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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소설
국내저자 > 번역

이름:하창수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최근작
2024년 1월 <상처 받지 않는 나 나의 길을 걷는 나>

뚝,

나는 이따금 농담을 빙자해 허를 찔렀다. “천국과 지옥 중 한 곳을 체험할 수 있는 티켓이 손에 들어온다면 어느 곳으로 가고 싶습니까”나 “노아의 방주에 소설가 한 사람을 태운다면 누구를 태웠으면 좋겠습니까”는 그런 종류의 질문이었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왜 무책임한 행동을 하면 안 됩니까”나 “삶과 죽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삶과 죽음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까”와 같은 것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지만 풀지 못했던, 철학서 한 권을 샅샅이 뒤져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 수수께끼였다. 녹음기를 챙겨들고 1년 남짓 만에 다시 찾은 감성마을은 새로운 계절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는 120여 개의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들이 적힌 노트를 펼쳤고, 질문의 창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뜨거워진 열기를 식히기 위해 가끔 마당으로 나가 계곡을 타고 내려온 서늘한 바람을 쐬곤 했다. 그리고 산버들 가지 사이로 달빛이 교교히 떨어지던 밤, 나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습니까” 당신의 긴 머리칼이 바람결에 흩날렸고, 나뭇잎 한 장이 툭, 떨어졌다.

라면에 관한 알쓸신잡

라면은 한국의 대중으로부터 사랑받는 음식이다. 대부분의 기호품이 그렇듯 라면은 강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다. 끊으면 금단 증세까지 유발시키는. 단일 식품으로 라면만큼 다양한 제품이 출시되는 경우도 드물다. 또한 지난 해 라면 수출이 30%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나 사드 배치로 중국과의 무역이 급전직하로 떨어지는 와중에 유독 라면만은 예년의 두 배나 수출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 라면’의 현재적 위상을 말해준다. 이 위상이 만약 상업적 수치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라면을 인문학적 차원에서 다룬다는 게 ‘개 발에 편자’를 달아주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라면이 인문학적으로 다룰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무엇’이란 것은,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라면을 생산하는 기업들이 ? 농심, 삼양, 오뚜기, 팔도 같은 ? 가진 문화적 프라이드가 그 하나고, 라면의 소비자인 한국인이 가진 라면에 대한 애정과 관심의 밀도가 또 다른 하나다. 다른 무엇보다도, 라면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객관적 시각을 가졌던 문학 평론가 김현의 글 「라면 문화 생각」의 마지막 부분들은, 라면을 더 깊이 궁리해 보도록 독려한다. ― 하창수, 프롤로그 중에서

미로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간 위에서 일어나고, 어느 한 지점에서 우뚝 멈춰버린다. 그 멈춤을 우리는 죽음이라 말한다. 이 생각은 과연 옳을까? 죽음은 삶의 끝일까?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죽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답은 없다. 명확한 답은커녕 비슷한 답조차 찾기 어렵다. 시간과 죽음은 아무리 궁리해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다. 분명히 꿈을 꾸었는데, 꾸었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증명해낼 수가 없다. 그것은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물, 꺾으려 해도 꺾이지 않는 바람,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미로와 같다. 소설 『미로』는 시간과 죽음이 만들어놓은 출구 없는 미로 속으로 들어간, ‘미로’라는 이름을 가진 스물다섯 살 청년의 이야기다.

바람 속으로

『바람 속으로』는 세상에는 ‘대학’과 ‘사회’만이 아닌 다른 공간이 존재하며, 그 공간을 경험하는 일이야말로 삶을 진정 참되게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그 공간으로 떠났던 제이크 듀시라는 어느 스무 살 청년의 아름답고 놀라운 경험담이다. 그는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단 한 페이지만을 읽을 뿐”이라 했던,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며 『참회록』의 저자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의 충고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 젊은이였으며, ‘세계’라는 책을 아주 성실하게 읽어낸 훌륭한 독서가였다.

발견되지 않는 소설가의 생활

연두빛 신록 위로 새소리 눈부시다. 뒤돌아볼 줄 모르는 삶은 저 홀로 잘도 간다. 오늘도 난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우주의 온갖 잡다한 기운들을 자판으로 끌어와, 타닥타닥, 백색의 모니터 위로 쳐넘긴다. 영락없는 ‘히키코모리’다. 저주받은 ‘은둔형외토리’다. 그러나 행복하다.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난 이 자리를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것이다. 불행과 불운, 낭패와 질시, 가난과 절망이 뒤섞여 어떻게 환희의 순간이 탄생하는지를 보여줄 이 기적의 공간을, 어찌 함부로 내어준단 말인가!

봄을 잃다

“사랑은 당신이 발견하는 뭔가가 아니라, 당신을 발견하는 무엇(Love isn’t something you find. Love is something that finds you)”이라 했던 명배우 로레타 영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소설 속 중년의 남자가 발견한 것이 만약 ‘그 자신’이었다면, 그는 사랑을 잃은 것이 아니라 얻은 것이다. 그가 부럽다.

팔꿈치 세 번 부러뜨려보지 못한 의사는 모두 돌팔이다

인생이 고통의 바다[苦海]이거늘, 고통을 모르고는 고통을 당하는 자를 이해할 수도, 치유할 수도 없다.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사람은 그를 아프게 하기 위해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그를 아프게 하는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파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다. // 만약 위정자가 그 나라를 아프게 한다면, 그 또한 아파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위정자에게는 아무리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로 하여금 스스로 팔꿈치를 부러뜨려 보도록 해야 한다. 아니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의 팔꿈치를 부러뜨려야 한다. 그래서 “아, 이렇게 아픈 것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한다. // 외롭고 아득한 시절이다. 21세기도 10년이나 지났는데…….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1

부와 명성 그리고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좇는 군상은, 피츠제럴드가 열세 살(1909)에 첫 단편을 발표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마흔네 살(1940)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발표한 16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 전체를 가늠하는 데도 유효한 기준이 될 만큼 피츠제럴드 문학의 중요한 소재일 뿐 아니라 주제이기도 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2

부와 명성 그리고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좇는 군상은, 피츠제럴드가 열세 살(1909)에 첫 단편을 발표해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마흔네 살(1940) 아까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발표한 16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 전체를 가늠하는 데도 유효한 기준이 될 만큼 피츠제럴드 문학의 중요한 소재일 뿐 아니라 주제이기도 했다.

행복한 그림책

사실 모든 예술은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온갖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 자유로운 넘나듦은 초월적 세계 인식이라는 바탕을 깔고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며, 역설적이게도 그 열린 상상력이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게 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게 만든다. 물론 모든 예술이 이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고 말한다면 그건 분명 억설이다. 어쩌면 뛰어난 상상력을 발휘하는 아주 적은 양의 예술만이 현실을 각성시키고 그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지 모른다. 그 목록에 만화가 빠져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색과 선과 빛, 그리고 우주를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사고--이것은 행복한 예술의 세계가 지닌 위대한 질료들이다. 여기에 인생의 행복이 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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