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여름처럼 무덥고 지루한 시절이 있었을까? 냉방기의 도움 없이는 한 시도 지낼 수 없는 시간이었다. 몸과 마음이 후끈 달아오른 것은 꼭 기후 탓만은 아니었다. 오래전에 써놓은 원고들을 꺼내 보니 원고지는 누렇게 변색하였고 갈피마다 묵은내가 진동했다. 글을 쓰고 싶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썼던 그 시절, 습작의 부피가 클수록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라 생각했다.
책을 엮기 위해 막상 보따리를 풀어보니 건질 게 별로 없었다. 분명 글을 쓸 당시에는 작은 성취감을 맛보며 완성했던 작품이다. 훗날에 다시 읽어보니 세상에 내놓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시의성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발표할 때를 놓친 것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한물간 글처럼 보일까 여러 날 고민했다. 그래도 고칠 부분은 고치면서 리폼을 해봤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십 년 이십 년 전의 옷을 꺼내놓고 재질이 좋다고 아까워하며 밤새 가위질과 박음질을 한다고 신상품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한 형태의 옷이 나와서 그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칠수록 글이 꼬여서 기이했다.
처음으로 돌아갔다. 단순해지기로 했다. 글을 쓸 당시의 사고방식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러자 순조롭게 글이 풀렸다. 글에도 운명이라는 게 있다. 고집이라는 게 있다. 팔자를 고쳐보겠다고 팔을 잡아끌어도 꼬이기만 했다. 나중에 의도한 대로 끌어당긴다고 해서 끌려오는 게 아니었다.
여름 내내 억지로 힘을 주며 어찌어찌 해보려고 진땀을 꽤나 흘렸지만, 이미 타고난 내 소설들을 그대로 내보내기로 했다. 못생겨도 내가 낳은 자식들인데 어찌 예뻐하지 않을까. 세상 속으로 나아가 누군가의 가슴에 공감하는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