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채색화로 만나는 우리 고전 심청전
심청전은 우리 고전 중에서도 가장 큰 사랑을 받아온 소설이다. 최근까지 영화, 발레,
무용, 창극, 현대 소설 등 다양한 장르로 재창조되기도 했다. 나는 한국화가의 눈으로 우리 고전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그 속에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와 아름다움의
가치들을 찾아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한국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내가 다시 만난 심청전은 효녀 이야기를 넘어서서 인생의 깊은 진리와 숭고한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감동적인 고전이었다.
나는 심청전 원전을 읽으며 누구의 딸이라는 선입견, 효녀라는 전통적 관념을 벗어나
순수한 소녀, 한 인간으로서의 청을 바라보았다. 청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청소년이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맹인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젖동냥으로
자랐고 매일 끼니를 걱정하며 살 만큼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도 청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불평하지 않고 밝고 건강한 아이로 자란다. 앞을 못 보는 아버지의 눈과
손발이 되어 드리고 어려운 집안 살림까지 해내는 당찬 소녀다. 요즘도 어려운 가정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소녀들이 있다. 힘든 상황 속에서 가족을 보살피며 열심히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또한 병든 부모님과 가족을 수발하며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어른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청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나에게도 조금 청과 겹쳐지는 기억들이 있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열세 살 되던
겨울에 갑자기 쓰러지셔서 반신불수가 되셨다. 그 일은 큰 충격이었고 오랜 시간 나를 힘들게 했다. 청이 눈 먼 아버지를 모시고 길을 걸어가는 모습 속에서 나의 어릴 적
모습이 어른거렸다. 불편하신 아버지를 모시고 동네 산책을 다닐 때마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쳐다보는 눈길이 어린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나는 친구들 앞에서는 잘 웃는 아이었지만 혼자 기도할 때는 늘 울보였다. 십대 시절 새벽 기도와 철야 기도를 다닐
만큼 아버지의 병 낫기를 원하는 마음은 참으로 간절했다. 그 간절함을 알기에 청의
기도가 가슴에 와 닿았다. 매일 밤 정화수를 떠놓고 아버지 눈 뜨기를 간절히 빌던 어린 소녀의 마음을 나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청은 대범하고 용감한 소녀다.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했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도 낙심하지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위로한다. 그리고 청은 그 위기를 아버지가
눈을 뜨실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였다. 아버지와 자신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희망으로 여겼다. 그 희망은 열다섯해 동안 청의 삶을 지탱해 온 힘이었는지
모른다. 아무리 힘들어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눈을 뜨실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그래서 아버지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무 실마리도
보이지 않던 그 희망이 이제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청은 물러서거나 포기할 수 없었다. 그 날 밤부터 청은 목욕재계하고 온 정성을 다해 기도를 드린다.
하늘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기에 청의 기도는 더욱 간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은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청은 인당수 제물로 바칠 열다섯
살 난 처녀를 산다는 말을 듣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정말 기적처럼 공양미 삼백석을
얻을 길이 열렸는데 그 댓가로 자신의 목숨을 버려야 하는 것이다. 열다섯 살 소녀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양자택일의 순간이었다. 아마 이 선택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뒤로
물러설 것이다. 그것은 비겁하다기 보다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이다.
자신의 생존보다 더 위급한 것은 없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버리다니! 그것은 동등한 교환이 아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경솔한 행동으로 생긴 일이니
아버지를 탓하고 없던 일로 할 수도 있다. 청의 아버지도 그것을 더 반겼을 것이다.
누가 딸의 목숨을 팔아 눈을 뜨고자 하겠는가?
그러나 청은 물러서지 않았다. 자신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고 해도 청에게 그 바람과 그 약속은 그렇게 쉽게 저버릴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청은 아버지 가슴에 맺힌 한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맹인으로 살면서 겪은 무수한 고난들을 청은 한 몸같이 겪으며 살아왔다. 청은 아버지의 눈이었고 손발이었다. 그래서 청에게 그 소원은 아버지만큼 어쩌면 자기 목숨만큼 크고 중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늘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 사는 아버지를 빛으로 이끌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결의가 어느새 바위처럼 굳어져 온 세월이었는지 모른다.
