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위기를 동시 다발적으로 경험하면서 2020년은 후대에 역사의 변곡점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전망해 본다. 전 세계를 덮친 코로나 팬데믹은 언택, 뉴노멀 같은 신조어를 생산해 내면서 우리가 평소에 살아왔던 일상에 대해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전염병의 대유행이 역사에 초유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 같이 복합적 위기로 닥쳐온 것은 유래가 없을 것이다. 질병, 기후, 환경에 더해 테러, 문화 갈등, 국제 관계의 와해 등등 대내외적인 혼란과 문제들은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다. 위기의 시기에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여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는 인류사의 기록이었으며,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희망과 미래 전망을 기획하기 위해 흔히 시대론, 혹은 epoch 같은 거대 담론에 의존하게 되는데, 우리나라가 채택한 거대담론은 4차 산업혁명으로 모아지는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적 전환을 견인하는 키워드로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나가고 있다.
흔히 시대론이나 epoch 관점은 텅 빈 기호라는 선인들의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더 나아가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식을 한두 마디의 시대론이나 이포크로 환원하여 명명하는 것이 비인간주의적이고 권력적 사상이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시대나 시대론이 등장하고 거대 담론으로 명명하기 좋아하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 보면 이것이 희망의 횃불이 되고 시대를 개척하고자 하는 인간적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에 널리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의 기치는 전형적인 거대 담론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해외에서 처음 유입된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들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널리 사용하지 않고, 유독 우리나라가 이를 전방위적으로 유용하고 있는 점도 그렇다. 또 4차 산업혁명을 기치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기술 수준이나 사회적 응용 측면에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현실도 텅빈 기호의 이포크 관점을 확인시켜 주는 듯하다.
이와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본 저서에서 4차 산업혁명을 논하는 이유는 이미 정치, 경제뿐 아니라 교육 전반까지 밀고 들어온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담론을 단순히 캐치프레이즈나 텅 빈 기호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미래를 희망적으로 전망하고 전천후적 용어로 사회 전반의 변화를 대체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을 다각도로 조망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우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전천후적 개념이 가장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분야는 영상미디어 분야라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본 저서에서는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하는 미디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 위해 산업 구조적 관점에서 조망하였다. 4차 산업혁명을 구가하는 미디어의 변화를 단순히 현상적으로 추적하기보다 이론적으로 평가하고 균형 있는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주류 이론과 비판 이론 관점을 비교하여 제시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로 변화하는 영상 미디어산업 구조 분석을 위해 주류 이론으로는 경제학, 비판 이론으로는 정치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특정 학제를 넘어 현상의 변화를 다르게 접근하는 두 개의 접근법이고 세계관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다.
본 저서는 저자가 과거 십수년간 강의해온 영상 미디어산업 과목을 위한 교과서로 쓰여졌다. 미디어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로 학부 3, 4학년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광범위한 학문적 지식을 전달하면서도 가급적 이해하기 용이한 글쓰기 방식으로 쓰고자 하였다. 대학 교재로서 학부 학생들이 본 저서의 1차적 타깃이 되지만, 미디어 산업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일반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현재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4차 산업혁명의 담론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라면 누구에게도 본 저서가 유용할 것이다.
끝으로 본 저서가 나오기까지 기여해 준 많은 분들께 감사를 전한다. 특히 수업 시간을 통해 좋은 질문과 피드백으로 본 연구에 기여해준 한양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생들에게 일차적인 감사를 전한다. 또 본 연구가 좋은 책으로 나오기까지 애써 준 박영사 기획, 출판 부서 담당자 분들께 심심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2021년 한양 동산에서
학계에서 순수 학문적 전통 아래 영상 산업을 이론화하고 방법을 개발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되어, 이제는 현실 정책 과정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다.
현실 정책의 관심으로 촉발이 되었지만, 학계나 업계 모두를 위해 보다 체계적인 영상 산업의 이해가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이 책의 두 번째 집필 동기가 되었다. 물론, 무엇보다 후학 양성을 위한 지침서를 만든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 책 기획의 첫 번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