나 몸이 아플 것이다.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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