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PC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가시화되기 시작한 디지털 혁명이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까지의 변화도 놀랍지만 닥쳐올 미래의 변화는 더욱더 놀라울 듯하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에서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있으면 골치가 아프다.
근대문학은 인쇄술에 기반한 예술이었다. 영화나 TV가 등장한 이후에도 문학은 한동안 영상 예술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디지털 매체를 바탕으로 한 영상 예술은 이미 기존의 문학을 모두 흡수하고도 남을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인쇄술에 기반한 근대문학을 배우고 이를 업으로 삼아온 나로선 새삼 위기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탈근대문학을 적극적으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인간·언어·예술’로 요약할 수 있는 전통적인 문학 개념은 이제 주체인 인간의 자리에 AI를 놓을 것이냐 말 것이냐부터 다시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이 시집은 이렇듯 복잡한 시대적 상황과 개인적인 고민의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것이 투항은 아니다.
진즉에 영화를 만들거나 영화판으로 가고 싶은 유혹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용기가 없었다. 문학에 대한 시대착오적인 정조 관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이 시집은 영화에 대한 지난날의 내 꿈을 대신하는 작은 결과물일 수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시를 읽어내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었다. 배우 하나하나가 음유시인으로 보이는 놀라운 경험이 그곳에 있었다.
배우나 시인이나 대부분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배우 고 강수연 씨가 언젠가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한 말은 배우뿐만이 아니라 시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아니, 시인에게 더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른다. 백프로 공감했다. 이 시집의 시들은 어쩌면 그 말을 듣게 된 순간부터 쓰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강수연에 대한 헌정 시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