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자』는 30여 년 전 작가 자신의 불법 임신중절 수술 경험을 다룬 『사건』을 쓸 수 있도록 이끈 ‘사건’을 다룬 텍스트로 이해할 수 있으며, 『세월』에서 몇 페이지에 걸쳐 언급한 이야기의 확장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기억과 시간, 사랑과 글쓰기에 대한 아니 에르노 문학의 핵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텍스트가 ㅤㅉㅏㄻ은 만큼 그 밀도 또한 대단히 높다.
우리가 아니 에르노를 읽는 이유는 작품 속 인물을 하찮은 가십거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한 독특한 글쓰기를 통해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데 있다. 더군다나 작가에게 이 ‘젊은 남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느’처럼 기억의 전달자이니, 우리 역시 텍스트 안에서의 ‘젊은 남자’가 맡은 역할을 이야기하는 것이 독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자신이 사는 현대사회를 끊임없이 관찰하며 사회 제반 현상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델핀 드 비강의 작품들은 ‘소설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오래전 스탕달의 정의가 여전히 유효함을 증명해 보인다. 더불어 작가는 소설의 존재 이유가 독자를 위로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사회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통스러울지라도, 상처 난 곳이 더 잘 보이게끔 펼쳐 보여주는 것이 델핀 드 비강의 글쓰기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현상을 정확하게 그려내려 할 뿐, 판단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의 심리에 치중하기보다, 그들의 약점이나 문제들을 보여주는데 주의를 기울인다. 해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함께 그 사건에 대해 고민하며 각자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볼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어쩌면 이러한 점에서, 익숙한 결말을 드러내지 않는 델핀 드 비강의 소설이 독자들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