청은 홀로 고민 끝에 결심한다. 그리고 뱃사람들을 찾아간다. 청은 결단력 있고 침착하다. 뱃사람들을 제 발로 찾아가는 길이 죽으러 가는 길만큼 무섭고 힘들었을 텐데도 청은 자신의 사정을 차분히 이야기한 후 자기 목숨을 놓고 거래를 한다. 그렇게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여 약속대로 절에 바친다. 이제 인당수 제물이 되는 일만 남았다.
이 시점에서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서 청도 살고 아버지도 눈을 뜨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이야기는 계속 진행되고 시간은 잔인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오고야 만다. 청은 아버지와 뼈아픈 생이별을 하고 배에 오른다. 정든 집과 동네를 벗어나 홀로 낯선 이들과 배를 타고 가는 마지막 길이 얼마나 무섭고 고독했을까? 인당수에 다다라 청이 뱃전에 설 때까지 하늘은 이 가련한 소녀에 대해 침묵한다. 하늘이 청의 살아온
삶과 사랑의 진정성을 시험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백 퍼센트 순도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네 생명을 줄 만큼 사랑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인간의 진심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나의 행복을 위한 사랑인지 진정 타인을 위한 사랑인지 판가름이 난다. 내가 아닌
사람은 모두 타인이다. 아버지라해도 결국 가까운 타인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이기적인 사랑은 이 풀무불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
청은 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늘에 대한 믿음을 지킨다. 자신의 죽음으로 아버지가 눈을 뜨게 되리라는 믿음을 지킨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순수한 사랑의 힘으로 인간의 이기적 한계를 넘어서는
자기 초월의 순간이다. 청은 이제 신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내가 작가였다면 여기에서 이야기를 끝냈을지도 모르겠다. 비극적이지만 그래서
더 아름답고 숭고한 감동의 여운이 진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정서는 인정이 많다. 그렇게 청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그 다음부터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지던 바로 그 비극적인 순간에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닷 속 세계는 온통 청을 맞이할 준비로 분주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하늘의 옥황상제는
바다의 용왕에게 청을 극진히 대접하라는 엄명을 내리고 선녀들과 백만 물고기 대군들이 청을 맞이하러 나온다. 지극히 높은 하늘과 바다의 신령들이 모두 나와 호들갑스럽고 과하리만큼 청을 극진히 맞이하는 모습이 재미있고 푸근하다. 청은 용왕이 거하는 수정궁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으며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옥황상제는 청에게 이승으로 돌아가서 행복한 인생을 보내라는 명을 내린다. 그리하여 청은 크고 신비로운 꽃을
타고 인당수 바다 위로 떠오른다. 청이 목숨을 버린 곳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부활한 청은 황후가 된다. 가장 비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청은 새로운 생에서 가장 존귀한 지위로 보상받는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청의 아버지는 그 때까지도
눈을 뜨지 못했다. 하늘은 보다 극적인 순간을 기다렸던 것일까? 청의 아버지는 황후가 된 딸을 다시 만나게 되던 그 순간에 눈을 뜬다. 그리고 그 극적인 시간에 전국 도처에 있는 맹인들의 눈까지 뜨이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 일로 온 나라가 천지개벽의 기쁨을 누리며 춤을 추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청자와 독자들은 모두 안도하며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었다. 황후가 된 청의 모습, 광명을 찾고 부귀영화까지 누리게 된 심봉사의 모습 속에서 사람들은 큰 위안을 얻는다. 어떤 판본은 심청전 마지막 부분을 고진감래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이다. 심청전이 회자되던
시절에 청의 가정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살아갈 날들이 막막한 처지의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에 짓눌려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어려워도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를 쓰지만 결국 인당수 모진 폭풍우
속에서 홀로 뱃전에 서 있었던 청처럼 삶의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청은 죽을 만큼 힘든 그 순간에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니라 끝까지 희망을 붙들고 날아오른다. 죽음보다 강했던 청의 사랑은 하늘을 감동시켰다.
사람들은 청과 함께 울고 웃으며 고난을 딛고 앞으로 나아갈 새 힘을 얻는다. 청은 백성 중에서 가장 비천하고 가련한 소녀로 출발했으나 생의 많은 고난을 뚫고 지나오는 동안 어느덧 저 높이 우뚝 선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청의 죽음과 그 이후의 삶이 주는 메시지를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죽도록 사랑하라. 어려워도 끝까지 사랑하라.
그러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리니.”
청의 큰 사랑과 우리 고전이 주는 아름다운 감동을 이 가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