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분당에서 30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강산이 세 번이나 변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분당으로 이사 간 지 10여 년이 지나자 저의 집 어깨 근처라고 할 정도로 가까이에 분당선 이매역이 생겼습니다. 2016년에는 경강선 환승역이 개통됐고 판교와 여주를 오가고 있습니다. 아파트 주방 창으로 보이는 5번 출구 안내표지판은 한밤중에도 노란색으로 저와 눈을 맞추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집 허리춤이라 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GTX-A 역 중의 하나가 문을 열어, 저를 멀리 편하게 다니라며, 그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이는 땅속에서 일어난 변화였고, 지상에서도 그만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다른 하나.
탄천은 경기도 용인의 법화산에서 발원하여 구불구불 내려오며,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을 지나고, 마침내 올림픽주경기장을 끼고 나가 한강으로 들어갑니다. 아주 먼 옛날 삼천갑자 동방삭이 이곳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저승사자가 이 하천에 와서 숯(炭)을 빨았구요. 어떤 사람이 와서 그 까닭을 묻자 저승사자는 이렇게 말했다나요.
“검은 숯을 희게 하려고 이렇게 씻고 있다오.”
이 말을 들은 사람, 허리를 잡고 윗몸을 앞뒤로 빠르게 뒤틀면서 크게 웃었구요.
“나,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빨아 하얗게 만든다는, 너 같은 우둔한 자는 처음 보는구나.”
그렇게 그만 동방삭은 저승사자에게 잡혀갔답니다.
저는 동방삭을 좋아합니다. 그가 오래 살아서가 아닙니다. 삼천갑자, 십팔만 년을 살았어도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의 약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탄천을 자주 걸으면서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 민낯을 생각하곤 합니다. 저는 이런 사람을 좋아합니다.
이 책에 실린 글.
청하 성기조 선생은 제 생애에서 큰 스승이셨습니다. 만남은 5년 정도이지만 제 글을 한 편 한 편 읽고 지적하고 격려하며 다듬어주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도 하셨구요.
“글을 쓰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해.”
안타깝게도 청하 선생은 작년에 저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끌어 준 글들은 계간지 《수필시대》와 《문예운동》에 꼬박꼬박 실렸습니다. 청하 선생님 그리고 제 글을 믿고 게재해 준 계간지 주간 두 분,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한 고마움으로 남았습니다. 여전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에게도 인사드립니다.
감사하고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