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죽을 날을 잡고 정말로 그 날에 죽는 고승들의 에피소드가 전해지는데, 일상을 살아 온 평범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죽을 때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 순간을 알 수 있다면 정말 적극적으로 죽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아 보인다. 잘 생각해보면 나는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살아 있는 시간이 모두 죽어가는 순간이고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영원히 살면 좋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죽는다. 얼마 전에 법정스님이 돌아가셨는데, 유언은 미리 써두었고, 죽고 난 후 처리할 일들까지 모두 제자에게 알려두었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살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에 대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은 아무래도 더 관대하고 용기 있고 정의롭고 생명력에 넘칠 것 같다. 그것이 언젠가는 자신에게 오리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그를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다. 자칫 잃어버리기 쉬운 죽음의 감수성을 되살리는데 큰 힘이 되어 줄 후지와라 신야의 사진과 짧지만 강렬한 언어가 있다. 우리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고 살아가는 힘을 북돋아 줄 생명의 바람과 같은 장면이 갈피마다 약동한다. 20년 전, 처음 그의 사진과 글을 만났을 때 그 느낌이 되살아나 다시 젊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