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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최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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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영화와 가족>

나는 아팠고, 어른들은 나빴다

이토록 찬란하고 쓸쓸한 삶 속, 다양성 영화 나이가 들면 미래에 더 가까워질 것 같지만, 사실은 과거와 더 친밀해진다. 마음이 자꾸 쿵, 과거라는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데, 그게 제법 폭신폭신하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렇다.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내 삶을 기억해 보고, 등장인물들의 기억을 통해 다시 내 삶을 바라보는 낙하의 경험을 선물한다. 아주 보편적 정서를 담아내는 상업영화는 분명 아주 많은 사람들이 웃고, 즐기고, 소리치고, 환호하는 많은 것들을 담아내면서 신나는 재미를 준다. 상업영화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버스, 활주로 위를 신나게 달리는 비행기처럼 많은 사람을 싣고 목적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달린다. 하지만 다양성 영화는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샛길로 빠져 길을 잃은, 혹은 타야 할 비행기를 놓쳐 망연자실하게 멈춰 선 작은 사람들의 종종걸음을 바라본다. 지도를 읽는 법을 모르는 길치에게 주어진 화살표일 수도 있고, 삐뚤빼뚤하지만 꾹 눌러쓴 일기처럼 흔적을 남기는 것일 수도 있다. 특별하지 않은 나를 닮은 사람들이 나오는 아주 많은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들은 계속 깃발처럼 펄럭거린다. 매일 겪는 슬픔이 무겁고, 달라지지 않는 오늘이 지겹지만 계속 사람들은 펄럭인다. 그토록 사람들의 삶은 다채롭고 찬란해서 쓸쓸하다. 우리가 다양성 영화라 부르는 작고 내밀한 영화들은 작정 없이 시시한 삶을 무시하는 법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자라나는 일 역시 그냥 남다르지 않은 일상이라며 다독거리며 별 볼 일 없는 우리의 시간을 기억해 준다. 2020년,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으로 삶이 휘청이다 못해 멈춰 버린 자리에서 사람들은 모두 월컹대는 시간 속에 있다. 먼 훗날 역사는 올해를 전세계적인 전염병으로 몇 명이 감염되고 몇 명이 죽었는지 숫자로 기록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동 속을 겪는 우리의 삶은 누가 기억해 줄까? 역사는 성수대교가 무너졌던 1994년을 32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벌새>는 32명 중의 한 명으로 영지라는 대학생을 영화 속으로 불러들여 그 잔잔하고 값진 삶을 기억한다. 다양성 영화는 그렇게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작은 마음들을 위로한다. 여기에 담긴 24편의 영화는 미세하게 다른, 보편적 정서를 지니지 않은 거친 마음들을 기억하는 영화들이다. 그렇게 내게 작은 영화란 나에게만 속삭이는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지는 않는 말. 멍 자국 위를 꾹 누르는 나쁜 손. 맨살에 입은 거친 옷. 로션 안 바르고 나온 날 맞은 찬 바람. 하여 더 아프고 더 지쳐 주저앉은 뒤에서, 그럼에도 살아 보자고 등짝을 빵 차 주는 그런 것이다. 하여 마냥 선량하지는 않은 것. 마냥 지 얘기만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를 위한 말 한마디는 지닌 무뚝뚝한 친구 같은 것이다. 이 책은 무겁게 영화를 평가하거나 분석하는 비평집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얻은 감각으로 써 내려간 에세이다. 어쩌면 모래알처럼 작지만, 또 볕을 곁에 두어 반짝이는 우리 삶을 닮은 영화 24편을 통해 해졌지만 소중한 우리의 시간을 다시 토닥여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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