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디에도 없고
세상의 꽃들은 아무 데서나 피어 있다.
헤어지기 위해 애써 만나는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 바보가 되어
아픈 꿈을 꾸고
멈출 수 없는 노래가
슬픈 별이 되기까지
함께 걸었다.
너는 자주 울고
나는 마른 나뭇가지가 되어 애를 태운 채
마른 숲을 지나
한적한 호수에 이르렀을 때,
마침 제 설움을 못 이겨 혀를 깨물고 자지러지던
노을을 가리키며
너는 울부짖었다.
“니가 날 죽였어!”
그리고 떠났다.
늦었지만, 오늘 꽃치자를 심었다.
시의 길목에서 허둥대며 찾은 길이 목구멍이었으므로 남들처럼 살아왔다.
밥그릇을 놓칠까 전전긍긍 하면서도 그 속에서 미치도록 그리운 것이 숨어 있어서 시의 미아처럼 떠돌던 자신을 발견한 것은 그해 겨울, 들판 한가운데 외로이 서서 눈을 맞는 한 그루 미루나무였다.
그리고 시의 문고리를 다시 잡았다.
시의 뿌리가 썩지 않도록 나를 이끈 것은 외조모의 사랑이었다.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을 구름 속으로 들어가신 외조모께 바친다.
날 것 같다.
여기 불려나온 시들은
나의 자학과 회한과 불화의 자화상이다.
늦었으니까
시가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절망할 사이도 없이
그날, 눈길 위의 각혈을 끝내 잊을 수 없어서
우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오늘 아침,
오디나무 가지에 손을 얹고 서서 먼 모후산을 바라보았다.
한 마리 산새가 고요히 나의 어깨 위로 내려와
함께 바라보았다.
2019년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