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책》은 제가 평소 번역하는 책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우선 저 멀리 라트비아에서 와 준 책이라는 점이 그렇습니다. 시를 쓴 유리스 크론베르그스와 그림을 그린 아네테 멜레체도 라트비아 사람입니다. 라트비아어를 영어로 번역한 책으로 제가 다시 우리말로 옮겨야 했습니다. 영어로 만난 작품이었지만, 여느 영미 문화권 작품들과는 글과 그림의 결이 사뭇 다릅니다.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난 것처럼 새롭고 낯선 책입니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줄곧 구름을 따라 떠다니는 기분이 들 거예요. 어떤 뚜렷한 서사가 있는 책은 아닙니다. 전문적인 기상학 이론으로 구름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구름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구름의 이모저모를 다정하게 알려줍니다. 몽상가들이 사랑하는 구름. 이 구름을 주제로 시적 상상력을 한껏 펼쳐 낸 라트비아의 작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구름을 사랑하세요, 순간을 사랑하세요, 삶을 사랑하세요.” ………
저 멀리 라트비아에서 구름처럼 다가온 이 책은 그래서 특별하고 귀한 책으로 마음에 남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마음으로 예술가의 감성과 철학자의 사색을 담아 낸 구름 예찬 그림책 《구름책》을 만나 보세요. 당장 오늘 하늘과 구름부터 경이로운 눈빛으로 올려다보게 되겠지요!
늘 똑같을 거라 믿었던 사람도, 세상도 어느 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가졌던 모든 것들이 나를 지켜 주지 못할 때, 그 외롭고 막막한 기분을 어떻게 헤쳐 갈 것인가? 여기 이 책의 한 소녀는 지금 소녀이거나 예전에 소녀였던 당신 자신이다. 스스로를 늘 부족하다고 여기지만, 냉혹한 현실에서도 자신만의 순수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소녀들. 그 소녀들에게 <구스 걸>은 특별한 판타지를 선사한다.
우리는 드라마 속 풍경처럼 애초부터 밀착되어 뜨거운 사랑을 나누며 살지 않는다. 나 하나라고, 사랑이 부족하다고, 꿈이 없다고 느끼며 살아간다. 그러다가 어떤 일이 생기면 벗어나고 싶다. 나를 붙잡는 그 무엇도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을 떠나면 그 ‘집’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집’을 떠나야 내게 ‘집’이 있음을, 돌아갈 곳이 있음을 알게 된다. 《깡통나무》 속의 사람들 모두 그 아픈 과정을 통해 서로를 얻는다. 처음에는 우울 속에서 따라가는 길이 고달팠지만, 저만치 가보니 어느덧 소통과 따뜻함에 휩싸이게 됐다. 그것이 작가 앤 타일러 고유의 장기이며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란 생각이 든다. 인생은 분명하고 뜨거운 게 아니다. 애매하고 미지근하지만 뚜벅뚜벅 걷고 견디다 보면 거기서 진정한 자신을, 우리가 이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런 걸 이 소설에서 배웠다.
소설 같은 회고록. 소설보다 소설 같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칼끝이 폐부를 파고들 듯 날카롭고 아리게 펼쳐진다. 뉴욕 한 가운데서 만나 9주 반 동안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관계에 몰입했던 여자. 그녀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마음 한켠으로 꿈꾸는 쌉쌀한 초콜릿 맛 같은 관계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게 된다. 자아를 외면한 탐미적인 쾌락의 끝이 가슴 서늘하게 다가온다. 과연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소설 같은 회고록. 소설보다 소설 같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이야기가 칼끝이 폐부를 파고들 듯 날카롭고 아리게 펼쳐진다. 뉴욕 한 가운데서 만나 9주 반 동안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관계에 몰입했던 여자. 그녀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마음 한켠으로 꿈꾸는 쌉쌀한 초콜릿 맛 같은 관계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게 된다. 자아를 외면한 탐미적인 쾌락의 끝이 가슴 서늘하게 다가온다. 과연 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옮긴이의 말]
사랑하는 가족이 세상을 떠나면 슬프겠지요. 다시는 못 만나니까요.
사랑하는 강아지가 세상을 떠나면 슬프겠지요. 다시는 못 만나니까요.
하지만 작가 주디스 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요.
헨리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아내는 마음으로 남편을 다시 만납니다.
<누가 상상이나 할까요?>는 사랑으로 이 세상과 천국을 잇는 이야기입니다.
그림 속 할머니가 이토록 아름다운 여행을 하고 있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그는 빵장수입니다. 새벽을 기도로 열고, 빵집에서 성실하게 빵을 굽고 소박하게 살아갑니다. 마음에 고이는 생각을 글로 옮기기도 합니다. 어느날 우연히 단상을 적은 쪽지가 빵에 들어가서 그때부터 동네 사람들은 야곱에게 지혜를 구합니다. 야곱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여기 담겨 있습니다. 지혜, 무지, 빛, 침묵, 죽음. 그는 우리에게 중요한 것에 대해 간결하게 말해줍니다.
