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좋아서, 자유가 좋아서 15년의 신문사 기자 생활을 하루 아침에 그만두고 바람결에 실려 들꽃처럼 이 산하를 누비고 다닌다. 그러나 여행이 취미가 아니라 직업인만큼 늘 즐겁기만 하겠는가. 혼자서 1박 2일에 1천 km를 넘게 운전해야 하는 날도 있고, 아침 사 먹을 곳이 없어 여관방에서 컵라면을 끓여 먹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이번 주에는 어디를 소개할까 고민도 해야 하고, 원고마감에 밤새우고... 그래도 좋았다. 아직 이 땅에는 필자가 가 보아야 할 곳이 너무도 많기에.
사계절이 있어 철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우리 산하. 모름지기 여행작가라면 부지런히 다녀야 할 일이다. 이 작은 땅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비경과 그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이웃들의 참모습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일. 그것은 여행작가들에게 주어진 귀중한 책무이리라.
...필자는 작은 포구가 있는 바닷가 마을로 여행을 떠날 때마다 길 위에서 그 같은 상상도를 그렸다. 때로 포구는 바다를 잃어버려 한숨쉬었고 때로 고기떼가 사라져 마냥 낮잠만 잤다. 그래도 살아 봐야 했기에 포구 사람들은 새벽이면 어선을 바다로 몰면서 일출의 탄생을 지켜 보았고 저녁이면 포구로 기항하면서 내일의 또 다른 일출을 기약했다.
포구 기행은 그처럼 건강한 삶을 만나기 위한 방편이었다. 도시의 삶이 아무리 힘들다 해도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힘든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의 그을린 얼굴에서 여행자의 입장이었던 필자로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포구 사람들이 파도에 섞어 가면서 들려준 인고의 세월, 초장과 건네주던 한 접시의 오징어회, 피를 맑게 한다면서 기어이 입에 넣어 주던 미역귀... 그 하나하나가 이 순간에도 짝사랑 들키던 그날처럼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