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제목에서부터 막히고 말았다. ‘darkness’야 당연히 ‘어둠’으로 옮기면 되겠지만 ‘heart’는 어쩌면 좋단 말인가? ‘심연’으로 옮기는 게 가장 무난하고 문학적이겠으나 ‘심연’의 ‘연(淵)’이 ‘연못’을 뜻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heart of darkness’는 작품의 주요 배경을 이루는 ‘콩고 내륙의 빽빽한 초목’을 가리키는 동시에 ‘인간의 광기’, 즉 물리적 영역과 심리적 영역을 모두 가리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숲의 북소리는 ‘심장 소리’와 공명하면서 작품 내내 울려 퍼지고, 마지막에 가서는 “정복자 어둠의 심장박동”까지 언급된다. ‘heart’가 글자 그대로 ‘심장’의 뜻으로도 사용되는 것이다.
《어둠의 심장》을 다 읽은 후 지금도 마음속에, 아니 귓가에 남아 있는 것은 한밤중에 쿵, 쿵 고동치며 들려오는 저 아프리카 숲의 어두운 심장 소리다. 나는 아프리카 숲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실제로 들어본 적이 없지만 심장에 손을 가져간 뒤 눈을 감으면 자연히 그 북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자 ‘heart’를 ‘심장’ 말고 다른 단어로 옮기기란 불가능해졌다. 사실 우리말로는 ‘심장’보다는 ‘심장부’가 좀 더 자연스러운 역어일 것이다. 하지만 독자들이 책을 덮은 후에도 ‘어둠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게 해주기 위해서는 ‘어둠의 심장부’보다는 ‘어둠의 심장’이 훨씬 더 나아 보였다. 이런 이유 말고도 ‘어둠의 심장부’는 너무 설명적으로 들리는 반면, ‘어둠의 심장’은 좀 더 시적으로 들렸다. 한국어를 모르는 콘래드도 이런 선택에 분명 흡족해하리라 확신하며, 콘래드 사후 100주기를 기념하며 출간된 이번 판본을 통해 “인간의 입술 없이 강의 무거운 밤공기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듯한 이 이야기가 불러온 희미한 불안감”을 만끽하시길 바란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기본적으로 잡종, 그러니까 하이브리드다. 원관념과 보조관념이라는 말. 나는 그것이 처음부터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나는 그런 종류의 사고방식을 용인할 수 없다. 우리가 무언가로부터 다른 무언가를 떠올려 그것을 호출한다면, 그것들은 둘 다 동시에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다. 다른 하나가 나머지 하나의 그림자나 무의식 같은, 뭐 그런 게 된다기보다는. 이를테면 타이프라이터와 딱정벌레와 자동차와 철제 다리 보조기를 하고 걸어가는 사람을 하나로 놓기.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을 한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밀어 넣기. 그것들은 현실에서는 절대 한자리에 놓이지 않지만 글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흔히들 비유라고 부르는 방법을 통해. 섞이지 않는 것들을 섞인 것처럼 보이게끔 하기. 그래서 a도 b도 아닌 모호함, 어떤 열린 상태의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물론 거시적으로 보면 이 모든 게 너무나도 명징한 강박의 울타리 안이겠지만. - 에세이 「양육관羊肉串의 괴로움-동대문」
관상용 식물은 눈이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그리고 우리는 눈의 노예가 아니다
지하철에서 꽂고 있는 이어폰은 귀가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우리는 귀의 노예도 아니다
귀가 후 마시는 한 잔의 위스키는 코가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우리는 코의 노예도 아니다
진심을 다해 부르는 노래는 혀가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우리는 혀의 노예도 아니다
외로울 때 서로 살 비벼대는 일은 피부가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우리는 피부의 노예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는
마음이 없으면 필요 없어진다
우리는 마음의 노예까지도 아니다
나는 밤의 해변에 홀로 앉아
이 모든 것을 초자연적 3D 프린터로
백지 위에 고요히 출력해본다
2022년 8월
황유원
언젠가 이렇게 쓴 적이 있다. “존재는 소음으로 가득하다. 따라서 내 앞에는 두가지 시의 길이 주어져 있다.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증폭시켜보는 길과 존재의 소음을 최대한 잠재워보는 길. 나는 이 두 길을 모두 가보기로 한다.” 첫 시집 이후 대략 육칠년 동안 두 작업은 완전히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전자의 결과물이 『초자연적 3D 프린팅』이고 후자의 결과물이 『하얀 사슴 연못』이다.
형식 면에서 『초자연적 3D 프린팅』이 세상의 신비를 종이라는 평면 위에 입체적으로 출력해보는 한밤중의 작업이었다면, 『하얀 사슴 연못』은 제목이 말해주듯 주로 ‘하얀(백색)’과 ‘사슴(+사슴벌레)’과 ‘연못(물)’이라는 세 요소의 협력을 전시해보는 개념적 작업이었다. 이 시집이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회 공간처럼 읽혔으면, 그래서 독자들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요소들의 생성과 변환을 느껴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제 앞서 말한 두 길을 모두 가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시의 길을 두가지로 한정한 것도 좀 우습군. 길 아닌 곳도 걸어가다보면 길이 되어 있겠지.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걸어갈 것이다. 계속.
2023년 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