이것은 메이컨이라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여행을 싫어하는 그가 사랑을 찾아나서는, 본래의 자기 모습을 찾아나서는 이야기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이야기이다. 빗속에서 답답하고 건조하게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덧 촉촉하고 풍성해지다가, 신선하고 따뜻한 결말을 맺는다. - 공경희 (옮긴이)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고운 그림과 따스한 이야기를 선사하는 작가, 마르쿠스 피스터! 그의 신작 《은빛 까마귀》의 주인공, ‘꼬맹이’가 전해 준 감동으로 여태 가슴이 뭉클하다. 가장 작고 약하지만, 누구보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은빛 깃털을 얻게 된 꼬맹이는 또래보다 작아서, 혹은 남과는 조금 달라서 소외받고 상처받는 아이들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 20대 중반의 청년 이반 오소킨. 학교 벽에 낙서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하고 독학했던 작가가 투영된 듯, 기숙학교에서 동상에 안경을 씌우고 벽에 낙서하는 장난으로 퇴학당한 후 군사학교에 들어가지만 자리를 잡지 못한 처지다. 연인마저 크림반도로 휴가를 떠난 후 결혼 소식이 들려오자, 오소킨은 마법사를 찾아가 이 모든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시간을 돌리면 그는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인생에 성공해 사랑하는 여자를 얻을 수 있을까? 마법사는 오소킨에게 원하는 시절로 보내 줄 수 있지만, 다시 살아 본들 같은 결과를 얻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소킨은 다른 삶을 살 것이라고 장담하면서 기숙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다시 살기 시작한다. 과연 그 다시 사는 삶은 어떨까? 소설은 퍼즐을 맞추듯 이반 오소킨의 삶을 찬찬히 펼치고, 나는 그의 시간 여행을 함께 하면서 결국 ‘내가 오소킨이었다면?’이라는 생각에 빠져들었다.
오소킨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어리석게 굴 때, 자신과 삶에 대한 믿음이 없을 때 내 분신인 듯 그를 타박했지만 그것이 내 삶이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 여행의 끝에서 생각해 본다. 꼭 물리적으로 젊은 시절로, 어린 시절로 돌아가야만 가능한가? 지금 여기서 다시 여정을 시작할 수는 없는 걸까? 번역 작업이 진행될수록 나는 우스펜스키가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라는 질문에서 놓여났다. 그저 그가 ‘그대들은 주어진 시간을, 인생을 어떻게 할 셈인가? 이반 오소킨이 되어 한 번 생각해 보지.’라고 권하는 것 같았다.
‘지금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과거로 돌아가도 똑같은 삶을 살 것이다. 설령 모든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달라져야 하며, 단지 그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을 바쳐 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러시아의 신비주의자 우스펜스키가 오늘의 우리에게 보낸 메시지가 아닐까.
몸과 마음이 훌쩍 자라는 데는 성장통이라는 아픔이 따른다. 그것은 어른이 되기 위해 꼭 거치는 통과 의례다. 그 혼란스럽고 힘든 과정을 곁에서 함께 해줄 마음 통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것은 큰 행운이다. (······) 또 온 동네 사람이 목화밭에 서서 무당벌레를 날리는 무당벌레 왈츠는 이방인인 재커리를 받아들여 하나 됨을 경험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마음 찡한 대목을 옮기면서 눈물이 났다. 토비와 칼과 재커리가 내 친구들이 된 것 같았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매 장마다 카드 한 장씩 받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경험하지 못했으나 마음 깊은 곳에 깃든 세계로 오라는 초대장을 받은 것 같았다. 쭉 읽기보다는 기분에 따라 마음에 드는 그림을 펼쳐서 밑에 적힌 글귀를 읽으며, 거기 담긴 삶에 대한 통찰과 그림이 표현하는 아름다운 세상에 푹 빠져 보기 바란다. 『타샤의 기쁨』은 그 풍족한 설렘으로 부르는 초대장이다.
매혹적인 정경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삶의 이야기가 사진과 글로 담긴 책을 번역하면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연신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타샤가 키우는 여러 종류의 튤립들이 색의 향연을 펼칠 때, 혹은 돌능금나무에 붉은 열매가 가지가 늘어지도록 주렁주렁 열렸을 때, 아니면 눈이 쌓인 조용한 겨울날 불쑥 찾아가보고 싶은 곳이다. 타샤가 벽난로 앞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맛있는 파이와 향 좋은 차를 대접해주면 참 좋겠다. 그런 달콤한 꿈을 꿀 수 있는 책이어서 번역 작업 내내 설레었다. 행복을 만끽한 이 작품은 두고두고 못 잊을 것 같다.
번역 작업을 하다 보면 소설 작품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온다. 어떤 소설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중점적으로 강하게 느껴지고, 어떤 작품은 인물들의 관계와 사연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 책을 옮기는 내내 나도 모르게 ‘풍경’을 그리게 됐다. 우선 에머슨 부인의 집이 있는 오래된 동네의 풍경이 떠올랐다. 부인의 외모와 생활을 표현하는 대목마저도 내게는 ‘그녀의 풍경’으로 다가왔다. 에머슨 부인, 엘리자베스, 티모시, 매튜의 각기 다른 삶의 풍경이 때로는 어우러지고 때로는 어긋나면서 이야기가 흘러갔다. 그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따라가면, 을씨년스럽고 외로운 풍경 가운데 작은 불이 지펴지고, 마음을 나누고 오해하다가 절망하고 이별하지만, 또 이어지는 풍경이 흑백 사진의 연작처럼 펼쳐졌다. 에머슨 부인과 사연 많고 외로운 일곱 자녀가 엘리자베스를 중심으로 소통과 사랑을 나누는 소설 전체가 한 권의 무채색 사진첩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