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 표지에는 대개 짤막한 글을 썼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 글을 ‘시’라고도 불렀지만, 제게는 그야말로 ‘단상’이었습니다. 짧은 생각들이었지요. 제게 ‘시’는 아득한 세계입니다. ‘시(詩)’라는 말은 ‘말씀 언(言)’과 ‘절 사(寺)’가 합해진 말로, ‘사원의 언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소란스러운 시장의 언어와는 달리 침묵을 지향하는 언어라는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제게 ‘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온갖 군더더기를 버리고 ‘대번’ 혹은 ‘마침내’ 본질에 닿은 자만이 말할 수 있는 노래 말이지요. 그러니 까마득할 수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