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고록은 재회 이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결혼이 남녀관계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시작이듯 입양인의 원가족 찾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애타게 찾아 헤매던 원과족과의 눈물겨운 상봉으로 종결되는 기존의 입양인 서사가 어쩌면 허구일 수 있으며, 재회는 원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을 조심스레 알아 가고 그 들과 신뢰를 쌓아 나가는 세심한 과정이 필요한 과정임을 알게 된다. 니콜 정은 결코 용서와 화해라는 정해진 수순을 향해 강박적으로 돌진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양가감정과 생물학적 가족의 감정을 섣불리 단순화하는 대신, 자기 자신과 그들의 복잡하고 자연스러운 감정과 처지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회의하고 상상하려 애쓴다. 그리고 거기에는 늘 따뜻한 공감과, 상대의 감정과 처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태도가 배어 있다. 이 책이 각별히 아름답고 품격 있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리라.
이 책을 번역하면서 나는, 어떤 글이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건 결국 그 글의 주인공들이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떤 고민과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가에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나 역시 살아오는 내내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과 ‘진실이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기 일쑤였다. 내가 모르면, 혹은 모르는 척하면 ‘없는 일’이라는, ‘지혜’의 외피를 뒤집어쓴 달콤하고 게으른 속삭임에 기대고 싶은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니콜 정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용기가 치유와 성장의 첫걸음이자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런 이름의 서점이 오랜 세월 동안 이처럼 훌륭한 작가들과 전 세계 독자가 만나는 가교가 되어 주고 있는 것도 얼마나 자연스럽게 느껴지는지. 그런데 부끄럽게도, 뒤에 붙은 〈컴퍼니〉라는 이름의 의미는 이번에 이 책을 번역하며 처음 알게 되었다. 막연히 회사 비슷한 뜻이리라 짐작했던 이 단어가 〈동료〉나 친구〉라는 뜻에 가까운 말이라는 사실을. 출판업이 서적 판매업자 외에도 작가, 출판업자 등의 협업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말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도 출판업은 일종의 코뮌처럼 협동체로 운영되었다. 알고 보니 번역가인 나 역시 바로 이 〈컴퍼니〉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동료라니,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1백 명인들 그걸 읽어 주는 독자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랴. 지금 이 책을 집어 든, 우리 평범한 독자들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친구라 불러 마땅할 테다. 이 책은 진열대에 이렇게 붙여 놓아야 할 것 같다. 〈스무 명의 이 시대의 작가 초청 이벤트! 셰익스피어의 친구들 누구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