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잎이 물들고 있습니다. 징검다리를 건너 하나둘 내게로 오는 중입니다.
<세경본풀이>를 읽었던 봄에는 자청비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무작정 걷기만 했습니다. 숲은 흥미롭고 아름다웠지만 낯선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했습니다. 몇 번이고 걷다 보니 <지장본풀이>에서 지장아기씨를 만나고, <삼달리본향당본풀이>에서 황서국서어모장군도 만났습니다.
초록의 여름, 무성한 잎들이 나무를 에워싸 하늘을 가리는 계절이었습니다. 숲이 창을 닫았습니다. 온전히 숲의 시간, 제주신화에 빠져 자청비의 행동을 이해하고, 지장아기씨의 슬픔을 알게 되었습니다. 야자수매트는 편히 걸으라고 길을 안내해 주었습니다만, 돌부리가 솟아난 부분을 일부러 골라 걸었습니다. 돌부리에 차여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지만, 내가 밟은 돌부리가 다음 문맥의 징검돌이 되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듬성듬성, 띄엄띄엄 놓았던 때문일까요? 나의 징검다리는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비판인지 비난인지 모를 힐책으로 논문 심사장은 채워졌습니다. 꼭 두 해 전 오늘, 박사학위 청구 불합격의 날이었습니다. 그 겨울은 참 길었습니다.
어김없이 때죽나무는 하얀 종을 떼로 매달아 놓았습니다. 아기의 돌잔치, 아버지의 첫 제사를 치르듯 친구들 앞에서 일 년 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여름이 가고 겨울이 가는 동안 많은 손길이 상처를 어루만져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종낭의 종소리가 숲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먼지 쌓인 논문을 꺼내어 보니 모자란 것투성이지만, 징검돌 하나하나를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울퉁불퉁 튀어나온 돌부리들은 이해할 수 없는 환상의 세계 이전에 사람의 길로 이어져 있음이 분명하였습니다. 〈세경본풀이〉의 자청비는 제주의 거친 밭이었습니다. 왜 자청비가 그토록 문도령을 위해 고군분투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문도령은 밭에 뿌려질 귀한 씨앗이었으니까요. 자청비를 괴롭히는 종놈, 정수남이는 밭을 일구도록 도와주는 마소였습니다. 이 셋은 없어서는 안 될 삶의 그릇, 문도령과 자청비와 정수남이가 하나로 어깨동무할 때 밥상은 풍요로워졌습니다. 그래서 <세경본풀이>는 상세경, 중세경, 하세경을 농경의 신으로 모셨던 겁니다.
문화소, 돌부리를 다듬어 만든 징검돌을 이 글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맨 처음 박사학위청구논문의 제목도 ‘문화소 중심 해석을 통한 신화교육 연구’였습니다. 신화는 인간의 문화질서를 신의 서사로 드러낸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마땅히 신의 서사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문화를 찾아보는 일이 필요했습니다. 숲에 놓여 있던 삐죽삐죽한 비문법적인 문맥, 아무 생각 없이 걸을 땐 몰랐지만 문화소임을 인식하고 바라보니 현실의 문화행위를 암시함을 알았습니다.
2022년의 여름, 뜨거웠지만 제주신화의 숲을 친구와 거니는 행복을 누렸습니다. 야자수매트 길을 걸으며, 숲의 돌멩이를 느끼며, 한 마디 두 마디 새롭게 쓸 수 있었습니다. 동행한 친구의 딸이 그림도 그려 주었습니다. 제주를 떠났던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고, 고향에 살던 이들도 심연의 고향을 찾고 싶어지는 가을, 오십 대의 시간이 흘러가는 중입니다. 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함께 징검다리를 만들어준 김미영과 신지민 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름다운 표지로 책의 품격을 높여주신 부순영 님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문화소의 길로 이끌어주신 스승 송문석 박사님께 큰 감사를 드립니다. 인생의 숲을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이현미, 고성효 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 모든 처음과 끝을 함께해주어 고맙습니다. 따뜻한 마음으로 책을 만들어주신 한그루의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사이 숲에도 겨울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