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거기가 보리수나무 밑인 양 단꿈을 꾸었다. 꿈에 취해 정신없이 자판을 두들기기도 하고 혼자 웃기도 하고 혼자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그 인생에 가슴 쓰라려 하다가 몸이 아프기까지 하였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고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다. 헐떡거리며 올라가 문을 닫고 나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다른 인생이 펼쳐져 나를 사로잡았다.
언젠가 강연 뒤 작가가 되어서 좋은 점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나는 무엇보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인생에 들어가 볼 수 있다는 점이라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자잘한 일상은 갖은 볼일과 관계를 내세우며 다른 인생을 기웃거리는 나를 수시로 방해한다. 그러나 지난겨울 그 작업실에 들어간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작업실 속의 인생은 온전히 또 다른 삶으로서 나를 도취케 하였다. 대학 시절, 노상 보들레르의 시구를 입에 달고 살았었다. '...취하여라. 술에건, 일에건, 예술에건...'
글쓰기는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수단입니다. 특히 여러분이 중년의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면 자신을 알고 삶의 의미를 찾고 싶다는 욕구가 매우 클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중년의 고비를 넘어 뒤돌아보니 자신의 인생이 영롱하게 빛나기는 하지만 낱낱의 구슬로 흩어져 종잡을 수 없는 느낌이 든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빛나는 구슬을 꿰어, 보기에도 만족스러운 목걸이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자서전 쓰기는 글쓰기와 자신을 되돌아보기, 이 두가지를 겸하고 있습니다. 자서전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책을 만든다는 목적에 더하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그 의미를 캐내는 일인 것입니다.
나는 교사가 되고 비로소 우리 현대사를 공부했다. 뒤늦게 알게 된 대한제국 말엽부터 해방 정국까지 한국사는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제대로 된 우리 역사를 모른 채로 살아왔다는 사실이 억울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었다. 때문에 학창 시절 은사님을 뵈었을 때 항의했었다. “왜 우리에게 이런 걸 안 가르쳐주셨어요?” 교수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셨다. “우리도 배운 적이 없었는걸.” 하여 내가 알고 있는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싶다, 남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욕구가 나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만들었었다. 그 와중에 접한 인물들 중 우장춘이 가장 감동적이었다. 주어진 인생 조건을 고스란히 긍정하고 최선을 다해, 성의를 다해 살아간다는 덕목에 비추어볼 때 우장춘은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